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길이 캄캄하다"…운세에 빠진 '불안증후군' 대한민국

경제·산업 입력 2024-12-31 11:34:32 수정 2024-12-31 11:34:32 이수빈 기자 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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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장애 환자 수 급증…불확실성 투성인 대한민국
불안 심리 등에 업고 비대면 운세 시장 성장 속도 ↑
운세 앱부터 유튜브까지…점치는 방법도 다양해져

[서울경제TV=이수빈 인턴기자] “저 이번 공채는 붙을 수 있을까요? 제발 이번엔 취업하고 싶어요”

취준생 이씨(27)는 수화기 넘어의 상대에게 언제쯤 취업할 수 있을지 묻는다. 어느새 취업 준비를 한 지도 4년째. 합격자 명단에서 귀하의 이름을 찾을 수 없다는 불합격 안내만 수십번을 받았다. 새로운 채용 공고가 뜰 때면 불안한 마음에 점술가에게 전화를 걸거나 운세 어플에 들어가 취업 운을 점치는 것이 습관이 됐다. 

“올해는 제가 취업 운이 없었대요. 내년 상반기쯤 취업운이 들어온다고 하니까 조금 안심이 되기도 하고, 올해 내가 불합격 한 게 다 운이 없어서 그런거구나 괜히 위로가 돼죠.”라고 전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불안도 병이다…불안증후군 ‘대한민국’
최근 대한민국 사회는 ‘불안증후군’을 겪고 있다. 취업이 어려운 청년들, 먹고 살기 힘든 3040세대, 대통령 탄핵으로 인한 정치적 불확실성,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증권시장 등 모든 것이 불확실성투성이다.  

사회에 도사린 불안감은 현대인들의 정신질병으로 나타난다. 최근 우울증과 더불어 불안장애가 현대인의 치명적인 정신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작년 불안장애 환자 수는 83만 7,000명에 이른다. 2012년 47만 7,000여 명에서, 12년 사이 75%나 급증했다. 

취준생 이씨는 “인과관계가 무너진 세상처럼 느껴져요. 이전에는 노력을 하면 그에 걸맞는 성취를 느낄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는데, 이젠 내 앞길이 그리고 이 세상이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겠어요.”라며 “매사에 불확실성이 너무 크니까, 그냥 매일을 불안함 속에 사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불안함 먹고 자란 운세 시장…비대면 중심으로 성장속도 커져
사람들이 느끼는 불안함을 기반으로 성장하는 시장이 있다. 마음을 다루는 운세시장이다. 신년 운세, 사주 풀이, 손금, 타로 등 초자연적인 힘을 이용한 여러가지 방법으로 자신의 앞날을 점쳐보고, 불확실성을 해소하려는 현상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실제로 트렌드 모니터의 2023 운세 서비스 이용 관련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0%가 현실이 불안하기 때문에 운세에 관심이 증가한다고 대답했는데, 이런 심리가 시장의 원동력이 됐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불안 심리 상태에서 벗어나고, 통제할 수 없는 현실 속에 의지할 곳을 찾기 위해 운세를 보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장근영 생각연구소 한국 청소년정책연구원 박사는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임금이 오른다거나 하는 일은 내 노력 바깥의 일이고, 집값도 오르고 하니 그런 건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요소들이다”라며 “이런 상황일 때는 특히나 심리학적으로 의지할 곳, 내가 어떻게든 통제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으려고 하는데, 그러다 보면 점술이나 비과학적인 요소들에서 그 답을 찾으려고 한다”고 전했다.  

스타트업 분석 업체 혁신의 숲에 따르면 올해 5월 기준 한국 운세 시장 규모는 1조 4,000억원으로 추산된다. 대면시장에서는 이뤄지는 구체적 현금거래를 집계할 수 없음을 고려하면 실제 규모는 더 클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비대면·온라인 운세시장의 성장 속도가 매우 가파르다.

네이버에 따르면 지식거래 플랫폼 ‘네이버 엑스퍼트’에서 지난 3년간 가장 활발했던 분야는 운세·사주, 타로, 심리 상담 등이다. 네이버 엑스퍼트의 월평균 운세 상담 건수와 거래액은 지난해 대비 약 30% 증가했다. 

운세를 점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어플리케이션의 인기는 특히나 뜨거운 편이다. 앱 분석 서비스 모바일 인덱스에 따르면 운칠기삼이 개발한 운세 플랫폼 '포스텔러'의 월간 활성 이용자 수(MAU)는 올해 5월 46만여 명에서 9월 58만여 명으로 꾸준히 증가했다. 또 다른 앱 '점신'의 신규 설치 건수는 지난해 9월 7만여 건에서 올해 5월 21만여 건으로 8개월 만에 약 3배 치솟았다.

실제로 12월 기준 애플스토어 유료 엔터테인먼트 어플 차트를 살펴보면 사주를 풀이해주거나(4위, 6위) 손금(28위), 관상(29위)을 분석해주는 어플이 상위 50위권 안에 여럿 분포해 있다. 

◇어떤 형태의 운세던 중요한 것은 이겨내려고 하는 마음
운세를 점칠 수 있는 채널과 방식도 다양해졌다. 생년월일과 태어난 시각 등 복잡한 개인 정보를 토대로 한 사주풀이 뿐만 아니라 간단한 클릭 한 번으로 운세를 점쳐볼 수 있는 서비스도 인기를 끄고 있다. 

대학내일 20대 연구소의 운세 이용 실태 조사 복서에 따르면 다양한 온라인 운세 채널을 활발하게 사용하고 있다. 무료 운세 앱이나 사이트를 이용하여 점을 치는 사람들이 43.6%, 포털사이트와 신문이 유튜브가 30.8%로 여러 서비스를 골고루 이용하고 있다.

금융 어플에서도 운세를 점칠 수 있는 서비스들을 더했다. 신한금융의 카드 앱에서는 사주, 궁합 등 동양 운세와 타로점을 볼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고, 토스뱅크 어플에서도 매일 연애운, 성공운, 재물운을 보면 1원에서 5원을 토스 포인트로 제공하며 운세를 점쳐준다. 

접근성이 높고 간단한 신점 운세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만하지는 이유는, 사람들이 정확한 미래를 ‘예언’하고 싶기보다 불안한 마음을 해소하기 위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여의도에서 인턴 생활을 하고 있는 박씨(26)는 아침 출근길마다 토스를 켜고 성공운을 확인한다. 박씨는 “개인정보를 입력하지 않아도 클릭 한 번으로 하루가 어떻게 흘러갈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요. 앞으로 생길 일을 알고 싶기보다 그냥 이 불안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달랠 수 있으니까요”라고 전했다. 

호랑타로 유튜브 채널 콘텐츠 조회수 추이. [사진=플레이보드 캡처]

유튜브에서 타로 점을 봐주는 ‘타로마스터정회도’,‘타로호랑’ 채널이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유튜브 통계 분석 사이트인 ‘플레이보드’에 따르면 타로 호랑의 콘텐츠의 조회수는 채널 개설 이후 꾸준히 상승하고 있는 모습이다. 해당 유튜브 채널은 주로 카드 모양이나 운석의 모양으로 타로 카드 묶음을 선택하고, 해당 묶음에 대한 일반론적인 운세를 읽어주며 여러 사람의 운을 동시에 보는 제너럴 리딩 콘텐츠를 주로 제작한다. 

제너럴 리딩은 개인 맞춤형 특수 정보를 제공하기보다 여러 사람에게 적용될 수 있는 추상적인 내용을 전달하기 때문에 유튜브로 타로점을 보는 사람들은 사람들은 자신의 상황에 대입해서 카드의 리딩을 해석한다. 

댓글창에는 운세에 대한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고, 서로의 어려움에 공감하거나 성공을 응원하는 글이 많다. 타로 채널을 여럿 구독하고 있는 대학생 송씨(24)는 “덕분에 불안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덜고, 위로를 받을 때가 많다. 타로 채널을 다시 찾게 되는 이유”라고 전했다.  

◇젊어지고 똑똑해진 운세시장…"불안 탈출의 시작점"
운세시장은 앞으로도 더 커질 전망이다. 점술 트렌드가 계속해서 젊어지면서 기존 고객이였던 중장년층 뿐만 아니라 MZ세대들의 참여가 활발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 기술 발전이 더해지면서 사주·타로·점성술 등 비과학적 영역이라고 여겨지던 점술에 힘이 생겼다. 운세 어플리케이션을 운영하는 스타트업들은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소비자 맞춤형 운세를 제공해가는 추세다. 

천명은 데이터 분석 시스템으로 실제 점술가들의 코멘트를 규격화해 코딩하거나 수만 가지 경우의 수에 따른 답변을 작성하는 업무를 AI가 돕고 있고, 포스텔러를 운영하는 운칠기삼은 일관성 있는 풀이가 가능하도록 사주의 다양한 값을 수치화한 사주 분석 시스템(FAS)을 자체 개발해 소비자들에게 확률적으로 가치있는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점술가의 태도 역시 달라졌다. 색동 한복을 입고 진한 화장을 하는 기괴한 복장이 아닌 친근한 인상을 내세우는 점술가들이 많아졌다. 한복 대신 청바지를, 신당 대신 카페에서 점을 본다. 

전문가들은 불안이라는 사람들의 본능적인 심리와 운세 시장의 지속적인 변화가 운세 시장 규모 확장의 동력이 될 것이란 입장이다. 동시에 운세를 점치는 행동이 불안 심리가 야기하는 무기력함을 개선하며 장기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심리치료학자들은 공통적으로 “불확실성이란 감정은 무기력을 불러온다. 어떤 행동을 해도 불안이 해소되지 않는다는 악순환이 학습되기 시작하면, 감정을 제거하기 위해 어떤 행동도 하지 않는 무기력을 불러일으키게 된다”며 “그런데 신점을 보고 운세를 점치는 건 현실을 극복해나가려는 일종의 소극적인 행위이기 때문에,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한 첫 발걸음이 될 수 있다”라고 전했다.
/sb4139@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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