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플러스] 한전 연이은 갑질 폭로…‘노조 사각지대’ 3직급들의 잔혹사

경제·산업 입력 2020-05-14 18:14:27 수정 2020-05-14 18:14:27 정순영 기자 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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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제TV=정순영 기자]


[앵커]

한국전력에서 사내 갑질 피해자들의 내부 폭로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군대식 사내문화가 뿌리깊게 박혀있어 인사 영향력이 막강한 부장급들의 갑질에 노조 가입이 안 되는 차장급들이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고 하는데요. 사안이 얼마나 심각한지 정순영 기자와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기자]

네. 안녕하십니까.


[앵커]

한전에서 계속되고 있는 내부 폭로가 외부로 알려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하던데,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입니까.


[기자]

지난달 28일 직장인들의 익명 커뮤니티 앱에 ‘한전 본사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폭로 글이 올라왔습니다. 노조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한전 차장급인 A씨가 상사로부터 지속적인 괴롭힘과 막말, 폭행 등에 시달려 왔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는데요. A씨는 폭로 게시글에서 “결재 과정에서 1시간에서 3시간을 세워놓고 모욕적인 폭언을 수시로 들어왔고, 총 세 차례에 걸쳐 등을 가격당하거나 보고서를 말아 머리를 찍고 밀치는 등 폭행을 당해왔다”고 주장했습니다. A씨는 우울증 약과 정신과 처방이 무용지물일 정도의 정신불안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는데요. 녹음파일과 상황 증거들로 본사 감사실에 신고하고 경찰에도 형사 고소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앵커]

이 정도면 군대보다 더 군기가 센 직장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충격적인데, 가해자 해명이 더 논란이라고요.


[기자]


해당 폭로글이 온라인 상에 확산되자 A씨가 지목한 가해자는 회유에 나섰습니다. 현직 부장인 B씨는 A씨에게 전화를 걸어 “회사 생활이 많이 남아있는데 잘해보자고 한 것”이라면서 “보고서로 머리를 찍은 게 아니라 본인이 머리를 들이민 것이고 등을 때린 것이 아니라 그냥 손을 얹은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앵커]

본인이 머리를 들이 밀었다는 해명은 상식적으로 납득이가지 않는데요. 이게 끝이 아니라 최근 두 번째 갑질 폭로가 또 나왔다고요. 


[기자] 

취재 결과 지난달 말 한전 인천지역본부 부장급 간부의 사내 갑질에 시달리던 차장급 직원의 ‘직장 내 괴롭힘’ 신고가 감사실에 또 접수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신고 직원은 가해 부장의 갑질 증거인 녹취본을 갖고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향후 추가 폭로가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한전 측은 “인천본부 차원에서 사건에 대한 자체 조사가 진행 중”이라는 입장이지만, 이미 해당 간부는 타 지부로 발령된 상태여서 사실상 갑질 신고에 대한 내부 조치가 끝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는데요. 지난달 28일 알려진 한전 본사 사내 갑질 사건 역시 해당 부장을 지부로 이동시킨 뒤 아직까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어서 한전의 직장 내 괴롭힘 신고 대응 방식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앵커]

설마 이대로 조용해지길 기다리는건 아니겠죠. 들어보니 한전 조직문화에 분명 근본적인 문제가 있지 않나 싶은데요. 


[기자]

3직급인 한전 차장급 직원들은 노조 가입이 제한된데다 승진 심사에 부장급 간부들의 영향력이 막강하기 때문에 사내 갑질에 매우 취약한 위치에 놓여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한전 직원의 첫 내부 폭로를 시작으로 그동안 승진에 불이익을 받을까 ‘쉬쉬’ 해왔던 차장급들의 익명 폭로가 줄을 잇고 있습니다. 익명 직장인 커뮤니티 상에는 ‘해외사업처 출신 배전부장’, ‘본사 송변전 부장’ 등의 직급이 거론되며 심각한 사내 갑질을 당해왔다는 글들이 속속 올라오고 있는데요. 좀처럼 외부에 노출되지 않았던 한전의 사내 갑질 문제들이 하나둘씩 터져 나오면서 업계에서는 ‘결국 터질게 터졌다’는 분위깁니다. 과거 부장 승진심사 기간 동안 추천권이 있는 현직 부장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접대를 하러 전국을 돌아다니거나, 직원들이 조를 짜 돌아가며 부장급들의 식사나 술 상대를 해주는 일명 ‘밥 당번’ 문화 등은 이미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기도 한데요. 한전을 비롯한 공기업들의 조직문화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시민단체의 얘기 들어봤습니다.


[박점규 운영위원 / 직장갑질119]

“30년 정도의 군사독재 시절 안에 만들어졌고 그 사이에 성정했던 회사들이다보니까 다른 기업들에 비해서 약간의 위계문화가 상당히 깊게 남아있는 곳들이에요. 지금 사회가 굉장히 빠르게 변하고 있고 위계보다 개인의 창의성과 자율성을 존중하는 문화로 바뀌어가고 있는데, 한전이나 포스코 같은 과거 군사정부 시절에 만들어졌던 공기업들의 최상위 상급자들은 사실은 그때 입사했던 분들이거든요. 아무래도 저희 ‘직장갑질 119’에서는 이런 분들, 특히 관리자급에 있는 과거 80년대 입사해 지금 관리자로 와있는 이런 분들이 사실은 좀 집중적으로 교육을 받아서 시대의 변화를 읽을 수 있도록 만드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앵커]

공기업들이 시대의 변화를 읽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로 들리는데요. 곧 세 번째 폭로가 이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인데 이번 사태에 대한 한전의 대책은 뭔가요.


[기자]

차장급 노조를 결성하자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한전 측은 아직까지 근본적인 대책을 내놓진 못하고 있습니다. 한전 측은 “향후 갑질 근절을 위한 직원 교육을 강화하고 온라인신고센터를 개설하는 등의 대책을 세울 예정”이라고 밝혔지만, 직원들 사이에선 “이미 예상된 탁상공론식 시나리오”라는 자조 섞인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특히 ‘공기업 청렴사회협의회’ 의장을 맡고있는 김종갑 한전 사장은 직장 내 괴롭힘 관련 제도를 점검하는 등 공기업 반부패 논의에 앞장서 왔지만 이번 사태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


[앵커]

익명 직장인 커뮤니티에서 한전이 뜨거운 감자인 모양인데요. 직원들 뿐만 아니라 간부급들의 항변도 이어지고 있다고요.


[기자]

얼마 전 부장급으로 추정되는 익명의 간부가 직장인 커뮤니티에 올린 게시글이 한전 직원들을 더욱 자극하고 있습니다. ‘회사 돌아가는 꼬락서니 아름다워질 듯’이라는 한 게시글에서 해당 글쓴이는 “이제는 아래 직원이 일을 못해도 아무 말도 못하고 가만히 있어야 하는 시대가 됐다”며 “안 되는 것들은 두들겨 패서라도 계도해야 하는데 그렇게 못하니 이 사단이 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또 “예전엔 저것보다 더한 행위도 허다했고 그럼에도 신고하니 마니 하는 멘탈 약한 애들은 없었다”며 “본사에서 처·실장, 부장들이 온화하면 어찌 되는지 보겠느냐, 풀어주면 호구로 보는 것은 다 똑같기 때문에 개판이 날 것”이라고도 적었습니다. 이를 두고 커뮤니티 내 한전 직원들은 “본사 간부들의 사고방식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글”이라며 분노하고 있습니다.


[앵커]

참 시대착오적인 발상이 아닐 수가 없는데요.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시행됐어도 직장 내 갑질 문제는 여전하네요. 이유가 있을까요.


[기자]

지난해 7월부터 시행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에 따르면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유발하는 직장 내 괴롭힘이 확인되면 사업주는 가해자를 즉시 징계해야 합니다. 하지만 정작 괴롭힘 행위에 대한 처벌조항이 없어 직장 내 괴롭힘은 쉽게 근절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피해직원이 신고했다는 이유로 회사에서 해고 등 불이익 조치를 해야만 형사처벌을 할 수 있도록 한정하고 있기 때문인데요. 심지어 처벌 대상도 불이익 조치를 한 사업주이고 정작 가해 당사자는 처벌 대상에서 빠지게 됩니다.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현행 '직장내괴롭힘법'에 가해자 처벌조항을 포함하는 등 강력한 제재방안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앵커]

지난해 고용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한전의 경우 2014년부터 2018년까지 5년간 총 10명이 업무상 정신질환으로 인한 산업재해를 호소했고, 이 중 7명의 노동자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하는데요. 엉뚱한 곳에서 공기업 1위를 하고 있는 한전, 이번 사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 다같이 지켜봐야겠습니다. 잘 들었습니다. /binia96@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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