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4人4色 | 이강산] 예술이 내게 건네온 느린 처방전
전국
입력 2025-12-24 16:30:38
수정 2025-12-24 16:30:38
이경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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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아프면 병원을 찾지만, 마음이 아플 때는 어디로 가야 할까. 요즘 그 해답을 ‘문화’에서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예술은 감상 이상의 역할을 한다. 그것은 회복의 언어이며, 치유의 과정이다.
필자의 지인 또한 수술과 항암치료로 지친 몸을 회복하는 동안 문화의 힘을 새삼 느꼈다고 한다. 몸이 완전히 따라주지 않아도 미술관 한 바퀴를 천천히 돌며 관람하고, 병원 외래를 갈 때면 음악을 듣고, 집에서 쉴 때는 글을 쓰는 시간이 큰 위로가 되었다고 했다.
예술은 결과를 요구하지 않는다. 그저 바라보고, 듣고, 느끼는 그 자체로 마음을 어루만진다. 그는 “문화예술로 지친 심신을 치유받는다”는 말을 자주 했다. 예술이 삶의 한가운데 있을 때, 인간은 비로소 자신을 회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문화복지 정책의 핵심은 바로 이 일상 속의 ‘느림의 가치’를 사회적으로 보장하는 데 있다. 의료나 경제적 복지처럼, 문화 또한 인간다운 삶의 기본권으로 봐야 한다. 문화기본법이 제정된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아직 현실은 균등하지 않다. 대도시 중심의 문화시설과 프로그램은 많지만, 지역 간 문화 격차는 여전히 크고, 계층에 따라 향유 기회도 제한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방자치단체와 문화관련기관의 역할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행정은 단순한 지원자가 아니라, 예술가와 시민, 기관과 지역을 연결하는 문화의 조정자이자 촉진자가 되어야 한다. 복지의 목적이 ‘삶의 질 향상’이라면, 문화는 그 질을 완성하는 마지막 조각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필자는 늘 한 가지 질문을 품었다. “예술은 어떻게 사람에게 닿을 수 있을까?” 작가로서는 작품을 통해 관람자에게 말을 걸고 싶었고, 행정과 기관에 있을 때는 관람자가 예술의 ‘주체’로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고민했다.
문화예술을 접하는 통로가 다양해질수록, 국민은 단순한 수요자가 아닌 창조적 향유자가 된다. 그때 비로소 예술은 감상을 넘어 삶의 언어가 된다.
예술이 사회와 만날 때 가장 큰 힘을 발휘한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그 힘이 발휘되기 위해서는 시간과 공간의 여유, 그리고 사회적 배려가 필요하다. 문화복지는 결국 예술을 통해 ‘존재의 회복’을 돕는 일이다. 병의 고통을 잊게 하는 음악, 외로움을 덜어주는 전시, 일상 속에서 마음을 붙잡아주는 글 한 편이 모두 문화복지의 한 페이지이다.
필자 또한 개인적으로 치료와 회복의 시간을 지나며 문화를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그때 알았다. 문화는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머무는 것’이라는 사실을. 잠시 멈춰 서서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시간, 그것이 문화의 진정한 힘이었다.
문화는 조용하지만 확실한 처방전이다. 약보다 느리지만, 더 오래 남는다. 예술을 통해 우리는 다시 살아갈 이유를 발견하고, 문화 속에서 삶의 온도를 되찾는다. 이제는 그 치유의 경험이 개인의 영역을 넘어 사회 전반으로 확장되기를 바란다. 문화가 우리 모두의 일상 속에서 작동할 때, 비로소 진정한 복지국가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글은 필자의 ‘4인 4색’ 연재의 마지막 원고이기도 하다. 그러나 글의 마침표가 곧 생각의 끝은 아니다. 앞으로도 현장에서 문화정책의 의미를 깊이 고민하며, 예술과 지역을 잇는 일을 계속하고자 한다. 무엇보다도 다양한 담론을 만들어내고, 그 담론이 삶의 변화를 이끄는 힘이 되기를 바란다.
문화가 우리 일상 속에서 더 많은 사람에게 닿아 풍요로운 세상을 만들어 가는 데 작은 보탬이 되길 바라며, 필자의 글도 그 과정에 조용히 응답하고 싶다.
▲ 이강산
대학에서 미술실기를 전공하고, 미술교육으로 석사학위를, 미술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약 7년간 기초·광역문화재단에서 근무하며 문화기획과 예술현장을 경험하였고, 등록 사립미술관과 광역 공립미술관에서 학예연구사로 약 6년간 재직하며 전시 기획과 소장품 업무를 주로 담당했다. 이후 독립기획자로 활동하며 특히 전북을 기반으로 한 지역미술사 연구와 기획·비평을 이어가고 있다.
'문화 4人4色'은 전북 문화·예술 분야의 네 전문가가 도민에게 문화의 다양한 시각과 깊이 있는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매주 한 차례씩 기고, 생생한 리뷰, 기획기사 등의 형태로 진행됩니다. 본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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