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메이드칼럼] 서울 음식의 현재, 그리고 미래
[편집자주 :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문화·산업적 가치를 조명하는 '서울메이드 칼럼'을 연재합니다. 학계, 산업계 등 각계 전문가들이 필진으로 참여합니다. '서울메이드'(SEOUL MADE)는 서울의 문화, 제조 등의 융복합적 가치를 아우르는 통합 브랜드입니다]
김은조·<블루리본 서베이> 편집장
사람들은 미래를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모든 분야가 그렇듯, 지나간 것을 분석하기는 쉽지만 앞으로 다가올 일을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 16년간 <블루리본 서베이>를 만들고 있는 나에게도 이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맛집 가이드북을 16년째 만들고 있지만, 평양냉면이 복고 바람을 타고 젊은이들에게 머스트 잇eat 아이템이 되리라고는 10년 전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오히려 처음 먹어보면 밍밍하고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는 평양냉면을 이해 못 하는 젊은 세대 때문에 앞으로 명맥이 끊길까 우려했다. 레트로 열풍(복고 열풍)이 불면서 평양냉면을 알아야 고수로 인정받고, 면스플레인이 유행하고, 노포가 핫 플레이스가 되고, 수준급의 새로운 냉면집이 속속 들어서리라고는 절대 예상하지 못했다.
21세기 들어서 서울의 음식, 서울의 맛에는 짧은 기간 동안 많은 변화와 압축 성장이 있었다. 그 사회적 배경에는 국민소득 2만 달러 달성과 주 5일 근무제 실시가 있다. 말하자면, 미식을 즐길 시간과 금전적 여유가 생겼다. 여기에 인터넷의 등장으로 정보 공유가 폭발적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소비자가 미식 정보의 발신자가 되고, 미식이 대중에게 문화로 소비되기 시작한 것이다.
미식의 선진국에서는 몇백 년, 또는 몇십 년에 걸쳐 이루어졌던 미식 문화의 역사와 맛의 변화가 서울에서는 20년 만에 급속도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20세기까지 서울은 전통적인 한식이 압도적으로 외식 산업의 중심이었다. 한식 외의 음식 장르로는 (한국화된) 일식과 (한국화된) 중식, 그리고 양식이라는 이름으로 퉁치는 (한국화된) 서양 음식이 있었다. 1990년대부터 수입 자유화의 물결을 타고 외국 음식 문화가 유입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일본이나 미국을 통해서 일본화된 피자와 파스타, 미국화된 피자, 베트남 쌀국수 등이 들어왔고, 21세기에 이르면서 대부분의 음식 장르가 본토에서 직수입 된다.
◆ 세계의 맛이 공존하는 서울, 그리고 한식의 대중화
2000년 초부터 연대별로 대략 떠오르는 키워드를 나열해보자.
2000년 초반: 브런치, 벨지언 와플, 크레이프, 팬케이크. 컵케이크, 퓨전 한식, 파스타, 이탤리언, 정육 식당, 해산물 뷔페, 라멘, 이자카야, 사케, 양꼬치, 동북식 중식, 청담동, 압구정동, 가성비, 미식 동호회…
2000년 후반~2010년 초반: 파인다이닝, 프렌치, 분자 요리, 뉴 코리안, 유기농, 오너 셰프, 핸드드립 커피, 화덕피자, 막걸리, 프리미엄 소주, 한식의 세계화, 타이 음식, 유럽풍 식사빵, 모히토, 상그리아, 훠궈, 백화점 식당가, 서래마을, 삼청동, 홍대 앞, 파워 블로거….
2010년 중반: 드라이에이징, 가스트로노미 디저트, 채집 요리, 채식, 마카롱, 소확행, 젤라토, 샤퀴트리, 크래프트 맥주, 싱글 몰트위스키, 갓포 요리, 투뿔 등심, 화상 중식당, 베트남쌀국수, 평양냉면, 노포, 스타 셰프, 중저가 스시, 이태원, 해방촌, 경리단길, 망리단길, 서촌, 상수동, 연남동, 문래동, 젠트리피케이션,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지금 보면 매우 고전적인 단어들이다. 한때 유행하다 금방 사라진 것도 있고 점점 더 진화해 현재는 대세가 된 것도 있다.
처음에는 외국 경험이 많은 레스토랑 오너들이 청담동 중심가에 선진국에 뒤지지 않는 모습의 고급 레스토랑을 열었다. 다음에는 외국에서 직접 요리를 배운 셰프가 돌아와 오너 셰프로서 본격적인 요리를 선보였다. 이들은 임대료가 비싼 청담동보다는 신사동, 논현동 등 주변 지역의 골목 안으로 들어가 맛으로 승부하고, 손님이 레스토랑을 찾아오는 문화를 만들었다. 그다음에는 블로거나 일반인 미식가와 같이 소비자 입장이었던 사람이 외식업에 뛰어들어 개성 있는 맛으로 성공하는 경우도 생겼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서울에는 다양한 장르의 맛과 트렌드가 공존하게 되었다.
이제 서울은 50개국이 넘는 나라의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웬만큼 이름을 들어본 나라의 음식은 서울에서 맛볼 수 있다는 뜻이다. 파리나 뉴욕 같은 세계적인 미식 도시라 할지라도 이 정도로 다양한 장르의 맛이 공존하는 곳은 드물다. 서울은 국제적인 맛의 도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음식 장르가 다양해지면서 오히려 한식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졌다는 것이다. 젊은 셰프를 중심으로 뉴 코리안이라는 새로운 용어가 등장하고, 한식의 현대화가 이루어지면서 모던 파인다이닝 한식이 세계적으로 인정받게 된다. 여기에 자극받아 모습도 아름답고 맛도 좋아진 한식당과 한식주점이 생겨난다. 지금은 서울의 파인다이닝에서 한식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불과 20년 전만 해도 고급 음식은 양식이라고 여기던 것을 생각해보면 한식의 진정한 승리다.
◆ 이미지로 즐기는 음식, 맛집이 내 집 안으로
그럼 현재 가장 뜨거운 키워드는 무엇일까?
컨템퍼러리 다이닝, 한우 오마카세, 스페셜티 커피, 전통주, 셀렉트 다이닝, 가심비, 싱글 다이너, 인스타그래머블, 해시태그, 먹방, 유튜버, 인플루언서, 푸드테크, 빅데이터, 지속 가능성, 성수동, 힙지로(을지로)….
최근의 미식 트렌드를 읽을 수 있는 키워드들이다. 전통적인 매체는 텍스트로 정보를 전달하는 반면, 인스타그램은 이미지만으로 정보를 전달한다. 더 나아가 유튜브는 동영상으로 정보를 소비한다. 이제 맛은 입에서만 즐기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몸으로 말로 보고 즐기고 전달하는 세상이다. 만드는 사람, 즐기는 사람의 개성과 감성이 존중되는 시대로 가고 있다. 가격이 높아도 감성을 만족시키는 것이 중요한 가심비라는 단어가 생겨났고, 반면 가성비를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취향과 타협하지 않는 고객도 나타났다. 다양한 취향 중 어느 하나를 만족시켜야 맛집이 될 수 있다.
또한 맛을 소비하는 새로운 주체도 생겼다. 바로 '혼족'이다.
배달 음식, 혼술, 혼밥, 밀키트, 새벽 배송, 각자도생, 가정간편식HMR, 편도편의점 도시락….
이 트렌드는 푸드테크라는 기술과 접목되어 일상생활에 파고든다. 키포인트는 혼족 미식가의 라이프스타일로 나타난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혼족이 산업 전반에 걸쳐 소비 패턴의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혼밥 또는 싱글 다이닝은 이제 외식 소비 패턴의 일부가 되었으며, 가정간편식이나 밀키트 등을 이용해 집에서 손쉽게 맛을 즐기기도 한다. 맛집이 식당에서 집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미식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일종의 팝 컬처다. 순수하게 미각을 즐기는 행위도 있지만 유행하는 옷이나 음악, 예술 등의 펍 컬처와 같은 차원으로 소비되기도 하는 것이다. 미식이 패션이 되고 있다. 개인의 취향이 존중되면서 트렌드도 빠르게 변화한다.
지금까지 맛은 맛을 만드는 기술자의 손에 달려 있었지만, 미래의 맛은 푸드테크와 정보통신 기술력과 플랫폼, 네트워크 등을 기반으로 발전할 것이다. 예를 들면 바리스타로는 이미 훌륭한 성과를 보여준 로봇이 맛에 관여하는 역할이 지금보다 더 커질 수도 있다. 지속 가능성 같은 정치적인 이슈도 중요해질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의 중심에는 소비의 주체인 개인이 있을 것이고, 개인의 취향과 개성과 맛의 기준은 여전히 중요할 것이다.
[본 칼럼은 서울산업진흥원(SBA. 대표 장영승)이 발간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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