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뛰어드는 중고차 시장…“이젠 믿고 살 수 있나요”
말많고 탈 많은 중고차 시장. ‘모닝 사러 갔다가 벤츠 타고 간다’는 우스갯 소리가 나올 정도로 중고차 시장의 불신이 큰 상황에서 대기업들이 잇따라 이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악덕 딜러, 중고차 호갱 양산, 허위미끼 매물. 문제아라 불리는 중고차 시장이 바뀔 수 있을까.
◇인증 중고차, 완성차 브랜드에 매력적인 먹잇감
현대자동차, 기아, KG 모빌리티 등 국내 완성차 업체들이 ‘인증 중고차’를 앞세워 시장에 들어섰다. 인증 중고차는 판매 업체가 연식과 주행거리 등의 품질을 보증하고, 성능 점검 및 수리를 통해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제도다.
지금까지 중고차 시장에 거대 자동차 기업이 들어서지 못했던 이유는 중고차 시장이 2013년 중소기업 적합 업종으로 선정됐기 때문. 해당 업종으로 지정된 시장에는 대기업의 시장 진입과 확장이 제한된다.
하지만 2019년 2월 중고차 시장의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 기한이 끝났다. 소상공인들은 중고차 판매업에 대기업이 들어올 수 없도록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할 것을 요구했지만 2022년 3월 중소벤처기업부의 생계형 적합업종 심의위원회에서 중고차 판매업이 생계형 적합업종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의결했다. 이렇게 완성차 대기업들의 중고차 시장 진출이 공식 승인되며 중고차 시장 일대에 지각변동이 시작됐다.
현대차는 지난 2023년 10월부터 국내 완성차 업체 최초로 제조사 인증 중고차 사업에 돌입했다. 현대차뿐만 아니라 타사 브랜드라도 8년 이내, 주행거리 12만km 이하인 중고차도 현대차에 판매할 수 있다. KG 모빌리티도 지난 5월 20일 인증 중고차 공식 출범을 알리고 매입·판매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인증 중고차는 일반 중고차 시장에서 판매하는 매물보다 가격이 5~10% 더 높다. 브랜드 이미지, 검증된 제품, 비교적 길어진 품질 보증 기간이 경쟁력이다. 이를 통해 믿고 살 수 있는 중고차를 통해 소비자와 신뢰감을 쌓고, 중고차 시장의 후진적인 시스템을 선진적으로 탈바꿈하는데 기여한다는 것이 전문가의 분석이다.
기업 입장에선 매출을 늘리고 이윤을 남길 수 있는 유의미한 시장이다. 먼저 신차와 중고차의 리사이클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중고차 가격을 높게 인증 받으면 신차의 가격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또 기존 중고 제품을 반납하는 조건으로 신제품을 출고가보다 낮은 가격에 구매할 수 있는 제도인 트레이드인 프로그램을 통해 해당 브랜드의 충성 고객을 만들 수 있다. 일종의 락인(Lock-in) 효과를 통해 매출을 증대시키고 이윤을 남길 수 있다는 소리다.
◇중고차 시장의 엇갈린 시선…“대기업 독식” VS “시장 성장”
일각에서는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출에 대해 우려의 시선을 보낸다. 중고차 딜러 이씨(34)는 “완성차 기업에 비해 규모가 작은 판매자들이 설 곳을 잃게 된다”라며 “대기업이 독주하게 될 앞으로의 시장 생태계가 걱정된다”라고 말했다.
인증 중고차 시장이라는 새로운 거래 문화가 등장하며 시장을 이끌어갈 역량 있는 전문 인력의 부족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자동차 전문가에 따르면 중고차 전문 인력은 매입 대상이 되는 차의 내·외관 상태와 성능 등을 점검할 수 있어야 한다. 또 매물을 판매할 수 있는 자격과 절차를 규정한 법령, 제도에 대한 지식을 갖추고 있어야 하며 소비자들과 합리적인 수준으로 절충 및 타협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기본적인 판매 역량을 갖추고 있는 인력이 부족하다.
중고차 업계와 일부 전문가들은 완성차 브랜드의 중고차 시장 진출이 오히려 바람직한 시장 문화를 선도하고 중고차 시장의 규모를 키울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중고차 유통업체 케이카 관계자는 “국내는 신차대비 중고차 시장이 1대 1.5 비율이다”라며 “미국이나 독일은 2배가 넘어가는 경우가 많고, 선진국일수록 중고차 시장이 큰 경우가 많은데 아직 우리나라는 이에 뒤쳐진다”라고 설명했다. 또 “인증 중고차 시장의 주자들이 많아질수록 이 산업의 규모가 더 커지지 않을까 예측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케이카는 2021년 10.1%라는 유효시장 점유율을 기록한 이후 현대차가 중고차 시장에 뛰어든 2023년도에는 11.5%, 2024년 상반기에는 12.3%를 기록하며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완성차 기업의 중고차 시장 도입에 대해 “중고차 시장은 앞으로 점점 더 성장할 시장으로 보인다”라고 입을 모은다. 이들은 “소비자 신뢰가 바탕이 되면 사람들은 새 차보다 오히려 중고차에 눈을 돌릴 가능성이 높다. 검증이 된 자동차, 믿을 수 있는 중고차라는 것이 생각보다 매력적인 키워드로 작용한다”라고 밝혔다.
자동차 구매를 고려 중인 조모 씨(27)는 “새 차가 너무 비싸니까 애초에 중고차만 고려 대상에 두고 있다”며 “요즘에는 갖가지 점검을 받은 안전한 중고차가 시장에 나오니까 굳이 더 비싼 새 차를 사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상생해야…정부 노력 필요”
중소벤처기업부 권고안에 따라 현대차의 중고차 판매량은 제한돼 있는 상태다. 전체 중고차 시장에서 차지하는 점유율이 2024년 4월까지 2.9%, 2025년 4월까지 4.1%를 넘지 않는 선에서만 판매가 가능하다.
2025년이 되면 현대차의 점유율 제한이 풀린다. 대기업의 독점을 막고 바람직한 시장 생태계를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상생이 중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같은 물건을 팔 때에도 백화점에서 파는 물건이 있고 재래시장에서 파는 물건이 있다”라며 “각각의 시장이 가진 단점을 최소화하고 장점을 강화하면 영역이 분명하게 나눠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또 “대기업의 역할과 개인 딜러가 해야 할 영역이 따로 있는데 대기업이 무리해서 독식하는 구조로 나아가서는 안된다”라며 “정부가 대기업이 중고차 시장에 들어올 수 있도록 한 것도 시장의 선순환 효과를 노린 것이다. 국회, 시민단체, 공정거래위원회, 중소벤처기업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모니터링을 통해 피해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고 감시기능을 강화해야한다”고 조언했다.
이에 중소기업벤처부 관계자는 “매년 현대차의 점유율을 꼼꼼하게 확인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상생하고 서로 선순환적인 구조를 만들어나갈 수 있도록 방안을 찾아가겠다”고 밝혔다. /sb4139@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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