가계부채 관리 실기해 놓고 은행권 '눈치 게임' 관망하는 금융당국
2021년 영끌족 패닝바잉 재현 우려 등장
은행권, 두 달 사이 20차례 이상 주담대 금리 인상
MCI·MCG 취급 중단, 다주택자 주담대 제한
은행권 "당국이 만든 암묵적 눈치 게임" 비판
스트레스 DSR 2단계 도입 연기 비판도 제기
[서울경제TV = 이연아 기자] 지난 7월부터 금융당국이 고강도 가계대출 조이기에 들어가면서, 은행권은 두달 사이 대출 금리를 20여 차례 인상했다. 하지만 가계 대출 증가폭은 꺾이지 않았다. 지난 8월 한달 가계대출 증가액은 10조원에 육박했다. 금리 인상 ‘약발’ 이 먹히지 않자 당국은 총량 규제 카드까지 꺼내 들었다. 그래도 대출 증가세가 꺾이지 않으면 앞으로 또 어떤 강공책이 나올지 누구도 예단할 수 없는 형편이다. 결국 은행권의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집값 급등의 단초를 제공한 것도 정부고, 가계 대출이 위험 신호를 보낸 상황에서 스트레스 DSR2 시행 시기를 늦춰 가계 부채 관리에 실패한 것도 당국인데 이제 와서 은행들의 눈치 게임을 팔짱만 낀 채 구경만 하는 모습이라는 지적이다.
◆2021년 영끌족 패닉바잉 재현인가
현재 부동산 시장과 가계부채 증가세는 2021년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자) 광풍이 몰아쳤던 상황과 유사하다며 금융권 내 우려의 목소리가 지속적으로 제기된다.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8월 말 가계대출 증가액은 9조6259억원,주담대 증가액은 8조9,115억원으로 집계됐다. 은행권이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이래 2016년 이후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올해 들어 진정세에 접어든 것으로 보였던 신용대출은 다시 증가세를 보인다. 8월 말 기준 가계 신용대출 잔액은 103조4,562억원이다. 7월 말과 비교해 8,484억원 늘었다. 한 달 기준 증가 폭만 놓고 보면, 2021년 7월 1조8,637억원 이후 3년 1개월 만에 최대 기록이다. 금융당국이 지난 7월부터 은행권 대상 강도 높은 가계대출 관리 압박을 넣었고, 은행권이 주담대 금리 인상을 연이어 올리며 답하자 신용대출로 수요가 이동한 풍선효과가 나타난 것으로 분석된다.
◆대출금리 인상 이어 총량규제로 방향 전환
지난 7월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임원회의에서 "성급한 금리 인하 기대와 국지적 주택가격 반등에 편승한 무리한 대출 확대는 가계부채 문제를 악화시킬 우려가 있다"고 언급하자 은행들은 두 달 사이 20차례 이상 주담대 금리를 인상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수신금리를 인상하고 대출금리를 인하 조정하며 예대금리차가 감소세를 보였지만, 주담대 금리 인상을 통해 예대금리차 확대가 전망된다.
여기에 이달부터는 스트레스 DSR 2단계 도입에 맞춰, 은행권이 일제히 대출 총량 줄이기에 나서고 있다. NH농협은행은 6일부터 2주택 이상 다주택자에 대한 수도권 소재 주담대를 일시 중단하기로 했다. 앞서 우리은행은 9일부터 무주택자에게만 주담대와 전세자금대출을 지원하기로 했고, 인터넷전문은행 카카오뱅크도 무주택자에게만 주담대 실행과 함께 대출 만기 기간을 최장 30년으로 일괄 적용한다고 밝혔다.
은행권은 이달부터 일제히 주담대를 받으면 가입해야 하는 모기지보험 상품(MCI·MCG)도 제한한다. 농협은행은 지난 지난 6월부터 모기지신용보험(MCI) 대면 주담대를 중단했는데, 9일부터 비대면 주담대까지 확대 적용하고, 모기지신용보증(MCG) 취급도 한시적으로 중단한다. 다만 저소득 실수요자 보호 차원에서 주택도시기금(디딤돌)대출과 집단(잔금)대출은 제외됐다. 신한은행은 이미 지난달 26일부터 조건부 전세자금대출을 취급을 중단했고, 주담대 MCI‧MCG 가입을 제한했다. 하나은행도 3일부터 주담대 MCI‧MCG 가입을 중단하고 다주택자의 생활안정자금 목적 주택담보대출 취급 한도는 연간 1억원으로 제한한다. MCI·MCG는 주담대 실행과 동시에 가입하는 보험인데, 해당 보험이 없으면 소액 임차보증금을 뺀 금액만 대출이 가능하기 때문에 은행에서는 사실상 대출 한도 축소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은행권은 숨 가쁜 눈치 게임 중
금융당국의 가계부채 관리 강화 기조에 맞춰 지난 7월부터 은행들은 주담대 금리 인상과 총량 규제안을 발표하고 있다. A은행이 내부 논의를 통해 최종 결정된 금리 인상안과 총량 규제안을 발표하면, B은행이 추가 방안을 내놓고, C은행이 다시 추가 방안을 내놓는 식으로 진행 중이다. 이에 대해 금융권 관계자는 "당국은 현재 가계부채 관리 강화 기조에 맞춰 은행별 방안을 발표해보라"는 식으로 팔짱을 끼고 지켜보고 있다고 말한다. 금융권 모두 가계부채 관리를 해야 하는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지금처럼 금융당국이 암묵적으로 만든 눈치게임 분위기는 결과적으로 주담대 실수요자들에게 좋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다.
◆결국 스트레스 DSR 도입 시기 늦어진 것이 문제 아닌가
이와 함께, 금융권에서는 결국 금융당국이 은행권에 스트레스 DSR 도입 시기를 놓친 것이 가계부채 급증세의 직접적 원인이 아니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금융위원회가 스트레스DSR 2단계 도입을 당초 정해진 7월에서 9월로 두 달 연기 결정을 발표하면서, 시장의 혼란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결국 주담대 막차 수요를 자극했고, 가계부채 급증세에 크게 기여했다는 의견이다. 당시 금융당국은 스트레스 DSR 2단계 도입 연기에 대해 부동산 PF 관리 일환이라고 설명했지만, 이에 대해 스트레스 DSR 도입과 PF 상관관계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가계부채 문제 심화 가능성을 제기한 학계, 금융권 목소리가 높았다. 스트레스 DSR 도입의 적기를 놓친 탓에 가계부채 급증세가 꺾이지 않고 있지만, 가계대출 관리 강화 목적으로 은행권의 금리조정과 총량규제 압박을 통해 단기간 해결하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 yale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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