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사실 공개했는데 왜 '형사처벌'?…재미 변호사들 공저 '명예훼손'

전국 입력 2022-07-21 16:38:40 수정 2022-07-21 16:38:40 신홍관 기자 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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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근·정주명 재미 변호사 공동저서
"언론 자유에 중대한 침해, 국가 형벌권 남용"

김원근·정주명 공저 '명예훼손' 표지.

[서울경제TV=신홍관 기자] 재미 한인 김원근·정주명 변호사가 '명예훼손'이란 책을 공동으로 펴냈다.


사법시험 30회(1988년) 합격 후, 국내 변호사 10년, 미국 3개주의 변호사(버지니아, 메릴랜드, 워싱턴 D.C) 16년 경력의 김원근 변호사, 현재 워싱턴 D.C에서 활동중인 정주명 변호사가 저서 '명예훼손'을 최근 출간했다. 박영사, 650여 쪽.


국내에서 10년을 활동한 후 현재는 미국에 머물러 있는 김원근, 정주명 변호사가 굳이 국내법 체계의 '명예훼손'을 거론하며 책을 펴낸 이유는 뭘까?


저자는 서문에서 "명예훼손은 현대사회에서 가장 많이 이슈가 되고 있는 법률분야다. 우리나라에서 명예훼손과 관련된 많은 케이스들의 피해자들이 법원이 아닌 수사기관을 통해 분쟁을 해결하는 것을 보고 많은 의문을 가지게 됐다"며 이번 집필 동기를 밝혔다.


이어 "2020년도에 헌법재판소에서 사실적시 명예훼손과 관련된 형법규정이 합헌이라는 결정을 내린 것을 보고 우리나라의 명예훼손과 관련된 법이 너무 많이 잘못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술회했다.


사실이든 거짓이든 명예를 훼손하면 엄하게 처벌해야 하는 것 아닌가란 질문에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명예훼손은 사실적시에(진실한 사실을 공개하는 것에) 의한 명예훼손(형법 307조 제1항)과,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형법 307조 제2항) 크게 둘로 나눈다. 여기에서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등 다양한 개별 유형이 추가로 분화된다. 특히, 사실적시 명예훼손(307조 제1항)의 경우 제 310조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아니한다.'라는 위법성 조각의 단서가 붙어 있기도 하다.


얼핏 보면 잘 짜여진 법 체계로 보이지만, 여기에는 적어도 두가지 이상의 큰 함정이 있다.


먼저 공공이 반드시 알 필요가 있는 중요한 진실을 위험 또는 손실을 감수해 가며 알렸는데 왜 범죄인으로 처벌을 받느냐는 의문이다. 다만, 이 경우에도 저자의 설명에 의하면 상대방이 공적 지위에 있는 경우와 개인간의 분쟁(프라이버시 보호)은 달리 취급된다.


저자는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을 형사처벌하는 것은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인 언론의 자유에 대한 중대한 침해이며 국가 형벌권의 남용이다. 형법의 기본원리에도 반하기 때문에 하루 빨리 관련 형법규정을 없애야 한다. 특히 공인에 대한 혹은 공적인 관심사에 대한 명예훼손과 관련해서는 언론의 자유를 보호하는 것이 더 중요한 가치가 있기 때문에 형사처벌을 하면 안된다"고 통렬히 비판한다.


또 한가지는 수사기관을 통한 분쟁 해결은 민사적 다툼에 비해 훨씬 두려운 물적, 심적 고통과 절차의 강제성을 수반하는데 명예훼손을 형사문제화 하면 얼마든지 사적 복수의 도구로 악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은 괘씸죄로 괴롭히기에 딱 좋은 형벌 규정이다. 실제, 내용의 사실 여부는 차치하고 일단 명예훼손으로 걸어 놓으면 사실을 공개한 당사자는 수사기관과 사법기관에 불려가 준 범죄인 취급을 받으며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이라는 내용이 입증을 거쳐 확정될 때 까지, 엄청난 물리적, 심적 고통을 겪게된다.


특히 언론보도에서 100% 사실만을 보도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직접 당사자도 기억이 흐려지면 잘못된 주장을 할 수 있는데, 이를 듣거나 추적하여 보도하는 입장에서 어떻게 100% 있는 사실 그대로를 기록할 수 있겠는가란 질문에 307조 제1항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의 구제 조항인 310조의 '진실한 사실로서'라는 표현에서 벌써 함정의 여지가 나온다.

실제 사실을 공개했음에도 그 중의 일부 표현이나 추상적 태도를 허위의 사실로 문제삼아 고소, 고발하고 처벌 받게하는 악의적 공격이 현실에서는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우리나라에는 수사기관을 통해 명예훼손 관련 분쟁을 해결하려는 경향이 아주 뚜렷한데 이 때문에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려는 헌법가치가 무시되고 있다. 이는 형사 사법권의 남용이며 반드시 시정돼야 한다"며 현행 명예훼손 체계에 대한 근원적 문제를 제기했다.


김 변호사는 "이 책에서는 명예훼손과 관련된 미국 연방대법원의 중요 케이스들을 정리하고 이를 바탕으로 해서 각 이슈별로 발전된 법리들을 중심으로 연방 법원뿐만 아니라 각 주법원의 대표적인 케이스들을 정리해서 독자님들이 이해하시기 편하도록 소개했다"고 말했다.


또한 "명예훼손과 관련된 (미국법원의) 증거조사를 소개하고 있다. 언론사와 기자는 어느 범위까지 증거를 공개하여야 하는지에 대한 케이스들도 정리해보았다"면서 "이런 증거조사가 법원에서 제대로 이루어지면 수사기관에 분쟁해결을 호소하는 경우는 현저하게 줄어들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소감을 밝혔다.


아울러 "문제가 된 발언의 내용이 표현의 자유에 의하여 보호되어야 할만한 가치가 있는지 여부는 명예훼손의 법리판단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피해자가 공인이고 공적인 지위에 있는 경우에는 그에 비례하여 국민들의 알권리가 더 많이 인정되어야 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명예훼손법에 의하여 보호되는 범위가 좁다"고 하고 "하지만 개인간의 분쟁이고 문제가 된 발언이 언론의 자유에 의하여 보호될 만한 가치가 적을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명예훼손법에서 보호되는 범위가 더 넓다"고 해석했다.


명예훼손은 1장 미국 명예훼손 핵심 케이스, 2장 주제별 미국 명예훼손 케이스, 부록 미국법원의 증거조사 실무, 미국 법률용어 해설 등으로 엮었다. /hknew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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