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4人4色 | 이강산] 옴니보어와 문화다양성Ⅱ : 전통과 지역에서 찾는 공존의 지혜

전국 입력 2025-09-20 00:31:38 수정 2025-09-20 00:31:38 이경선 기자 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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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산 문화기획가

이강산 문화기획가

문화다양성은 서구 사회에서 강조된 개념처럼 보이지만, 사실 한국의 전통사상 속에도 이미 그러한 사유가 깊이 배어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접화(接化)’라는 개념이다. 접은 서로 만남을 의미하고, 화는 만물을 생육하게 하는 자연의 원리를 뜻한다.

즉 접화란 서로 다른 것들이 만나 각자의 속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조화를 이루어내는 과정을 가리킨다. 이는 곧 상생과 순환의 원리를 담고 있으며, 오늘날 말하는 문화다양성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성리학에서 말하는 ‘묘합(妙合)’ 역시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개별의 속성이 본래의 성질을 유지하면서도 함께 어울려 새로운 질서를 형성하는 것, 이는 다양성이 존중될 때 가능한 조화의 모습이다. 따라서 문화다양성은 단순히 외래 개념이 아니라, 우리의 전통 속에 내재된 지혜와 맞닿아 있다.

다름을 배척하지 않고 공존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철학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이러한 전통적 사유와 연결 지점에서 사회학자 리처드 피터슨이 제시한 옴니보어 개념을 다시 생각해볼 수 있다. 그는 문화 소비 양식의 변화를 설명하면서, 특정 계층이 고급문화만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문화까지 포괄적으로 수용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즉 옴니보어적 태도란 배타적 구분을 넘어 다양한 장르와 스타일을 적극적으로 향유하는 태도다. 이는 곧 차이를 차별이 아니라 ‘다름’으로 인정하는 문화다양성의 실천과도 직결된다.

옴니보어적 태도를 지닌 사회는 더 유연하고 창조적이다. 특정 문화만을 고집하지 않고 다양한 문화를 수용함으로써, 그 사회는 스스로를 풍요롭게 하고 미래를 대비할 수 있는 힘을 기른다.

이는 오늘날 한국 사회가 직면한 도전 속에서도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다문화 사회로의 전환, 세대 간 가치관 차이, 성평등 문제 등은 모두 문화다양성의 틀 안에서 이해되고 해법이 모색될 수 있다. 옴니보어적 수용성이야말로 이러한 과제를 풀어가는 열쇠라 할 수 있다.

문화다양성의 가치는 지역 사회에서도 큰 의미를 지닌다. 지방분권과 문화분권이 강조되는 오늘날, 지역 고유의 특수성과 다양성은 곧 지역 경쟁력으로 이어진다. 국가의 정체성이 지역의 다양성에서 비롯되고, 지역의 정체성은 다시 도시의 브랜드로 발전한다.

따라서 지역 문화정책은 단순히 여러 행사를 병렬적으로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주체들이 직접 참여하고 생산하는 문화다양성을 실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예컨대 전통예술과 현대예술의 융합, 세대 간 교류, 이주민과 지역민이 함께 만드는 공동체 예술 프로그램 등은 단순한 문화행사에 그치지 않는다. 이는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옴니보어적 태도 속에서 함께 어울리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장이 된다. 지역이 지닌 전통과 다양성이 현대적으로 재해석될 때, 그것은 곧 도시의 브랜드가 되고, 지역을 넘어 국가 전체의 문화적 역량을 강화하는 자산이 된다.

결국 문화 옴니보어의 가치는 지역과 국가를 막론하고 중요한 미래 자산이다. 차이를 존중하고, 다름을 기꺼이 수용하며, 그 다양성 속에서 창의성을 꽃피우는 사회야말로 지속가능한 사회다. 옴니보어적 삶은 특정한 계층이나 개인의 취향을 넘어, 사회 전체가 지향해야 할 태도다.

문화다양성은 더 이상 멀리 있는 구호가 아니다. 우리의 전통사상 속에도, 지역 문화의 현장 속에도 살아 있는 가치다. 나와 다른 사람을 배척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이미 문화 옴니보어의 길을 걷고 있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한국 사회는 더 풍요롭고 창의적인 미래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 이강산 
미술을 전공하고, 미술교육으로 석사 학위를, 미술학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약 7년간 기초·광역문화재단에서 근무하며 문화기획과 예술현장을 경험하였고, 등록 사립미술관과 광역 공립미술관에서 학예연구사로 약 6년간 재직하며 전시 기획과 소장품 업무를 주로 담당했다 이후 독립기획자로 활동하며, 특히 지역 미술을 기반으로 한 지역미술사 관련 기획과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문화 4人4色'은 전북 문화·예술 분야의 네 전문가가 도민에게 문화의 다양한 시각과 깊이 있는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매주 한 차례씩 기고, 생생한 리뷰, 기획기사 등의 형태로 진행됩니다. 본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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