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우일의 인생한편 | 바이러스] 병이라는 사랑의 은유 

전국 입력 2025-08-22 23:00:38 수정 2025-08-22 23:00:38 이경선 기자 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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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이관 감독의 영화 <바이러스> (2025) 

▲ 심우일 선문대학교 K-언어문화기업학과 강사/영화평론가

강이관 감독의 영화 <바이러스>는 셰익스피어의 고전 희곡 <한여름 밤의 꿈>을 현대적으로 변용한 작품이다. 희곡 <한여름 밤의 꿈>은 사랑의 변덕과 혼란을 코믹하게 풀어낸 작품으로, 장난꾸러기 요정 퍼크가 ‘사랑의 꽃즙’을 다른 사람에게 잘못 바르는 바람에 두 쌍의 연인이 엇갈린 사랑을 하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극의 마지막에 실수를 바로잡은 퍼크 덕분에 사랑의 마법이 풀린 연인들은 다시 제 짝을 찾으며 사건이 해결된다. 

이때 희곡에 등장하는 ‘사랑의 꽃즙’은 영화 <바이러스>에서 우울증 치료제로 개발된 톡소 바이러스로 모습이 바뀐다. 또한 병원 연구소를 탈출한 쥐들이 세상에 바이러스를 퍼뜨린다는 영화 속의 설정은 카뮈의 소설 <페스트>에서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영화에서 처음 바이러스가 외부로 퍼져나가는 모습은 카뮈의 소설처럼 정부의 뒤늦은 대응과 전염병이 퍼져나가는 상황을 축소한 관리자들 때문이다. 

관련 기관들의 무책임한 태도 때문에 평범한 시골 마을에 톡소 바이러스가 퍼지게 되고,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은 사랑의 열병을 앓게 된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톡소 바이러스에 감염된 마을 사람들은 병원 재단의 연구소로 끌려와 오히려 우울증 치료를 위한 임상 실험의 대상이 된다. 연구소의 실험용 쥐들이 퍼뜨린 바이러스로 인간이 실험용 쥐와 같은 처지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이 같은 장면들은 바이러스를 매개로 통제 불가능한 대상을 사회에서 배제하는 국가 시스템과 병을 도구로 신약을 개발에 열을 올리는 자본의 냉정함을 냉소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수전 손택은 저서 <은유로서의 질병>(2002)에서 병이란 단순한 생물학적 현상이 아니라 타자를 배제하는 은유로 작동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의 말처럼 영화 <바이러스>에서 병은 국가나 병원이 개인을 감금하고 처벌할 수 있는 권력을 주는 매개로 작동한다. 

국가와 자본은 환자들에게 동의라는 형식으로 임상 실험 참여를 강요하고, 치료한다는 핑계로 실험을 위해 환자의 피를 뽑으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는 간호사의 모습은 그로테스크하게 보인다. 

이렇듯 영화 <바이러스>는 우리의 일상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국가와 자본의 권력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과 비판의 시선을 보여주면서도, 기존 재난 영화들이 보여줬던 내러티브 구조를 따르지 않는다. 일반적인 재난 영화들은 대부분 외부 위협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인간의 이기적인 태도를 전면적으로 내세우기 마련이다.

극한의 제한적인 상황이 불러오는 인간의 이기심은 적은 외부가 아닌 내부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우리 도덕의 한계를 시험한다. 

이 과정에서 영화 속의 많은 주인공들은 이기적 인물들과 대립하다가 윤리적 책임을 지고 희생되거나, 도덕을 말하는 인물들의 무책임과 무능력은 오히려 관객들에게 비판의 대상이 되고는 한다. 그렇지만 영화 <바이러스>는 이 같은 기성의 재난 서사와 다른 관점을 보여주고 있다.

기성의 작품들이 인간 본성과 도덕에 대한 불신을 내세운다면, 영화 <바이러스>는 ‘병의 은유’를 ‘사랑의 은유’로 치환해 바이러스의 감염을 회복과 성장을 불러오는 해방의 힘으로 전환한다. 

사랑과 바이러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둘 다 예측 불가능하다는 점이 아닐까? 병의 통제 불가능성은 보통 죽음의 이미지와 겹쳐 사람들에게 공포를 불어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영화 <바이러스>에서 바이러스 감염은 개인이 자기 내면의 장벽을 극복하는 성장의 계기가 되거나, 서로 무관했던 사람들의 삶을 교차시키며 새로운 관계(예컨대 택선과 이균의 사랑)를 생성하는 우발성의 매개로 작동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서사와 다른 관점을 보여준다.

이렇듯 영화 <바이러스>는 병의 은유를 사랑의 은유로 치환해 정상성이 배제한 틈을 넘어서는 해방의 상상력을 펼쳐 보인다.

▲심우일 선문대학교 K-언어문화기업학과 강사 
·선문대학교 문학이후연구소 전임연구원
·롤링스톤 코리아 영화 부문 편집위원 활동 
·전주국제단편영화제 프로그래머 역임 
·TBN 전북교통방송 프로그램 ‘차차차’ 라디오 방송 활동
·웹진 <문화 다> 편집위원 역임 
·제3회 유럽단편영화제 섹션 ‘삶을 꿈꾸다 (DERAMERS)' 책임 강연 
·계간지 <한국희곡> 편집위원 역임 
 -연극인 인터뷰 <최치언, 정범철, 김광탁 작가> 및 연극 평론

‘인생한편’은 영화평론가 심우일이 매주 한 편의 영화 속에서 삶의 질문과 여운을 찾아 전하는 이야기입니다. 본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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