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혈병·심장병 이겨낸 15세 소녀, 부산에 미술공방 열다

건강·생활 입력 2025-12-19 17:47:14 수정 2025-12-19 17:47:14 이금숙 기자 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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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병과 급성백혈병으로 서울성모병원에서 5년간 투병한 청소년이, 그림을 통해 희망을 전하고 싶은 소망으로 미술 활동을 전문적으로 펼칠 수 있는 ‘솔윤공방’을 부산에 열었다. [사진=서울성모병원]


[서울경제TV=이금숙기자] 15세 소녀가 급성 백혈병과 심장병으로 5년간 서울성모병원에서 투병한 끝에, 미술 활동을 전문적으로 펼칠 수 있는 공방을 부산에 열었다. 영재 피아노 학교 진학을 꿈꾸던 예술적 재능이, 서울성모병원 소아청소년 완화의료팀 ‘솔솔바람’의 통합 돌봄 속에서 미술이라는 또 다른 꽃으로 피어났다.

정서윤(15) 양은 초등학교 5학년이던 2021년 여름, 갑작스러운 고열로 부산의 집 근처 병원을 찾았다. 그러나 열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고, 혈액검사에서 백혈구 수치가 비정상적으로 높게 나타나 소아혈액질환이 의심됐다. 결국 서울성모병원으로 이송된 서윤 양은 급성골수성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태어나 처음 서울을 찾은 날, 서윤 양은 곧바로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코로나19로 면회가 엄격히 제한된 시기였던 탓에, 엄마는 병실 밖에서 애만 태울 수밖에 없었다. 그때 최선희 솔솔바람 전문간호사가 다가와 보호자에게 치료 과정을 상세히 설명하고, 무균병동에 홀로 입원해 있던 아이에게 가족의 사진과 편지를 전해주었다. 아이와 가족이 서로에게 닿을 수 있도록 ‘솔솔 불어오는 바람’이 되어준 순간이었다.

영재 피아노 학교 진학을 준비하던 서윤 양에게 갑작스러운 병원 생활은 혹독했다. 고용량 항암치료 이후, 6살 때 진단받았던 발작성 상심실성 빈맥(PSVT)도 악화돼 심장 시술까지 받아야 했다. 그러나 예술에 대한 열정은 음악에서 그림으로 이어졌다.

서윤이는 급성골수성백혈병으로 입원 생활 중 그림을 의료진에 선물하였다. [사진=서울성모병원]


힘겨운 조혈모세포이식과 긴 회복기를 거치며 서윤 양은 아크릴판 위에 가족과 의료진, 자신과 함께 병동에서 지내는 또래 환아들을 그렸다. 한 번 입원하면 한두 달 이상 병원에 머물러야 하는 아이들에게 서윤이의 그림은 특별한 선물이 됐다. 미취학 환아에게는 로봇과 공룡을, 청소년 환아에게는 자신을 닮은 수채화 초상화를 건네며 병동 곳곳에 웃음을 남겼다. 병동 아이들의 수액 폴대에는 각자 좋아하는 그림이 하나씩 걸려 있었다.

첫 번째 이식 후 2023년 재발 소식을 들었을 때, 가족들은 큰 좌절을 겪었다. 다시 시작된 입원 생활 속에서도 서윤 양은 열이 나지 않는 날이면 병실 친구들을 위한 그림을 그려 나눴다. 지난해 입원 중 맞은 생일에는 병동 휴게실에서 작은 피아노 연주회를 열었다. 가족과 의료진은 입장료라며 과자를 들고 찾아와 서로의 투병을 응원했다.

서윤 양은 병동 곳곳에 작은 행복을 전했다. 병실 밖으로 나오기를 꺼리는 환아나 보호자를 보면 먼저 다가가 그림을 건네며 인사를 나눴고, 마음을 연 아이들과 보드게임을 하며 하루를 버틸 힘을 나누었다. 성탄절과 설날, 생일 같은 특별한 날에는 무균병동 안에서 작은 축제를 열어 환아와 보호자 모두가 웃을 수 있는 시간을 만들었다. 이러한 경험들은 이후 웹툰으로도 완성됐다.

서윤 양이 끝까지 버틸 수 있었던 힘의 중심에는 가족이 있었다. 남동생은 2022년, 체중 30kg도 채 되지 않는 나이에 5시간에 걸친 조혈모세포 기증을 감내했다. 2023년 재발 후 두 번째 이식에는 어머니가 기증자로 나섰다. 두 번의 가족 헌신 끝에 서윤 양은 건강을 회복했다.

가족들은 이식 과정에서 남은 상처를 ‘영광의 상처’라고 부른다. 동생에게 이식받은 날은 ‘남매의 날’, 어머니에게 받은 날은 ‘모녀의 날’로 정해 매년 서로를 격려한다. “입원하지 않고 집에서 보내는 크리스마스가 가장 특별하다”는 서윤 양의 어머니는, 올해는 부산 집에서 남매의 피아노와 기타 연주에 맞춰 노래를 부를 계획이라고 전했다.

투병으로 약 5년간 정상적인 학교생활을 하지 못했지만, 서윤 양은 포기하지 않았다. 입원 중에도 꾸준히 작품을 만들고 작은 연주회를 열었다. 현재 예술고등학교 진학을 준비 중이며, 치료 과정에서 만든 작품과 웹툰, 병동에서 그린 그림들을 부산에 연 미술공방에 전시했다. 앞으로는 공방에서 디자인 상품을 제작해 병동에서 전했던 희망을 더 넓은 세상으로 확장해 나갈 계획이다.

서윤 양의 주치의인 서울성모병원 혈액병원 소아청소년과 조빈 교수는 “긴 치료 과정 속에서도 예술로 자신과 주변을 위로해 온 서윤이가 자신의 이름을 건 공방을 열게 돼 진심으로 기쁘다”며 “앞으로도 그림으로 세상과 소통하며 건강하게 꿈을 키워가길 의료진 모두가 응원한다”고 말했다.

/ksle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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