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의 자기모순…규제 5일전 “안보상 수출규제는 무역질서 저해”
일본 정부가 한국에 대해 수출규제를 발표하기 닷새 전에 “안보를 이유로 한 수출규제는 무역투자 자유화를 저해할 수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펴낸 것으로 16일 뒤늦게 밝혀졌다. 문제의 보고서는 일본 정부 스스로 대(對)한국 수출규제의 이율배반성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주요 20개국(G20) 오사카(大阪) 정상회의 개최를 이틀 앞둔 6월 26일 ‘2019년 연례 불공정무역 보고서’를 통해 “안전보장을 이유로 한 수출제한 예외를 쉽게 인정하면 자유무역질서가 형해화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런 수출규제가 장기화하면 (전세계의) 산업발전과 경제적 혜택이 상실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미국의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른 철강·알루미늄 관세 부과 등 안전보장을 이유로 한 무역제한 조치가 남용될 경우 세계무역기구(WTO) 같은 다자무역체제를 빈껍데기로 만들 수 있다고도 했다. 803쪽에 달하는 이번 보고서는 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안보상 이유를 댄 수출제한 문제를 특집으로 다뤘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이 보고서가 발간된 사흘후 G20 정상회의에서 자유무역과 열린 시장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다시 이틀 만인 지난달 1일 한국에 대해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소재 3개 물품의 수출을 제한한 것이다. 이때 일본은 오락가락하는 근거를 대다가 결국에는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에 안보상 수출규제는 예외로 인정한다는 논리를 폈다. 이에 대해 국제통상법 전문가 송기호 변호사는 “일본 정부가 한국에 수출규제를 가하면서 안전보장에 근거한 무역관리라는 외관을 유지해 왔다는 측면에서 이번 보고서는 일본 정부 스스로 한계와 모순을 노출시킨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본의 조치가 무역에 관한 주류입장과 얼마나 동떨어지고 내부적으로도 논리적 기반이 미흡한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라는 것이다. 실제 보고서는 216쪽에서 “미국의 경우에 비춰봐도 과도한 안보상 예외를 인정할 경우 각국이 이를 남용할 수 있다”면서 “결과적으로 글로벌 교역이 위축되고 다자무역체제도 형식만 남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20쪽에서는 중국의 희토류 수출 규제 사례와 비교해 볼 때 자국의 산업통상 운용이 국제규범상 투명하다고 자평했다.
중국의 안전보장 무역관리에 대해선 안전보장 관련성이 결핍된 과잉 수출규제이고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T) 11조 위반 가능성이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GATT 11조 1항은 회원국이 수출허가 등을 통해 수출을 금지하거나 제한하지 못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82쪽 제3장 ‘수량제한’에서는 수출규제 문제를 다루면서 “기업의 예측 가능성을 해쳐 무역투자 자유화를 저해할 수 있다”면서 “수출 수량제한이 장기화하면 산업 발전과 경제적 혜택을 상실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는 그러면서 수출규제 절차 투명성을 높이는 방안을 한국 등과 함께 국제사회에 제안했다는 내용을 보고서엔 담고서 정작 닷새 후 한국에 경제보복을 가한 것이다.
송 변호사는 “보고서는 WTO 협정에 위반한 불공정 무역이 무엇인지에 관한 일본의 생각을 보여준다”면서 “일본이 생각하는 무역질서가 무엇인지에 비춰봐도 이번 수출 규제는 앞뒤가 안 맞는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WTO와 국제사회를 상대로 일본에 대해 지속적인 명분과 논리상 우위를 압도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앞으로 일본에 빈틈이나 실수를 보이지 않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아라기자 ar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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