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효과? 하루 열 명도 안 와요"…사라지는 동네 서점
경제·산업
입력 2024-11-02 09:00:04
수정 2024-11-04 13:28:58
이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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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년간 1천개 문 닫아 지역 서점 없는 지자체도...대형 체인 서점은 증가
교보문고 도·소매 병행 후 유통 구조 갈등…지역 서점 '한강 특수' 못 누려
지역 서점 지원 예산 대신 물류 인프라 예산 신설…서점들 의견 갈려
대전서도 최근 향토 서점 문 닫아…'동네 서점 없는 나라' 될까
[서울경제TV=이수빈 인턴기자]
“하루 매상이요? 솔직히 진짜 참혹해요. 요즘엔 확 문 닫아버리고 싶어요”
"제가 여고 때부터 다니던 서점인데, 지금 벌써 오십을 바라보네요. 요즘엔 사람이 없으니 여기 없어지는 건 아닌지..."
서울 은평구에서 30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동네 서점. ‘책’이라는 손 글씨가 커다랗게 쓰인 낡은 입간판이 긴 시간 이어온 세월을 대신 보여준다. 계단을 내려가 매장에 들어서면 반듯하게 쌓여진 새 책의 종이 냄새가 넓은 공간을 가득 채운다. 오랜 시간 같은 자리에서 명맥을 유지하며 이 동네 학생들이 지적 호기심을 풀고 어르신들이 지혜를 나누는 동네 사랑방의 역할을 해왔지만 현재는 그런 세월이 무색하게 한산하다. 학생 시절부터 이 서점을 찾았다는 손님 A씨는 한산한 서점을 둘러보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날 오후 1시까지 서점을 찾은 손님은 세 명. 그마저도 그중 둘은 베스트셀러 매대에 놓인 책을 살펴보더니 구매하지 않고 매장을 떠났다. 많아야 하루 열 명 남짓한 손님이 방문하지만 대부분의 손님이 매장에서 책을 살펴본 후 정작 인터넷이나 대형서점에서 할인 혜택을 받고 구매한다는 게 사장 B씨의 설명이다.
◇ 찾아보기 힘들어지는 동네 서점
동네서점이 사라지고 있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에서 2년마다 발간하는 '한국서점편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전국 지역 서점은 2,484개로 2005년 3,429개에 비하면 19년 동안 약 27%인 945개가 감소했다. 지난 1년 동안에도 44개 줄었다. 현재 서점 1곳당 인구는 2만 662명, 1곳당 학교 수는 4.9개다. 학생 3,048명당 하나의 서점만 있는 셈이다. '서점 없는 동네'도 찾아볼 수 있다. 올해 기준 서점이 하나도 없는 지방자치단체(시군구)는 10곳으로 2년 사이 3개가 늘었다. 서점이 한 곳뿐인 서점 소멸 예정 지역도 25곳인 것으로 드러났다.
반면 대형 체인 서점은 늘어나고 있다. 교보문고, 영풍문고, 서울문고, 알라딘, 예스24 등 대형 체인 서점 매장 수는 2015년 73곳에 불과했으나 2017년 기준 100곳을 넘어서며 지난해 기준 144곳을 기록했다. 9년 만에 두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다.
사장 B씨 역시 동네서점이 사라지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B씨는 “처음 시작할 때 이 동네 서점은 50개였지만 현재는 8개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며 점점 더 동네서점을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이 돼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삭줍기나 하라는 꼴"…동네 서점 죽이는 도서 유통 구조
이같이 동네 서점의 상황이 어려워지는 데에는 국내 도서 유통 구조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현재 국내에서 지역 서점 도매업을 담당하는 공급망은 교보문고와 웅진북센을 포함한 대형 총판 3~4곳이다. 2020년부터 본격적으로 책 도매업에 뛰어든 교보문고는 전국 매장 운영을 통해 확보하고 있는 풍부한 재고량과 규모를 바탕으로 빠르게 점유율을 확대해 나갔다. 현재 교보문고를 통해 책을 공급받는 전국 지역 서점은 약 50%에 달한다.
문제는 이같은 대형 총판이 공급하고자 하는 물량과 지역에 따라 전국 서점의 책 공급 대부분이 결정된다는 점이다. 특히 도매업과 소매업을 함께하는 교보문고의 경우, 자사의 소매업 매출을 위해 도매 물량을 조절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크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이점이 교보문고와 전국 서점 간 갈등으로 이어졌다. 노벨상 수상 소식에 한강 작가의 책이 큰 인기를 끌면서 불티나게 팔려나갔지만 그 혜택이 동네서점에 돌아가지는 못했다. 교보문고가 노벨상 수상 이후 일주일간 한강 작가의 책들에 대해 지역 서점들이 주문을 넣을 수 있는 자사 유통 서비스의 주문을 막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교보문고에서 책을 공급받는 지역 서점들은 한강 작가의 책을 찾으러 온 손님들을 빈손으로 돌려보내야 했다.
이에 지난 17일 한국서점조합연합회(서점조합)이 교보문고가 자사 유통 서비스 주문을 막았음을 밝히며 교보문고가 소매업 매출을 올리기 위해 지역 서점과의 상생을 저버렸다는 내용 보도자료를 발표하기도 했다. 교보문고는 이에 뒤늦게 대처에 나섰다. 지난 21일 교보문고는 광화문점에 설치한 현판을 통해 지역 서점과의 상생을 위해 10월 22일부터 31일까지 한강 작가의 도서 오프라인 매장 판매를 한시적으로 제한한다고 공지했다. 또 하루 최대 주문량을 도서 1종당 10부로 제한해 지역 서점들의 주문 접수를 재개했다.
그러나 주문 재개 이후에도 지역 서점들의 시선은 곱지 못했다. 교보문고가 '한강 특수'를 이미 쏠쏠히 누린 후 서점 연합이 이를 지적하자 뒤늦게 상생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교보문고는 노벨문학상 발표 이후 서점조합이 보도자료를 낸 17일까지 교보문고는 일주일 만에 한강 작가의 책 약 40만부(종이책 기준)를 판매한 것으로 드러났다. 서점들은 또, 재고가 턱없이 부족해 도서 공급이 지연될 수밖에 없었다는 교보문고의 입장에도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도매와 소매를 겸하지 않는, 교보문고를 제외한 다른 도매처들은 큰 차질 없이 도서 공급을 했기 때문이다.
교보문고를 도매처로 둔 사장 B씨도 이같은 문제를 토로했다. B씨는 "노벨상 발표 이후 한강 책 주문이 안 돼서 재고가 없나보다 생각했는데, 교보문고 매장에서는 재고를 가득 쌓아두고 버젓이 판매하고 있는 걸 봐 황당했다”며 “서점연합회 차원에서 민원을 많이 넣으니까 지금에서야 지역 서점에 양보하는 것처럼 얘기하는데, 살 사람은 이미 거의 샀으니 우린 '이삭줍기'나 하라는 꼴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또 이 같은 문제가 처음 수면 위로 드러났을 뿐 특정 도서가 유행할 때마다 반복되는 현상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B씨는 “특정 도서가 갑자기 인기 있을 때 책 수급을 막아놓는 건 사실 늘 있는 일”이라며 “도매 창에서는 재고를 0으로 해뒀는데, 막상 대형 서점 매장에 가면 재고가 쌓여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 경우 주문을 해도 책이 입고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역 서점들은 책이 단지 상품이 아닌 공공재로서의 기능을 가진 만큼 이번 사태를 단기적인 해프닝으로 봐서는 안 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도매와 소매를 겸하는 대형 서점이 자사 소매점 매출을 고려해 따라 전국 지역 서점에 책 공급을 조절하는 유통 구조 자체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전국 작은 서점들의 연합조직인 전국동네책방네트워크는 23일 호소문을 발표해, “도매를 겸하고 있는 대형서점은 전국 서점에 도서공급을 막고 오직 자사의 온오프매장 판매에 집중하고 있다"며 "문제가 커지자 상생 마케팅이라는 미명 아래 사태의 본질을 호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역 서점 지원 예산 '0'원의 나라
지역 서점에 대한 정부의 지원책은 어떨까. 지난해 8월 발표된 올해 문화체육관광부 예산안에 따르면 올해 기준 지역서점 활성화 및 지원예산 11억 원이 전액 삭감된 것으로 드러났다. 지역서점 활성화 및 지원예산은 지역 서점에서 열리는 북토크, 독서 토론, 작가 강연 등 문화 프로그램 진행을 지원해주는 예산이다. 문체부는 서점 개별 지원에서 업계 전반을 공동 지원하는 체제로 변경한 것이라며 디지털 도서물류 지원 예산 12억 5,000만 원 등이 신설돼 지역 서점 지원 예산이 사라진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지원 예산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예산 성격이 바뀌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역서점 지원 예산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채운 '디지털 도서물류 지원 예산'은 어디에 쓰이는 걸까. 문체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해당 예산은 배송 추적 시스템 개발, 표준운송용기 개발 및 보급, 누리집 '서점ON' 운영비 등으로 쓰인다. 특히 예산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5억 5,000만원이 물류센터에서 서점으로 가는 배송 추적 시스템 개발과 표준 운송 용기 개발 및 보급에 사용된다.
즉 출판 관련 물류 인프라 구축에 쓰이는 예산이라는 건데, 이에 대한 서점들의 의견은 갈리고 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서점에 대한 접근성을 높일 수 있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있는 반면, 출판 업계가 공동으로 활용하는 유통 구조 개편에 대한 지원일 뿐, 사실상 지역 서점을 실질적으로 지원하는 예산으로 보기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또 지역 서점이 책만 구입하는 소매점이 아니라 지역주민들의 생활문화시설로서의 기능도 가지고 있음을 제대로 고려하지 못한 삭감 조치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예산 삭감에 따라, 서점조합은 전국 지역 서점에서 진행해 온 750여개의 문화 프로그램이 사라질 것으로 전망했다.
한편 문체부가 지난 8월 발표한 2025년 예산안에는 여전히 지역 서점을 직접 지원하는 예산이 빠져있는 상태다.
◇동네 서점 이대로 사라질까
동네 서점의 소멸은 현재도 계속 진행 중이다. 지난 9월 말 대전에서는 지역의 터줏대감 서점으로 불리는 계룡문고가 적자를 견디다 30년 만에 폐업해 충격을 줬다. 계룡문고 대표는 영업 종료 안내문을 통해 "서점을 생명처럼 여겼다, 어떤 방법으로든 살려보려고 몸부림치며 갖은 방법으로 애써 왔지만 더는 어찌할 수 없는 한계점에 도달했다"며 폐업 배경을 밝혔다. 대전의 중심지에 위치해 지난 30년간 지역 주민들과 출판물을 이어줬던 지역 문화예술의 구심점 역할을 해왔던 만큼 계룡문고 폐업은 주민들에게도 큰 아쉬움을 줬다.
B씨도 빠르면 10년 안에 동네 서점을 찾아보기 어렵게 될 것이라 전망했다. B씨는 "그간 함께 묵묵히 어려운 환경을 견뎌온 동네 서점들도 하나둘 없어지고 있다"며 "지역문화의 중심인 서점이 없는 동네가 늘어나는 나라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자 같은 인재가 또 나올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q00006@sedaily.com
“하루 매상이요? 솔직히 진짜 참혹해요. 요즘엔 확 문 닫아버리고 싶어요”
"제가 여고 때부터 다니던 서점인데, 지금 벌써 오십을 바라보네요. 요즘엔 사람이 없으니 여기 없어지는 건 아닌지..."
서울 은평구에서 30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동네 서점. ‘책’이라는 손 글씨가 커다랗게 쓰인 낡은 입간판이 긴 시간 이어온 세월을 대신 보여준다. 계단을 내려가 매장에 들어서면 반듯하게 쌓여진 새 책의 종이 냄새가 넓은 공간을 가득 채운다. 오랜 시간 같은 자리에서 명맥을 유지하며 이 동네 학생들이 지적 호기심을 풀고 어르신들이 지혜를 나누는 동네 사랑방의 역할을 해왔지만 현재는 그런 세월이 무색하게 한산하다. 학생 시절부터 이 서점을 찾았다는 손님 A씨는 한산한 서점을 둘러보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날 오후 1시까지 서점을 찾은 손님은 세 명. 그마저도 그중 둘은 베스트셀러 매대에 놓인 책을 살펴보더니 구매하지 않고 매장을 떠났다. 많아야 하루 열 명 남짓한 손님이 방문하지만 대부분의 손님이 매장에서 책을 살펴본 후 정작 인터넷이나 대형서점에서 할인 혜택을 받고 구매한다는 게 사장 B씨의 설명이다.
◇ 찾아보기 힘들어지는 동네 서점
동네서점이 사라지고 있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에서 2년마다 발간하는 '한국서점편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전국 지역 서점은 2,484개로 2005년 3,429개에 비하면 19년 동안 약 27%인 945개가 감소했다. 지난 1년 동안에도 44개 줄었다. 현재 서점 1곳당 인구는 2만 662명, 1곳당 학교 수는 4.9개다. 학생 3,048명당 하나의 서점만 있는 셈이다. '서점 없는 동네'도 찾아볼 수 있다. 올해 기준 서점이 하나도 없는 지방자치단체(시군구)는 10곳으로 2년 사이 3개가 늘었다. 서점이 한 곳뿐인 서점 소멸 예정 지역도 25곳인 것으로 드러났다.
반면 대형 체인 서점은 늘어나고 있다. 교보문고, 영풍문고, 서울문고, 알라딘, 예스24 등 대형 체인 서점 매장 수는 2015년 73곳에 불과했으나 2017년 기준 100곳을 넘어서며 지난해 기준 144곳을 기록했다. 9년 만에 두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다.
사장 B씨 역시 동네서점이 사라지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B씨는 “처음 시작할 때 이 동네 서점은 50개였지만 현재는 8개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며 점점 더 동네서점을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이 돼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삭줍기나 하라는 꼴"…동네 서점 죽이는 도서 유통 구조
이같이 동네 서점의 상황이 어려워지는 데에는 국내 도서 유통 구조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현재 국내에서 지역 서점 도매업을 담당하는 공급망은 교보문고와 웅진북센을 포함한 대형 총판 3~4곳이다. 2020년부터 본격적으로 책 도매업에 뛰어든 교보문고는 전국 매장 운영을 통해 확보하고 있는 풍부한 재고량과 규모를 바탕으로 빠르게 점유율을 확대해 나갔다. 현재 교보문고를 통해 책을 공급받는 전국 지역 서점은 약 50%에 달한다.
문제는 이같은 대형 총판이 공급하고자 하는 물량과 지역에 따라 전국 서점의 책 공급 대부분이 결정된다는 점이다. 특히 도매업과 소매업을 함께하는 교보문고의 경우, 자사의 소매업 매출을 위해 도매 물량을 조절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크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이점이 교보문고와 전국 서점 간 갈등으로 이어졌다. 노벨상 수상 소식에 한강 작가의 책이 큰 인기를 끌면서 불티나게 팔려나갔지만 그 혜택이 동네서점에 돌아가지는 못했다. 교보문고가 노벨상 수상 이후 일주일간 한강 작가의 책들에 대해 지역 서점들이 주문을 넣을 수 있는 자사 유통 서비스의 주문을 막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교보문고에서 책을 공급받는 지역 서점들은 한강 작가의 책을 찾으러 온 손님들을 빈손으로 돌려보내야 했다.
이에 지난 17일 한국서점조합연합회(서점조합)이 교보문고가 자사 유통 서비스 주문을 막았음을 밝히며 교보문고가 소매업 매출을 올리기 위해 지역 서점과의 상생을 저버렸다는 내용 보도자료를 발표하기도 했다. 교보문고는 이에 뒤늦게 대처에 나섰다. 지난 21일 교보문고는 광화문점에 설치한 현판을 통해 지역 서점과의 상생을 위해 10월 22일부터 31일까지 한강 작가의 도서 오프라인 매장 판매를 한시적으로 제한한다고 공지했다. 또 하루 최대 주문량을 도서 1종당 10부로 제한해 지역 서점들의 주문 접수를 재개했다.
그러나 주문 재개 이후에도 지역 서점들의 시선은 곱지 못했다. 교보문고가 '한강 특수'를 이미 쏠쏠히 누린 후 서점 연합이 이를 지적하자 뒤늦게 상생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교보문고는 노벨문학상 발표 이후 서점조합이 보도자료를 낸 17일까지 교보문고는 일주일 만에 한강 작가의 책 약 40만부(종이책 기준)를 판매한 것으로 드러났다. 서점들은 또, 재고가 턱없이 부족해 도서 공급이 지연될 수밖에 없었다는 교보문고의 입장에도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도매와 소매를 겸하지 않는, 교보문고를 제외한 다른 도매처들은 큰 차질 없이 도서 공급을 했기 때문이다.
교보문고를 도매처로 둔 사장 B씨도 이같은 문제를 토로했다. B씨는 "노벨상 발표 이후 한강 책 주문이 안 돼서 재고가 없나보다 생각했는데, 교보문고 매장에서는 재고를 가득 쌓아두고 버젓이 판매하고 있는 걸 봐 황당했다”며 “서점연합회 차원에서 민원을 많이 넣으니까 지금에서야 지역 서점에 양보하는 것처럼 얘기하는데, 살 사람은 이미 거의 샀으니 우린 '이삭줍기'나 하라는 꼴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또 이 같은 문제가 처음 수면 위로 드러났을 뿐 특정 도서가 유행할 때마다 반복되는 현상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B씨는 “특정 도서가 갑자기 인기 있을 때 책 수급을 막아놓는 건 사실 늘 있는 일”이라며 “도매 창에서는 재고를 0으로 해뒀는데, 막상 대형 서점 매장에 가면 재고가 쌓여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 경우 주문을 해도 책이 입고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역 서점들은 책이 단지 상품이 아닌 공공재로서의 기능을 가진 만큼 이번 사태를 단기적인 해프닝으로 봐서는 안 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도매와 소매를 겸하는 대형 서점이 자사 소매점 매출을 고려해 따라 전국 지역 서점에 책 공급을 조절하는 유통 구조 자체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전국 작은 서점들의 연합조직인 전국동네책방네트워크는 23일 호소문을 발표해, “도매를 겸하고 있는 대형서점은 전국 서점에 도서공급을 막고 오직 자사의 온오프매장 판매에 집중하고 있다"며 "문제가 커지자 상생 마케팅이라는 미명 아래 사태의 본질을 호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역 서점 지원 예산 '0'원의 나라
지역 서점에 대한 정부의 지원책은 어떨까. 지난해 8월 발표된 올해 문화체육관광부 예산안에 따르면 올해 기준 지역서점 활성화 및 지원예산 11억 원이 전액 삭감된 것으로 드러났다. 지역서점 활성화 및 지원예산은 지역 서점에서 열리는 북토크, 독서 토론, 작가 강연 등 문화 프로그램 진행을 지원해주는 예산이다. 문체부는 서점 개별 지원에서 업계 전반을 공동 지원하는 체제로 변경한 것이라며 디지털 도서물류 지원 예산 12억 5,000만 원 등이 신설돼 지역 서점 지원 예산이 사라진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지원 예산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예산 성격이 바뀌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역서점 지원 예산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채운 '디지털 도서물류 지원 예산'은 어디에 쓰이는 걸까. 문체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해당 예산은 배송 추적 시스템 개발, 표준운송용기 개발 및 보급, 누리집 '서점ON' 운영비 등으로 쓰인다. 특히 예산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5억 5,000만원이 물류센터에서 서점으로 가는 배송 추적 시스템 개발과 표준 운송 용기 개발 및 보급에 사용된다.
즉 출판 관련 물류 인프라 구축에 쓰이는 예산이라는 건데, 이에 대한 서점들의 의견은 갈리고 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서점에 대한 접근성을 높일 수 있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있는 반면, 출판 업계가 공동으로 활용하는 유통 구조 개편에 대한 지원일 뿐, 사실상 지역 서점을 실질적으로 지원하는 예산으로 보기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또 지역 서점이 책만 구입하는 소매점이 아니라 지역주민들의 생활문화시설로서의 기능도 가지고 있음을 제대로 고려하지 못한 삭감 조치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예산 삭감에 따라, 서점조합은 전국 지역 서점에서 진행해 온 750여개의 문화 프로그램이 사라질 것으로 전망했다.
한편 문체부가 지난 8월 발표한 2025년 예산안에는 여전히 지역 서점을 직접 지원하는 예산이 빠져있는 상태다.
◇동네 서점 이대로 사라질까
동네 서점의 소멸은 현재도 계속 진행 중이다. 지난 9월 말 대전에서는 지역의 터줏대감 서점으로 불리는 계룡문고가 적자를 견디다 30년 만에 폐업해 충격을 줬다. 계룡문고 대표는 영업 종료 안내문을 통해 "서점을 생명처럼 여겼다, 어떤 방법으로든 살려보려고 몸부림치며 갖은 방법으로 애써 왔지만 더는 어찌할 수 없는 한계점에 도달했다"며 폐업 배경을 밝혔다. 대전의 중심지에 위치해 지난 30년간 지역 주민들과 출판물을 이어줬던 지역 문화예술의 구심점 역할을 해왔던 만큼 계룡문고 폐업은 주민들에게도 큰 아쉬움을 줬다.
B씨도 빠르면 10년 안에 동네 서점을 찾아보기 어렵게 될 것이라 전망했다. B씨는 "그간 함께 묵묵히 어려운 환경을 견뎌온 동네 서점들도 하나둘 없어지고 있다"며 "지역문화의 중심인 서점이 없는 동네가 늘어나는 나라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자 같은 인재가 또 나올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q00006@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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