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우일의 인생한편 | 전지적 독자 시점] 게임화하는 자본주의: 모두가 살아남는 결말은 가능한가?

전국 입력 2025-08-09 16:41:45 수정 2025-08-09 16:41:45 이경선 기자 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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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우 감독의 영화 <전지적 독자 시점> (2025)

심우일 선문대학교 K-언어문화기업학과 강사/영화평론가

영화 <전지적 독자 시점>(이하 <전독시>)은 원작 웹소설과 그 기반이 된 웹툰의 인기에 힘입어 실사화된 작품이다. 그러나 최근 이 작품은 수많은 논란을 불러온 것 같다. 영화 <전독시>에 관한 원작 팬들의 우려는 단순한 설정 변경에 대한 거부감이 아니다. 사실 작품을 통해 자신들이 향유하던 세계의 정체성 자체가 훼손되는 경험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그러나 웹소설이 웹툰이 되고, 다시 영화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이야기가 다시 쓰이는 것은 피할 수 없다. 왜냐하면 웹툰은 장기 연재를 전제로 한 유연한 서사 구조와 무한한 상상력이 허용되는 매체이지만 영화는 그렇지 않다.

제한된 상영 시간, 예산, CG의 물리적 한계, 배우 연기라는 요소들을 복합적으로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장르적 차이의 무시는 그동안 많은 실사 영화들이 실패한 원인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박찬욱 감독은 어디선가 “물리적 제한이 창의성을 만든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의 말처럼 앞서 <전독시> 제작진은 웹툰과 영화가 가지고 장르적 차이와 한계를 인지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들은 원작을 그대로 스크린에 옮기기보다는 영화 장르에 맞춰 다시 쓰기를 시도하였다.

이 같은 전략적 접근은 원작의 설정들을 일정 부분 희생하더라도, 웹소설 설정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들이 거부감 없이 작품을 즐길 수 있도록 서사를 재구성하는 방식을 선택하도록 하였다.

그리하여 영화 <전독시>는 개인이 생존하기 위해 무한경쟁해야 자본주의 사회의 원리를 게임의 규칙으로 형식화하고, 코인 획득과 교환 과정에서 인간의 존엄이 어떻게 훼손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내러티브 구성 방식을 취하였다. 

이 작품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캐릭터들이 도깨비에 의해 주어진 미션을 수행 과정에서 대타자의 기준을 주체가 자연스럽게 내면화한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강제였던 규칙이 생존을 위한 자발적 목표로 변하고, 어느새 경쟁과 랭킹 시스템은 모두에게 자연스러운 삶의 방식이 된다. 또한 미션으로 얻게 된 보상은 개인을 강화하는 수단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더 큰 위험에 주체를 내던지게 하는 자기 착취 수단으로 작동한다. 

무엇보다 영화 속 인물들의 위기는 스크린 밖 관객들의 응시와 쾌락을 만족시키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진행된다. 도깨비들이 유튜브 채널을 중계하는 것처럼 전독시 세계에서 인물들의 고통과 죽음은 독자의 위치에 배치된 관객들의 오락과 흥분의 원천이 되고, 인물들의 운명은 대타자의 응시(성흔: 게임화된 일종의 유튜브 후원 시스템)를 생존 조건으로 삼는다. 

이러한 소설 ‘멸살법’ 내 게임화된 세계 속에서 사람들은 불합리한 규칙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강자의 규칙을 따르며, 권력에 복종하는 자기 자신을 정당하다고 합리화한다. 예컨대 미션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등장한 괴수들을 함께 물리치기보다, 코인을 상납하고 타인에게 희생을 강요하거나 외면하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이 같은 장면은 비합리적인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한 알레고리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영화는 현실 자본주의 시스템의 불합리가 기만적인 권력자의 도착적인 전횡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윤리적 결정의 책임을 타인에게 미루려는 대중들의 감춰진 요구에 토대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그런 가운데 주인공 김독자의 선택은 두드러진다. 모두가 윤리적 책임을 회피하고 자기 생존만을 좇을 때, 그는 자신이 모은 십만 코인을 사람들에게 내놓고 혼자 먼저 적진으로 뛰어든다. 감독의 의도는 명확하다. 파국에서 벗어나는 길은 연대와 협력뿐이라는 것이다.

이 같은 연출은 원작에서 다층적인 인물로 그려지는 김독자라는 캐릭터를 단순화한다. 그렇지만 이런 비판에도 불구하고 영화 <전독시>는 경쟁·보상·응시라는 게임화의 형식을 통해 대타자의 규범이 어떻게 주체에게 내면화되는지, 어떻게 대타자의 쾌락을 충족시키기 위해 주체가 자기 착취에 동의하는지와 같은 게임화하는 자본주의의 심리적 메커니즘을 포착하고 있다는 점은 충분히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대목으로 보인다.

▲심우일 선문대학교 K-언어문화기업학과 강사 
·선문대학교 문학이후연구소 전임연구원
·롤링스톤 코리아 영화 부문 편집위원 활동 
·전주국제단편영화제 프로그래머 역임 
·TBN 전북교통방송 프로그램 ‘차차차’ 라디오 방송 활동
·웹진 <문화 다> 편집위원 역임 
·제3회 유럽단편영화제 섹션 ‘삶을 꿈꾸다 (DERAMERS)' 책임 강연 
·계간지 <한국희곡> 편집위원 역임 
 -연극인 인터뷰 <최치언, 정범철, 김광탁 작가> 및 연극 평론

‘인생한편’은 영화평론가 심우일이 매주 한 편의 영화 속에서 삶의 질문과 여운을 찾아 전하는 이야기입니다. 본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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