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우일의 인생한편] 대도시의 사랑과 죽음

전국 입력 2025-11-09 06:59:22 수정 2025-11-09 06:59:22 이경선 기자 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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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하라 테츠야 감독의 영화 <체인소 맨: 레제편>(2025)

심우일 선문대학교 K-언어문화기업학과 강사/영화평론가

영화 <체인소 맨 : 레제편>은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1기 애니메이션 후속작으로, 극장판 개봉과 함께 큰 화제를 모으고 있다. 최근 <귀멸의 칼날 : 무한성편>(2025)의 흥행과 더불어 일본 애니메이션이 지속해 극장가에서 흥행하고 있다는 점은 앞으로도 주목할 현상으로 보인다. 

<체인소 맨> 시리즈는 악마의 힘을 지닌 데블헌터 덴지가 사회를 위협하는 악마들과 맞서 싸우며 세계를 지켜낸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작품의 특이점이라면 주인공 덴지가 세계를 구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지니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가 공안으로 일하는 이유는 단지 일을 하면 먹을 것이 생기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 생계형 데블헌터라고 할까? 이런 점에서 덴지는 기성 사회적 질서에 대해 무관심하고 냉소적이다. 후속작은 이러한 전작의 세계관을 이어가면서도 덴지와 레제의 짧고도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를 통해 서정성을 더하고 있다.

두 사람은 비가 내리던 어느 날 공중전화박스 안에서 처음 만난다. 덴지는 비에 젖은 레제에게 첫눈에 반하고, 이후 레제가 일하는 카페를 매일 찾아간다. 서서히 둘 사이는 가까워지고 덴지는 레제를 통해 악마가 되면서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인간성이 자신에게 남아있다는 것에 안도한다.

세계의 안위에 무관심한 덴지는 레제에게 관심을 보이며 거베라 한 송이를 건넨다. 그 꽃말은 순수한 사랑과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데, 그 꽃은 영화 속에서 내내 레제의 곁에 머문다. 이때 거베의 꽃말은 졸업과 입학을 의미하기 때문에 덴지와 레제의 관계가 새로운 세계로 진입했음을 의미하는 상징물이다.

이런 점에서 영화 속에서 레제가 덴지에게 “네가 모르는 게 있으면 내가 가르쳐줄게.”라고 말하는 장면은 단순한 친절이 아니라 함께 미래를 살아가고 싶다는 다정한 약속처럼 들린다.

영화는 “불안과 위험 속에서도 자극적인 삶을 살 것인가, 아니면 조용하고 평온한 삶을 살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작품을 이끌어간다. 덴지는 도시의 위험한 삶을 선택한 존재이고, 레제는 평온한 시골의 삶을 꿈꾸는 존재다.

서로가 서로에게 끌리면서도 그들의 삶은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그로 인해 불화할 수밖에 없는 두 사람 사이에 전투가 벌어지고, 폭탄의 악마인 레제의 불꽃이 도시를 수놓으며 폭발한다. 

영화의 후반부에 이르러 레제는 총의 악마의 수하이자 소련에서 만들어진 인간 병기인 ‘모르모트’로 밝혀진다. 마찬가지로 덴지 역시 국가의 목적에 의해 소비되는 도구라는 점에서 자기 삶을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존재라는 운명을 공유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레제와 덴지가 서로에게 이끌린 것은 우연이 아닌 운명이 된다.

대도시를 혼란으로 몰아간 둘의 전투 끝에 레제는 덴지에게 패배하지만, 덴지는 그녀를 살려주며 사랑을 고백한다. “처음 만났던 카페에서 기다릴게. 우리 같이 떠나자.”

덴지와 헤어진 이후 붉은 거베라를 손에 들고 고민하던 레제는 고민 끝에 덴지를 향해 달려간다. 붉은 거베라의 꽃말은 사랑과 열정을 의미하고, 레제는 자신을 억압하던 조직을 버리고, 덴지를 향한 사랑을 선택한다. 마찬가지로 공안의 삶을 그만두고 레제와 떠날 준비를 하며 카페에서 기다리는 덴지의 모습이 서로 교차한다. 과연 둘의 사랑은 완성될 수 있을까? 그러나 대도시의 삶은 둘의 사랑을 허락하지 않는다.

레제는 카페 앞에서 기다리던 공안들의 습격을 받으며 죽음을 맞고, 마지막 순간 카페의 유리창에 비친 덴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씁쓸하게 말한다. “나도 학교를 다니지 않았어.”

그녀의 마지막 말은 국가에 의해 인간병기로 살아왔을 뿐 자기 자신이 주인된 삶을 살아본 적이 없는 자의 목소리라는 점에서 둘의 사랑에 비극성을 더한다. 비로소 레제가 주체가 되는 순간 그녀의 선택이 덴지를 향한 사랑과 자신의 죽음 뿐이라는 사실은, 차가운 대도시의 감춰진 이면을 드러낸다. 영화는 관객들에게 묻는다. 과연 악마는 누구인가? 

▲심우일 선문대학교 K-언어문화기업학과 강사 
·선문대학교 문학이후연구소 전임연구원
·롤링스톤 코리아 영화 부문 편집위원 활동 
·전주국제단편영화제 프로그래머 역임 
·TBN 전북교통방송 프로그램 ‘차차차’ 라디오 방송 활동
·웹진 <문화 다> 편집위원 역임 
·제3회 유럽단편영화제 섹션 ‘삶을 꿈꾸다 (DERAMERS)' 책임 강연 
·계간지 <한국희곡> 편집위원 역임 
 -연극인 인터뷰 <최치언, 정범철, 김광탁 작가> 및 연극 평론

‘인생한편’은 영화평론가 심우일이 매주 한 편의 영화 속에서 삶의 질문과 여운을 찾아 전하는 이야기입니다. 본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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