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우일의 인생한편 | 슈퍼맨] 인간이 된 신

전국 입력 2025-07-25 07:47:47 수정 2025-07-25 07:53:37 이경선 기자 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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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건 감독의 영화 <슈퍼맨> (2025)

심우일 선문대학교 K-언어문화기업학과 강사/영화평론가

슈퍼맨은 DC 유니버스의 다른 히어로들과 뚜렷하게 구별되는 지점이 있다. 바로 선한 의지를 지닌 외계인이라는 설정이다. 1978년작 영화 <슈퍼맨>에서 그는 고향인 크립톤 행성이 멸망하면서, 부모에 의해 우주선을 타고 지구로 보내진다.

지구에 도착한 그는 시골 농장에서 평범한 양부모의 손에 자라며, 인간 사회의 도덕과 사랑을 배우게 된다. 남들과 다른 초능력 때문에 방황하던 그는 훗날 자기 출생의 비밀을 마주하게 되고 슈퍼맨으로 성장한다.

이 영화에서 슈퍼맨의 생물학적 아버지 조엘은 초월적 존재로 묘사되며, 슈퍼맨은 신의 아들이자 예수의 상징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성경 속 예수가 신의 뜻을 세상에 전한 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면, 슈퍼맨은 사랑하는 연인을 살리기 위해 아버지의 명을 어기고 지구의 시간을 과거로 되돌린다. 이 장면에서 우리는 슈퍼맨이 단순한 신의 대리자가 아니라는 것, 아버지의 율법 대신에 사랑이라는 감정을 선택하는 인간적 존재로 거듭나는 순간을 목격한다.

예수가 인간으로 태어나 신이 되었다면, 슈퍼맨은 신적인 존재로 태어나 인간이 되기를 선택한다. 바로 이 지점이 슈퍼맨이라는 캐릭터를 특별하게 만든다. 그는 운명에 복종하는 대신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함으로써 인간이 된다. 이 주제 의식은 이후 슈퍼맨 시리즈 전반을 관통하는 철학이 된다.

이러한 고민은 <맨 오브 스틸> (2013)에서도 이어진다. 크립톤 행성에서 온 조드 장군의 침공으로부터 지구를 지키는 슈퍼맨은 어쩌면 크립톤 행성의 재건을 위해 지구를 지배할 수 있었음에도 자신의 자유의지에 따라 그것을 거부한다.

또한 <배트맨 대 슈퍼맨> (2016)에서는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자기를 희생하고자 함으로써 배트맨에게 인간임을 인정받는다. 슈퍼맨은 신이 아닌 자기 스스로 정의한 인간다움의 기준을 따라 행동하는 존재가 된다. 

2025년 개봉된 제임스 건 감독의 <슈퍼맨>은 이러한 전작들의 전통을 이어가면서도 새로운 변화를 시도한다. 이번 작품에서는 슈퍼맨이 원래 지구를 정복하라는 사명을 지닌 채 크립톤에서 보내졌다는 설정이 새롭게 등장한다. 기존 작품이 아버지의 뜻을 거부하는 슈퍼맨을 다룬다면, 이번 작품은 아버지의 뜻 자체를 부정하는 슈퍼맨을 등장시킨다. 쉽게 말해 1978년작 <슈퍼맨>에서는 시간을 되돌리지 말라는 아버지의 명령을 거부하지만, 정의라는 기성의 가치는 그대로 유지된다.

반면 제임스 건의 <슈퍼맨>에서는 칼엘이 친아버지 조엘의 명령 자체를 부정하며, 슈퍼맨으로서 자신만의 가치를 정립한다. 그는 지구 정복이라는 운명을 거부하고, 지구를 지키는 히어로가 되기로 결심한다.

이러한 영화적 설정은 오늘날 미국 사회를 상징적으로 반영한다. 슈퍼맨은 오랫동안 미국의 이상과 패권을 대변하는 캐릭터로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이번 작품에서 슈퍼맨은 더 이상 절대적인 힘을 지닌 히어로가 아니다. 대신 그는 새로운 규범과 윤리를 만들어가는 주체적 존재로 그려진다.

이것은 더 이상 절대 강국이 아닌 세계 질서 속에서 다른 국가들과 협력하고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미국의 모습을 은유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번 작품에서 슈퍼맨은 예전처럼 모든 적을 손쉽게 제압하는 절대적 능력을 지니고 있지 않다.

그도 적의 타격에 상처를 입고, 적의 속임수에 넘어가 동료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영웅들 중의 한 명이다. 이것은 슈퍼맨이라는 캐릭터의 위상이 과거와 달리 변화했음을 보여준다. 

슈퍼맨은 더 이상 신과 같은 위상을 지닌 존재가 아니라 외부의 다른 존재들과 협력하고 연대해야 하는 인간의 자리로 내려온 것이다. 이처럼 제임스 건의 <슈퍼맨>은 이 시리즈에 내재하는 신화적 이미지를 해체하고, 신에서 인간이 된 슈퍼맨의 정체성을 명료하게 구축한다. 인간이 된 슈퍼맨은 내적으로 연약하고, 윤리적으로 고민하는 히어로이다.

그는 크립톤 행성을 재건하라는 친아버지 조엘의 뜻을 무조건 따르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만의 윤리적 기준으로 행동하는 주체적 존재로 거듭나는 것이다.

▲심우일 선문대학교 K-언어문화기업학과 강사 
·선문대학교 문학이후연구소 전임연구원
·롤링스톤 코리아 영화 부문 편집위원 활동 
·전주국제단편영화제 프로그래머 역임 
·TBN 전북교통방송 프로그램 ‘차차차’ 라디오 방송 활동
·웹진 <문화 다> 편집위원 역임 
·제3회 유럽단편영화제 섹션 ‘삶을 꿈꾸다 (DERAMERS)' 책임 강연 
·계간지 <한국희곡> 편집위원 역임 
 -연극인 인터뷰 <최치언, 정범철, 김광탁 작가> 및 연극 평론

‘인생한편’은 영화평론가 심우일이 매주 한 편의 영화 속에서 삶의 질문과 여운을 찾아 전하는 이야기입니다. 본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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