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4人4色 | 이강산] NEXT K: 전북

전국 입력 2025-11-23 22:27:33 수정 2025-11-23 22:27:33 이경선 기자 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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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산 문화기획가

이강산 문화기획가

최근 경주에서 열린 APEC(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 정상회의는 외교 무대의 중심이자, 한국 문화의 힘을 세계에 각인시킨 현장이었다.

공식 회의 못지 않게 많은 주목을 받은 것은 전통과 첨단이 결합된 K-콘텐츠였다. 한복과 케이팝, 디지털아트와 전통공예가 어우러진 무대는 한국이 가진 문화의 다양성과 창의성을 드러냈다. 이처럼 문화는 이제 국가의 경제력과 외교력을 떠받치는 핵심 동력이자, 세계가 한국을 이해하는 창으로 자리 잡았다.

한류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다. 음악과 드라마, 영화, 게임을 넘어 예술·디자인·관광으로 확장되며 ‘K-문화생태계’라는 거대한 구조로 진화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각 지역이 지닌 창의성과 문화자원이 있다. 중앙 집중형 산업이 아닌, 지역 고유의 정체성과 문화적 에너지가 모여야만 K-콘텐츠의 지속 가능성과 다양성이 확보된다. 

그런 맥락에서 전북은 아직까지 K-콘텐츠를 직접적으로 창출하고 실현할 수 있는 문화 인프라가 충분하지 않다. 지역의 예술적 잠재력은 높지만, 이를 대형 콘텐츠로 기획·제작·향유할 수 있는 구조적 기반은 제한적이었다.

따라서 앞으로 5년, 10년을 내다볼 때 전북에도 세계적 수준의 K-콘텐츠를 생산하고 공유할 수 있는 문화시설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에 대해 도민들 역시 공감할 것이라 사료된다.

이러한 점에서 전북자치도와 전주시가 추진 중인 전주교도소 이전 부지의 국립모두예술콤플렉스 조성 사업은 대한민국은 물론 지역 문화정책의 패러다임을 전환시키는 중대한 계기가 될 것이다.

국립모두예술콤플렉스는 장애와 비장애, 세대와 지역, 예술과 기술이 공존하는 통합 예술 플랫폼을 목표로 한다. 과거의 폐쇄적 공간이었던 교정시설 자리에 누구에게나 열린 예술의 장을 세운다는 상징성은 크다.

이곳은 단순한 공연장이 아니라 창작·교육·체험이 순환되는 복합문화 인프라로, 예술과 산업, 공공성과 창의성이 교차하는 ‘K-콘텐츠 실험실’로 기능할 수 있다. 특히 디지털 기술과 예술적 상상력을 결합해, 지역 작가와 청년 창작자들이 글로벌 무대에서 통할 콘텐츠를 개발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다면 그 자체로 전북 문화산업의 성장축이 될 것이다.

전북은 이미 풍부한 문화적 자산을 지니고 있다. 전 세계 영화인들의 축제로 자리 잡은 전주국제영화제는 어느덧 26회를 맞이했으며, 소리의 본향 전북에서 24년간 이어온 전주세계소리축제는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음악의 장으로 성장했다.

또한 시각예술 중 서예를 중심으로 15회째 운영되어 온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는 한국적 미감과 정신을 세계에 전하고 있다. 이처럼 전북의 문화행사들은 각기 다른 장르에서 대한민국 문화의 다양성과 지역의 정체성을 세계 무대에 알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여기에 국립모두예술콤플렉스가 더해진다면, 공연·영상·음악·시각예술을 잇는 복합문화벨트가 완성되어 전북이 K-콘텐츠의 새로운 중심지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비전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과제가 병행되어야 한다. 첫째, 시설 건립을 넘어 운영 단계에서의 거버넌스 혁신이 필요하다. 도와 시, 시민과 민간이 함께 참여하는 협치 모델을 통해 투명성과 자율성을 보장해야 한다. 둘째, 예술가 지원과 콘텐츠 제작을 위한 장기적 투자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단발성 행사 중심의 예산 집행을 넘어, 창작·유통·교육이 연속성을 갖는 생태계형 예산체계로 전환해야 한다. 셋째, 구 교도소 부지 일대를 원도심과 연계해 문화·관광·교육이 융합되는 복합문화권으로 조성할 필요가 있다. 이는 단순한 도시재생이 아니라, 예술로 도시의 기억을 치유하고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하는 문화도시 전략이 될 것이다.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경주가 보여준 문화외교의 성공은 한류의 세계화가 지역 문화의 저력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전북자치도와 전주시가 준비하는 국립모두예술콤플렉스는 그 교훈을 구체적 공간으로 실현하는 시도다. 불모의 땅에서 한송이 꽃이 피듯, 오랫동안 닫힌 공간이었던 교도소 부지가 예술의 해방구로 변모할 때, 전북은 진정한 문화수도로 거듭날 것이다.

예술은 결국 인간을 자유롭게 하고, 도시는 그 자유를 담는 그릇이다. K-콘텐츠의 세계화는 바로 이런 ‘문화의 자유’, ‘문화다양성’을 확장시키는 일이며, 전북의 새로운 도전이 그 길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

▲ 이강산 
대학에서 미술실기를 전공하고, 미술교육으로 석사학위를, 미술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약 7년간 기초·광역문화재단에서 근무하며 문화기획과 예술현장을 경험하였고, 등록 사립미술관과 광역 공립미술관에서 학예연구사로 약 6년간 재직하며 전시 기획과 소장품 업무를 주로 담당했다. 이후 독립기획자로 활동하며 특히 전북을 기반으로 한 지역미술사 연구와 기획·비평을 이어가고 있다.

'문화 4人4色'은 전북 문화·예술 분야의 네 전문가가 도민에게 문화의 다양한 시각과 깊이 있는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매주 한 차례씩 기고, 생생한 리뷰, 기획기사 등의 형태로 진행됩니다. 본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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