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법의 자리…폴리코사놀 논쟁을 바라보는 전문가의 시선

건강·생활 입력 2025-12-11 16:05:51 수정 2025-12-11 16:05:51 이금숙 기자 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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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기능식품을 둘러싼 논쟁은 언제나 뜨겁다. 

어느 분야에서든 새로운 이슈가 등장하면 서로 다른 해석이 생기고, 각 해석은 저마다의 논리를 갖는다. 최근 폴리코사놀을 둘러싼 논쟁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번 논쟁의 출발점이 의학이나 약학 분야가 아니라 법조계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이다. 

건강기능식품의 효능 문제는 누구나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영역이지만, 이 논의를 펼치는 방식과 언어는 매우 섬세해야 한다. 왜냐하면 건강과 생리학, 분자 수준의 작용 기전은 전문 지식과 검증된 과학적 근거 위에서 해석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법률가가 문제를 제기할 수는 있다. 그러나 건강의 진실을 밝히는 언어는 결국 과학의 언어라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폴리코사놀 논쟁에서 자주 등장하는 주장 중 하나는 ‘어디서 추출하든 폴리코사놀은 똑같다’는 말이다. 이름이 같으니 성분도 같을 것이라는 직관적 생각이다. 하지만 생명과학은 그 단순한 가정 위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같은 밀가루, 버터, 설탕으로 만든 빵이라도 발효 방식과 온도, 시간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결과물이 나오듯이, 폴리코사놀 역시 추출 원료와 제조 과정에 따라 구성 성분의 비율이 달라지고, 그 미세한 차이가 생체 내 반응을 결정짓는다. 특정 조성비를 가진 사탕수수 폴리코사놀에서만 HDL 기능 개선 효과가 관찰된 연구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단순히 ‘성분명’만 보고 동일성을 말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또한 20년 전 일부 서구권 연구에서 폴리코사놀의 효과가 관찰되지 않았다는 주장 역시 종종 인용된다. 그러나 과학에서 20년은 매우 긴 시간이다. 2000년대 초반은 지질 연구의 패러다임이 지금과 전혀 달랐던 시대였다. 당시에는 콜레스테롤의 ‘수치’만을 평가했다면, 현대 연구는 ‘기능’과 ‘질’에 주목한다. 수치가 정상이어도 기능이 손상된 ‘dysfunctional HDL’ 개념은 최근 10여 년 사이에야 명확해졌고, 연구 설계도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정교해졌다. 서로 다른 원료, 다른 조성비, 다른 평가 지표를 사용한 과거의 연구와 오늘의 연구를 같은 선상에서 비교하는 것은, 2G 휴대전화 시절의 기준으로 5G 기술을 평가하는 것과 같다.

기업 연구는 신뢰할 수 없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그러나 과학은 이미 이런 우려를 견제하기 위한 강력한 장치를 갖추고 있다. SCI 저널 게재 과정에서 거치는 동료 평가, 연구 디자인의 표준화, 통계적 검증, 다기관 연구는 모두 상업적 이해관계를 넘어서는 안전장치다. 한 연구의 진실성은 누적된 학술성과와 재현성으로 평가된다. 상업적 이익 때문에 과학적 진실을 왜곡하는 일은 연구자에게 오히려 더 큰 손실을 가져온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누가 연구했는가’가 아니라, ‘어떤 근거와 방법론으로 검증되었는가’이다.

결국 이 논쟁이 분열되는 이유 중 하나는, 법정의 언어와 실험실의 언어가 서로 다른 세계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법률가는 조문과 판례, 논리적 해석을 통해 판단을 내리고, 과학자는 데이터와 통계적 유의성, 재현성을 기준으로 결론에 도달한다. 법정에서는 한 번의 판결이 최종적이지만, 과학은 끊임없는 반증과 반복 실험을 통해 점진적으로 진실에 접근하는 과정이다. 따라서 특정 성분의 생리학적 효능을 법적 논리로 단정하거나, 과학적 개념을 법적 언어로 치환하여 해석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오해를 낳을 수밖에 없다. 우리 몸은 법률 문구를 읽지 않고, 세포는 판례를 따르지 않는다. 분자와 효소만이 몸의 진실을 말해준다.

소비자에게는 당연히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한쪽에서는 “효과가 없다”고 하고, 다른 쪽에서는 “과학적 근거가 충분하다”고 말한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지난 10년간의 최신 연구 흐름을 살펴보고, 어떤 연구가 어떤 수준의 저널에 실렸는지, 연구자가 어떤 학술적 신뢰도를 지니는지를 확인하는 일이다. 또한 실제 임상에서 관찰되는 변화 역시 중요한 근거다. 데이터를 보는 눈이 생기면 과장도, 과도한 부정도 자연스럽게 걸러낼 수 있다.
건강기능식품의 논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그 중심에는 언제나 과학이 자리해야 한다. 감정이나 추측이 아니라 데이터와 증거, 최신 연구의 흐름 속에서 판단해야 한다. 법은 안전성과 허위광고를 규제하는 본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면 되고, 성분의 본질적 효능을 판단하는 일은 과학이 담당해야 한다.

건강의 진실은 현미경 아래에서, 데이터를 통해 드러난다. 다양한 의견이 공존하는 시대일수록, 우리는 과학의 언어로 건강을 바라봐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주경미 고려대 약대 특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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