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우일의 인생한편 | 파과] 세대의 충돌, 그리고 화해의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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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5-05-30 12:27:15
수정 2025-05-30 12:27:15
이경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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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규동 감독의 영화 <파과>

민규동 감독의 영화 <파과>(2025)의 주인공 조각은 전설적인 킬러이지만 은퇴를 앞둔 노년의 인물이다. 매번 방역 업무를 마치고 손글씨로 작성한 보고서를 제출하는 그의 모습은 디지털화된 오늘날 사회의 풍경과 어울리지 않는 조각이라는 캐릭터의 성격을 드러낸다.
영화의 타이틀인 ‘파과(破果)’는 부서진 과일을 의미하며, 노년에 접어든 조각의 처지를 상징한다. 누구나 청춘을 지나 노년을 맞이하게 되듯, 업계의 전설로 불리던 조각 역시 세월 앞에 서 있다.

반면 ‘투우’는 ‘싸우는 소’라는 별명처럼 거칠고 강인한 성정, 그리고 뛰어난 검술 실력을 갖춘 신성방역 소속의 킬러다. 조각의 노쇠함과 투우의 젊음은 극명하게 대비되며, 두 인물의 대결은 영화의 서사를 이끌어가는 동력이 된다. 영화는 “투우는 왜 신성방역에 들어왔는가”, “그는 왜 조각에게 집착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관객의 몰입을 유도한다.
조각과 투우는 각각 과거와 현재, 늙음과 젊음, 기성세대와 청년세대를 대표하는 인물들이다. 영화는 액션 장르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킬러 업계는 우리가 살아가는 냉혹한 사회의 알레고리이며, 조각은 사회의 중심에서 밀려나는 기성세대를, 투우는 새롭게 부상하는 청년세대를 상징한다. 두 인물의 대결은 세대 간의 갈등을 의미하며, 복수는 이를 극적으로 풀어내는 장치다.
이 작품의 인상적인 반전은 투우의 복수극이 실은 거리에서 버려진 아들이 어머니를 찾아가는 여정이었다는 점이다. 세대 간 갈등이라는 사회적 환상이 은폐하고 있는 진실은, 두 세대 누구도 승자가 될 수 없는 부모와 자식의 관계로 묶여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세대 간 대결에서 승자가 존재할 수 없다는 메시지로 이어진다.
영화는 세대 갈등이란 결국 한국 사회가 만들어낸 환상이며, 죽은 투우의 일기장을 제단에 바치고 명복을 비는 조각의 모습을 통해 두 세대 사이의 화해 가능성을 암시하며 끝난다.

또한 액션 연출 측면에서도 아쉬움이 있다. 기관총으로 무장한 적들이 조각의 총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장면은 비현실적으로 보였으며, 오히려 단검을 들고 대결하는 액션 장면이 훨씬 더 긴장감 있고 시각적으로도 입체적이었다. 영화는 노년의 조각이 적들에게 당해 바닥을 구르며 힘겨워하는 장면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는데, 이는 노년의 삶이 지닌 피로감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하지만 조각의 노쇠함을 보완해 줄 설득력 있는 전투 방식이 더해졌다면, 훨씬 더 매력적인 캐릭터가 되지 않았을까.
마지막으로 사운드 측면에서 보면, 몇몇 장면에서 인물들의 대사가 뭉개져 귀에 잘 들리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 이는 관객의 몰입을 방해하고 서사의 흐름이 끊기는 경험으로 이어졌다. 정교한 사운드 믹싱이 아쉬운 대목이다.
▲심우일 선문대학교 K-언어문화기업학과 강사
·선문대학교 문학이후연구소 전임연구원
·롤링스톤 코리아 영화 부문 편집위원 활동
·전주국제단편영화제 프로그래머 역임
·TBN 전북교통방송 프로그램 ‘차차차’ 라디오 방송 활동
·웹진 <문화 다> 편집위원 역임
·제3회 유럽단편영화제 섹션 ‘삶을 꿈꾸다 (DERAMERS)' 책임 강연
·계간지 <한국희곡> 편집위원 역임
-연극인 인터뷰 <최치언, 정범철, 김광탁 작가> 및 연극 평론
‘인생한편’은 영화평론가 심우일이 매주 한 편의 영화 속에서 삶의 질문과 여운을 찾아 전하는 이야기입니다. 본 기고는 본지의 취재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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