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메이드칼럼] 나는 미래 서울의 맛이 궁금하다
[편집자주 :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문화·산업적 가치를 조명하는 '서울메이드 칼럼'을 연재합니다. 학계, 산업계 등 각계 전문가들이 필진으로 참여합니다. '서울메이드'(SEOUL MADE)는 서울의 문화, 제조 등의 융복합적 가치를 아우르는 통합 브랜드입니다]
황교익·맛 칼럼니스트
황교익 맛칼럼니스트.[일러스트=김태균]
2016년 서울시에서 서울 대표 음식을 선정하고 싶다고 해서 전문가 자문회의를 몇 차례 연 적이 있다. 어떤 음식을 두고 서울 대표 음식이라 할 수 있을 것인지 100인의 시민에게 물으면 100가지의 답을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서울의 유명 음식은 다양하다. 자문회의에서는 먼저 서울 대표 음식 선정의 기준점을 잡고, 서울의 유명 음식 목록을 펼쳐놓은 다음 각 음식들에 서울 대표 음식으로서의 의미가 충분히 내재되어 있는지를 토론했다. 그렇게 하여 네 종류의 음식을 서울 대표 음식으로 선정했다. 오랜 진통을 겪고 선정한 서울 대표 음식이었지만, 서울시의 공식적인 발표는 없었다.
이 글을 위해 그때의 자료를 꺼내보았다. 서울 대표 음식을 선정하는 과정 자체가 서울에서의 삶에 대한 의미를 파악하는 일이었음을 확인했다. 서울의 맛이 어떻게 변화할지 예측하려면 현재 서울의 맛이 어떻게 정착했는지 그 맥락을 파악해야 한다. 그때 선정한 서울 대표 음식의 스토리에서 작은 힌트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역사는 지나온 미래이다.
◆ '서울 4대 진미' 반상, 설렁탕, 냉면, 김밥
첫째, 오늘을 품고 미래를 바라보는 ‘반상’
서울은 한양을 이어받았으되 한양과는 전혀 다른 도시이다. 산업화를 겪으며 대한민국 곳곳의 사람들이 이주하여 만든 거대 도시이다. 서울 시민 대부분은 노동자로 살고, 이들의 음식으로 여느 가정의 음식이 그대로 식당에 나왔다. 이를 우리는 ‘백반’이라 불렀다. 오늘날 백반은 반상이란 이름 아래 새로운 해석과 모색의 음식으로 거듭나고 있다. 반상은 어떤 반찬도, 어떤 일품요리도 품는다. 그러면서도 한상차림이라는 한국 특유의 음식 형식을 잃지 않는다. 현실에 대한 역동적인 대응과 미래를 향한 적극적인 기획을 품은 반상은 격동의 세월을 겪은 서울을 닮았다.
둘째, 서울 시민의 오랜 친구 ‘설렁탕’
일제강점기는 ‘소의 시대’였다. 일제가 소 사육을 적극적으로 권장했기 때문이다. 설렁탕, 곰탕, 불고기, 갈비구이 등의 음식이 외식의 주요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다. 서울은 설렁탕이 유명했고, 서울에 가면 설렁탕 한 그릇 하고 와야 한다는 말이 돌 정도였다. 설렁탕의 멀건 국물이 거개가 비슷한 맛을 낼 것으로 보이나 자세히 관찰하면 맛의 변주는 실로 다양하다. 서울 설렁탕집 사람들이 이 한 그릇의 국물에 온갖 공력을 들인 세월이 한 세기나 되기 때문이다.
셋째, 서울 시민의 미식 놀이 ‘냉면’
서울 사람들은 다들 평양냉면이라 하나, 본디 냉면은 서울에도 있었고 서울 사람들이 예부터 즐겨 먹던 음식이다. 최근 서울 시민들의 냉면 열풍을 보면 평양보다는 서울의 냉면이 외려 문화적 의미가 더 있다고 볼 수 있다. 서울은 냉면 천국이다. 유서 깊은 냉면집에만 냉면이 있는 것이 아니다. 분식집에서부터 온갖 고깃집에 냉면은 다 있다. 냉면은 완결된 일품요리이기도 하며 수육, 편육, 삼겹살, 불고기, 갈비구이 등과 다양한 방식으로 만난다. 만나서는 냉면만의 동력으로 이채를 더한다. 여기에 깃든 비상한 활력이야말로 서울을 대표하는 인상이다. 서울에서는 그 어떤 융합도 가능하다는 뜻이다.
넷째, 바쁘나 융통성 있게 만 ‘김밥’
지하철역 입구, 오피스타운 지하상가, 학교 주변, 젊은이들의 거리, 편의점 가리지 않고 김밥이 있다. 김밥에는 서울의 속도와 융통성 있는 그 대응이 담겨 있다. 김밥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에 의해 이식된 음식이다. 서울의 김밥은 일본의 김밥을 버렸고 또 넘어섰다. ‘출생지 전통’을 고집하는 일본의 김밥과 달리 서울의 김밥은 재료와 맛에 한계가 없다. 세계에서 서울만큼 다채로운 김밥을 맛볼 수 있는 도시는 없다. 김밥은 빨리 내고, 빨리 먹는 음식이다. 김밥 안을 보면, 한 상의 음식이 말아져 있다. 불고기와 돈까스 등등 일품요리까지 품는다. 바쁘나 융통성 있게 바쁜, 서울 시민의 넉넉한 품성이 김밥에 말아져 있다.
◆ '맛의 용광로' 서울 음식 발전시켜야
네 종류의 서울 대표 음식 스토리에서 서울의 맛이 그려지는가. 격변의 도시에서 속도에 휘몰렸던 서울 시민의 삶이 보이는가. 그리고 서울 시민들이 끈기와 융통성으로 무장하여 역동적으로 서울의 맛을 융합해나간 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가. 맛의 용광로 같은 서울이 보이는가.
서울이 조선의 한성이었을 때 사대문 안에 20만 명이 살았다. 일제강점기 경성일 때에 100만 명이 넘는 도시가 됐다. 해방 이후 개발 연대인 1960~70년대를 거치면서 서울은 그때까지와는 또 다른 도시로 탈바꿈했다. 1960년대에는 400만 명을 넘겼고, 1970년대에는 800만 명, 1980년대 중반 드디어 1,000만 명의 거대 도시로 성장했다.
서울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이주민의 도시’이다. 한반도 방방곡곡에서 먹고살려고 모여든 사람들이 세운 도시이다. 박원순 서울 시장도 경상도 어느 산골 소년이었다. 이주민은 자신의 거주지에 대한 애착이 약하다. 서울 시민이면서도 서울의 여러 문화에 대해 깊은 애정을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서울의 맛에 대해서도 별 관심이 없다. 서울의 식당에서 서울 음식을 먹으며 다들 떠나온 고향 음식 이야기 하기에 바쁘다.
서울 이주민의 아이들은 서울에서 태어났다. 1970~80년대생이 서울 이주 2세대이다. 이들이 이제는 서울 이주 3세대를 키우고 있다. 이주가 이른 경우 4세대까지 내려왔을 것이다. 이들은 서울이 고향이다. 이들이 태어날 때부터 서울은 이미 세계화한 거대 도시였다. 외국 여행이 자유로운 세대여서 그 앞의 세대와는 문화적 경험이 전혀 다르다. 이들이 이제 서울 문화의 중심 세력이다. 서울의 맛이 비로소 서울이 고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 의해 변주를 일으킬 차례이다.
서울이 고향인, 이주민의 젊은 후예들은 세계화한 취향을 갖고 있다. 도시의 전통에 대한 태도가 유럽의 오랜 도시의 시민과는 다르다. 음식이나 옷, 음악 같은 일상의 문화를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지켜내야 한다는 강박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무엇이든 가볍게 뒤섞인다. 한국식, 일본식, 중국식, 서양식이 뒤섞인다. 서울의 음식 시장은 세계 음식 실험장 같다.
미래에 어떤 서울의 맛이 등장할지 궁금하기는 하나, 구체적으로 짐작하기가 매우 어렵다. 필자는 이주민 1세대이고, 서울은 여전히 타향이다. 지금의 서울 음식 문화 주도 세력과는 감각 자체가 다르다. 세시봉 세대와 BTS 세대의 차이 정도이다. 다만, 이런 예측은 가능하다. 서울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끈기와 융통성은 이어질 것이고, 그러니 서울의 맛은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역동적인 융합의 길을 걸을 것이다. 서울은 맛의 용광로이다.
[본 칼럼은 서울산업진흥원(SBA. 대표 장영승)이 발간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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