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우일의 인생한편] 몰락하는 세계의 풍경

전국 입력 2025-11-21 12:16:13 수정 2025-11-21 12:16:13 이경선 기자 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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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드라마 <이쿠사가미 : 전쟁의 신> (2025)

심우일 선문대학교 K-언어문화기업학과 강사/영화평론가

넷플릭스 시리즈 <이쿠사가미 : 전쟁의 신>(2025)은 메이지유신 이후의 일본 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1878년이라는 시대적 배경은 이 작품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하다.

이 시기는 일본 사회에 있어서 중세 막부 체제가 몰락하고, 정치·사회·경제·문화 전반에 있어서 천황을 중심으로 근대 국가 건설을 위한 메이지유신(明治維新) 혁명이 진행되던 변혁기에 해당한다.

메이지유신이 일본 근대화를 위한 정치 사회적 혁명이라는 사실을 알면, 이 작품에서 왜 일본 경무국이 당시 사족이었던 무사(武士)들을 토벌하고자 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

중세 봉건시대를 풍미했던 도쿠가와 시대 무사들은 근대 국가의 율법에 의해 통제되지 않는 무력 집단이었고, 그들의 반란은 근대 질서가 자리 잡아가는 일본 사회를 혼란에 빠뜨릴 수 있었다. 

그래서 일본 정부는 1876년 검을 차는 행위를 금지하는 폐도령을 명령하였지만, 검을 생명으로 여기는 무사들이 그것을 따를 리가 없었다. 폐도령은 무사들에게 검을 버리라고 자신들이 가진 특권을 내려놓고 새로운 근대 국가의 질서를 따르는 명령이기도 하였다.

이후 일부 무사들은 정부의 군대나 관리로 전직을 하지만, 그 명령을 거부한 무사들은 정부의 조처에 반발하였다. 이처럼 정부의 명령에 따라 통제되지 않는 무사 계급의 존재는 근대 일본 정부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언제나 내란을 일으킬 수 있는 위협적인 세력이었다. 

드라마는 이 같은 일본 사회의 역사적 맥락을 작품 속에 반영하고 있다. 사족이 된 무사라는 존재의 위협을 근대 일본 사회에서 참초제근(斬草除根)하기 위해 일본 경무국은 일본 전역의 무사 계급을 토벌할 음모를 세우고, 그들을 십만 엔이라는 상금으로 유혹해 전장으로 불러낸다.

그 과정에서 아내의 병원비를 벌기 위해, 십만 엔이 걸린 무술 대회에 슈지로라는 무사가 참가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바로 드라마 <이쿠사가미 : 전쟁의 신>이다. 

과거 슈지로는 살인 검객으로 불렸던 최강 검객이지만 그 또한 무사 계급의 몰락이라는 역사적 흐름 속에서 빈곤을 면할 수 없는 신세이다. 콜레라에 걸린 아내의 치료비를 벌기 위해 그는 아무것도 모르고 일본 경무국이 주최한 무술 대회에 참가한다.

그 과정에서 과거의 동료들을 다시 만나지만 그들과 검을 맞대는 운명을 피하지 못한다. 무의미하게 서로를 죽고 죽이는 무사들의 모습과 미쓰비시와 같은 당시 일본 대기업 총수들이 그 모습을 놀이처럼 바라보며 즐기고 있는 모습이 교차편집이 되는데, 근대화라는 것이 사실은 피를 먹고 자란 괴물과 다름없다는 생각을 떠올리게 된다.

왜냐하면 저들이 신봉하는 근대화의 논리가 당위적이고 진보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 진실은 목적을 위해서라면 어떤 존재가 되었던 폭력을 동원해 제거해도 된다는 합리화를 그 밑에 깔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비록 이 작품에서 먼저 그 대상이 사족이 된 무사 계급이지만 앞의 논리를 확장한다면, 어떤 존재라도 일본의 근대화에 방해된다면 제거해도 좋다는 폭력의 논리로 귀결될 수도 있다. 그리고 실제 역사적으로도 일본은 조선을 식민지로 삼은 뒤에 서구 열강에 맞선 대동아공영권 건설을 위한 것으로 정당화하지 않았던가? 

이 작품은 화려하고 잔혹한 검술을 보여주지만, 진정 잔혹한 것은 무사들을 산송장을 취급하는 시대의 변화이다. 중세의 가치와 근대적 가치가 뒤섞인 변혁기에 더 이상 필요가 없어진 무사들은 가문에서 버려지고, 근대식 화포 앞에 무력하게 쓰러진 동료들의 시체를 바라보며 자포자기한 채 죽음을 기다리는 무사들의 모습은 세상을 허무한 지옥도로 만든다.

수십 년을 갈고 닦은 화려한 검술이 무의미한 몸짓에 불과하고, 아무런 의미 없는 존재로 살아가는 고통보다, 차라리 적의 칼날 앞에 무사로서 죽는 것이 행복하다니! 이와 같은 삶의 아이러니는 존재의 의미란 개인의 내면뿐만 아니라, 역사라는 토대 위에 형성되는 것임을 일깨운다.

▲심우일 선문대학교 K-언어문화기업학과 강사 
·선문대학교 문학이후연구소 전임연구원
·롤링스톤 코리아 영화 부문 편집위원 활동 
·전주국제단편영화제 프로그래머 역임 
·TBN 전북교통방송 프로그램 ‘차차차’ 라디오 방송 활동
·웹진 <문화 다> 편집위원 역임 
·제3회 유럽단편영화제 섹션 ‘삶을 꿈꾸다 (DERAMERS)' 책임 강연 
·계간지 <한국희곡> 편집위원 역임 
 -연극인 인터뷰 <최치언, 정범철, 김광탁 작가> 및 연극 평론

‘인생한편’은 영화평론가 심우일이 매주 한 편의 영화 속에서 삶의 질문과 여운을 찾아 전하는 이야기입니다. 본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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