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인 자택 앞 '민폐 시위'…주민 고통에 규제 강화 목소리
경제·산업
입력 2024-10-28 10:39:09
수정 2024-10-28 12:32:14
이혜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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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격한 문구와 과도한 소음에 인근 주민 극심한 스트레스 호소… 사법부, 민폐 시위에 제동 걸기도
시위와 무관한 주거지역 대다수 시민들의 평온권 및 학습권 등 헌법적 가치 보호해야
[서울경제TV=이혜란기자] 정부 고위 공직자와 기업인 자택 앞에서 무분별한 민폐 시위가 이어면서 인근 주민들의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
시위 참가자들이 협의 당사자가 아닌 대기업 총수 등 기업인의 자택 앞에서 소음을 발생시키거나 자극적 문구를 게시해 모욕을 주는 등 일부러 소란을 피운다는 지적이 나온다.
빈 자택 앞 시위도 사례로 꼽힌다. 지난 7월 서울 한남동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자택 앞에서 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기 위해 기자회견을 개최한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는 총파업 시작 후 사측과 임금교섭을 벌여왔지만 ‘직원 전용 쇼핑몰 200만 포인트 지급’ 등 무리한 요구를 잇따라 추가하며 협상을 지연시켰다.
전삼노 측은 협상이 난항을 겪자 이재용 회장의 자택으로 향했다. 당시 이재용 회장은 2024 파리올림픽 참관과 비즈니스 미팅 등을 위해 유럽 출장 중이었던 만큼 빈 자택 앞에서 벌인 시위는 사회적 관심을 끌기 위한 전략에 가까웠고, 피해는 고스란히 인근 주민들의 몫으로 돌아갔다.
서울 한남동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자택 인근에서도 투쟁이 벌어지고 있다. 작년 영업이익의 2배에 상응하는 성과급을 요구하며 파업을 강행하고 있는 현대트랜시스 노조는 지난 26일 정의선 회장 자택 인근에서 상경투쟁을 벌였다.
약 20여명의 현대트랜시스 노조원들이 주말 오전에 현수막과 피켓 등을 동원해 주택가에서 시위를 벌이면서 주말 평온한 휴식을 취해야 할 인근 주민들에게 불편을 끼친 것으로 전해졌다.
전문가들은 노조가 기업인 자택 앞이나 인근 일반 주택가에서 무리한 민폐 시위를 벌이는 경우가 지속되고 있다며 노조의 이러한 무분별한 시위는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정해진 법과 절차도 무시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정의선 회장 자택 인근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피해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년 전 은마아파트 재건축 추진위 등 일부 주민들이 벌인 시위가 그 사례다. 당시 시위대는 국책사업인 GTX-C의 무리한 노선 변경을 요구하며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나 우선협상대상자인 현대건설을 제쳐두고, 협의 주체가 아닌 정의선 회장 자택이 위치한 한남동에서 민폐 시위를 시작했다.
법원은 같은 해 12월 한남동 주민 대표 등이 은마아파트 재건축 추진위 등에 제기한 시위금지 및 현수막 설치금지 가처분 신청을 대부분 인용하며 약 한 달간 이어진 시위에 제동을 걸었다.
지난해 공공개발 철회, 전세사기특별법 제정 등을 요구하며 다수 시위가 열린 서울 본동 원희룡 당시 국토부장관 자택 앞을 비롯, 오세훈 서울시장의 자택이던 서울 자양동 아파트, 추경호 당시 기재부장관이 거주하던 서울 도곡동 아파트 등 고위공직자 자택 인근에서도 크고 작은 시위도 잇따르고 있다.
마포구 소각장 신설 반대 등 각종 시위가 끊이지 않자 오세훈 서울시장은 "이웃들께 평온한 일상을 돌려 드려야겠다"며 주거 밀집 지역이 아닌 서울 한남동 내 위치한 시장 공관으로 이주하기도 했다.
집회·시위의 자유와 함께 주거지역 내 다수 시민들의 평온권 및 학습권도 보호하기 위해서는 집회·시위 요건 관련 더욱 강화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지난 8월부터 국민 의견 수렴을 거쳐 주거지역 등의 집회·시위 소음 기준치를 5 또는 10데시벨(dB)씩 하향 조정하는 집시법 시행령 개정안이 시행됐다. 이에 따라 해당 지역 최고 소음 규제 기준치는 주간 80데시벨, 야간 70데시벨 및 심야 65데시벨 이하로 낮아졌다.
그러나 80데시벨은 지하철 소리와 맞먹는 소음으로 청력 손실을 유발할 수 있는 수준이란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독일은 주거지역 내 집회·시위 소음이 주간 50데시벨, 야간 35데시벨을 초과할 수 없고, 미국 뉴욕에서는 집회 신고를 했더라도 확성기를 사용하려면 별도의 소음 허가를 받아야 한다. 유럽을 비롯해 캐나다와 뉴질랜드 등에서는 집회·시위 중 표출되는 극단적 혐오 표현에 대한 형사처벌이 가능하다.
법조계 한 전문가는 “정부가 지난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국민 71%가 집회·시위 요건 및 제재 강화에 찬성했다”며 “주거지역 내 다수 시민의 권리를 충분히 보호할 수 있도록 글로벌 주요국 수준의 실효성 있는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ran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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