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도 ‘당근’으로?…당근 부동산 거래 이대로 괜찮나
경제·산업
입력 2024-12-17 08:48:24
수정 2024-12-17 08:48:24
이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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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개료라도 아끼려 부동산 '당근' 나선다…매물 37만 개
간편한 가입·게시 절차에 '중도금 먹튀' 등 사기꾼 몰려
전세사기 위험에 관리비 꼼수까지...규제 사각지대 놓인 당근
이대로 괜찮을까...전문가 "적극적 조치 ·규제 편입 必"
“한두 푼 아끼려다가 완전히 피 본 거죠. 좀 더 알아보고 계약했으면 이런 일이 없지 않았을까...”
서울 마포구에 거주하는 여씨는 지난 10월 ‘당근’으로 부동산 거래를 했다가 사기를 당했다. 당근을 통해 만난 임대인은 여씨에게 전세 보증금을 받아낸 후 잠적했다. 여씨는 당근을 통해 합리적인 조건의 매물을 보고 마음이 급해 자세히 알아보지 않고 계약했다며, 사기를 당한 이후에야 해당 매물이 사기 위험이 높은 매물이었음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 "복비라도 아껴볼까"...늘어나는 당근 부동산 거래
부동산도 ‘당근’하는 시대가 왔다. 최근 중고거래 플랫폼 앱 ‘당근’의 ‘부동산’탭에서는 동네 전월세 거래는 물론 아파트 매매, 심지어 수백억 원대의 호텔 매매 게시물까지 찾아볼 수 있다. 심지어 지난해 제주도에서는 50억원대의 호텔이 당근에서 거래돼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실제로 당근 부동산 탭의 게시물 수는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2021년 당근이 최초로 부동산 게시물 서비스를 도입한 당시의 게시물 수는 5,243건에 불과했지만, 올해 7월 기준 게시물 수는 무려 37만 4,799건을 기록해 70배가량 늘었다. 거래 완료 수도 가파른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2021년 268건이었던 거래 완료 수는 지난해 2만 3,178건으로 늘었으며, 올해는 1~7월에만 3만 4,482건을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당근 부동산 거래가 이같이 늘어나는 현상의 가장 큰 이유로 중개 수수료라도 아끼고자 하는 심리를 꼽았다. 부동산 거래 중개 수수료가 집값에 비례해 올라가면서 상당한 비용을 지불하게 되자, 중개 보수를 내지 않을 수 있는 직거래 방식을 선호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현재 공인중개사법 시행규칙에 따라 9억~12억원 미만의 주택 매매는 0.5%, 12억~15억원 미만은 0.06%, 15억원 이상은 0.07%를 법정 중개 수수료로 내야 한다. 예컨대 10억원짜리 아파트의 경우 부가가치세 10% 포함 550만원, 30억원 아파트는 2310만원을 중개 수수료로 내야 하는 것이다. 당근으로 직거래하면 이 비용을 아낄 수 있다.
또 기존 공인중개사들에 대한 신뢰가 떨어졌다는 점도 당근과 같은 직거래 수요층 유입에 한몫했다. 전세사기, 깡통전세와 같이 부동산 거래 피해가 퍼지면서 공인중개사를 통해 거래를 해도 안전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인식이 생겨났다는 분석이다.
박유석 대전과학기술대학교 부동산재테크과 학과장 교수 역시 “경제 상황이 전반적으로 부진한 만큼 부동산 거래 시 중개수수료라도 아낄 수 있는 당근 거래를 선호하는 경향이 높아지고 있다”며, “또 공인중개사를 거쳐 거래를 해도 사기 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중개수수료를 아깝게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어 직거래로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개료 아끼려다가...‘먹튀’ 사기에 우는 피해자들
그러나 이용자가 많아진 만큼 사건사고도 발생하고 있다. 올해 수사기관이 부동산 거래 관련 수사를 위해 당근에 수사 협조를 요청한 경우는 9월까지 9건을 기록했다. 당근 부동산 거래 사기로 인한 피해액도 15억 7,675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당근 부동산 거래에서 일어나는 대표적인 사기 유형은 일명 ‘중도금 먹튀’ 방식이다. 부동산을 판매하는 것처럼 게시물을 올린 이용자가 계약금이나 중도금을 명목으로 금액 일부를 입금 받은 뒤 잠적해버리는 방식이다. 이는 당근 외에도 부동산 직거래 플랫폼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사기 수법이지만, 가입 절차가 비교적 복잡한 타 플랫폼과 달리 당근은 전화번호와 위치 정보만으로 가입할 수 있다는 점을 악용해 중도금 사기꾼들이 타인 명의 대포폰 등을 들고 당근으로 몰려들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당근에서는 이를 방지하기 위해 게시글 작성자와 등기부상 소유자 일치 여부를 확인하는 ‘집주인 인증’ 기능을 마련했다. 부동산 판매자가 집주인 인증을 한 경우 게시물에 ‘집주인 인증’이라는 초록색 딱지를 붙여주는 방식이다. 그러나 집주인 인증 기능은 부동산 판매 게시물을 올릴 때 선택 사항에 불과한데다 이용률도 저조해 사기를 막기엔 역부족인 상황이다. 당근에 올라온 전체 부동산 게시물 중 집주인 인증이 완료된 매물은 23%에 불과하다. 나머지 77%의 매물은 소유자가 아닌 중도금 사기꾼과 같은 제3자가 올렸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또 공인중개사의 부재로 발생하는 위험도 크다. 특히 전문가들은 당근 부동산 거래 시 전세사기의 위험이 높다고 지적한다. 당근 부동산 탭의 경우 공인중개사법이 적용되지 않아 해당 건물에 전, 월세가 몇 개나 계약돼 있는지, 계약 금액은 어느 정도인지와 같은 ‘공시되지 않은 권리 관계’를 공개할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이 경우 임대인이 시세보다 전세 보증금을 높게 받아 챙기거나 이중계약을 체결해 보증금을 들고 잠적할 가능성이 있다.
직거래로 계약서를 작성할 경우 전세보증보험에 가입이 되지 않는다는 점도 위험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전세보증보험 가입 조건은 ‘공인중개사를 통해 체결한 전세 계약서’라는 점이 포함돼 있기 때문에 직거래로 계약을 진행할 경우 보험 가입이 어렵다.
박유석 교수는 “당근 같은 직거래 플랫폼은 공시되지 않은 권리 관계를 공개할 의무사항이 없어 이용자들은 이 같은 세부정보를 모르고 계약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또 “특히 전세는 보증금이 높은 만큼, 번거롭더라도 공인중개사를 거쳐 정확한 내용과 전반적인 시세를 확인하고 계약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덧붙였다.
◇“또 속았네”...판치는 미끼매물에 관리비 꼼수까지
당근 부동산 거래의 부작용은 사기뿐만이 아니다. 이용자들은 사기처럼 금액적인 피해가 아니더라도 당근 부동산 탭에 게시된 미끼매물로 불편을 겪고 있다. 당근에 일부러 합리적인 가격과 조건의 매물을 올린 뒤, 연락이 오거나 집을 보러 오면 방금 매물이 나갔으니 자신이 가진 다른 매물을 소개해주겠다며 다른 매물의 판매를 유도하는 방식이다.
서울 은평구에 거주하는 유씨도 최근 비슷한 일을 겪었다. 유씨는 지난달 당근에서 합리적인 가격 조건에 올라온 월세 매물을 보고 직접 방을 방문해 살펴보려 했지만 해당 매물을 볼 수 없었다. 당근을 통해 만난 판매자는 방금 매물이 계약돼 보여줄 수 없게 됐다며 유씨에게 다른 매물들을 권했다. 유씨는 “해당 매물은 애초부터 관심을 끌기 위해 의도적으로 저렴한 조건에 올라온 미끼매물이었다고 생각한다”며 “동네 이웃들끼리 간편하게 부동산 직거래를 하기 위해 만들어진 게시판에 미끼매물이 끼어 들어와 불편하다”고 토로했다.
또 일부러 관리비를 공개하지 않는 ‘관리비 꼼수’도 문제다. 국토부는 지난해부터 소규모 주택의 정액 관리비 내역을 세분화해 광고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이를 미표기할 경우 5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고 있다. 또 지난 7월부터는 부동산 중개대상물에 대한 공인중개사의 확인, 설명 의무를 강화해 중개 대상물의 월세와 소유권, 건물 상태, 관리비 등의 정보를 공개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그러나 당근은 규제 적용 대상이 아니므로 이같이 관리비를 공개할 의무가 없다.
이 때문에 당근에는 관리비를 공개하지 않고 월세를 낮게 올려 이용자들의 관심을 끈 후 매물에 관심을 보이면 그제서야 높은 관리비를 알려주는 방식의 꼼수가 성행하고 있다. 당근 이용자들은 낮은 월세를 보고 합리적인 조건이라고 생각해 연락을 했다가, 후에 터무니 없이 높은 관리비를 듣고 거래를 포기하는 경우가 잦은 상황이다.
◇국감 지적에도 어물쩍...조치 소극적인 당근
이 같은 피해 사례가 이어지자 국토교통부도 당근을 지적하고 나섰다.
이달 3일 국토부에 따르면, 당근은 최근 국토부로부터 부동산, 중고차 등 매물 게재 시에 실소유주 확인과 함께 실명인증 과정을 통해 거래자 본인 확인 절차 서비스를 도입할 것을 요청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부동산, 중고차 직거래로 인한 사기 등 위험성이 지적되자 정부 측이 당근에 대한 압박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국토부 측은 국감 이후 당근 측과 직접 만나 관련 논의를 진행했고, 부동산 등 매물 게재 시 실명인증 절차 도입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또 기존부터 직거래에 대한 편법증여나 탈루 행위 조사를 해오고 있는 만큼, 당근을 통해 이뤄지는 직거래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당근 측의 태도는 소극적이다. 당근 측은 부동산 탭 실명 인증 절차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구체적인 도입 절차나 공지를 발표하지 않은 상태다. 당근은 서울경제TV와의 인터뷰에서 실명인증 도입을 고려하고 있냐는 질문에 대해 "우선 현재 진행하고 있는 ‘집주인 인증’ 비율을 늘려가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허위매물 관리에 대해서는 자체 모니터링 시스템을 통해 정보 불일치 매물을 필터링하며 관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매물 게시물 속 내용이 허위일 경우 이용자가 신고할 수 있고 허위로 판명되면 해당 매물을 미노출 처리하는 식”이라고 덧붙였다. 관리비 관련 피해와 관련해서는 관리비 작성을 권장하고 있으나 개인 매물은 법적으로 필수 명기 사항이 아니라며 이용자가 직접 채팅을 통해 더 자세한 내용을 확인하거나 판매자에게 요구하도록 조치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당근으로 인한 부동산 거래 피해는 늘어나는데 비해 당근 측이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는 않는 만큼 관리 감독을 강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이대로 괜찮을까...당근 부동산의 미래는
당근은 이러한 문제들을 극복하고 중고거래 플랫폼, 지역 커뮤니티를 넘어 부동산 직거래 플랫폼으로도 성공할 수 있을까. 전문가 의견은 냉담하다. 전문가들은 안정성보다는 거래 편의성을 강조한 현 시스템대로라면 부동산 직거래 플랫폼 특성상 사기 등 부작용이 퍼지는 것을 막는 데 한계가 있다는 입장이다.
박유석 교수는 “당근이 실명 인증 등 새로운 조치 도입을 통해 부동산 탭의 시스템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면서 “모니터링이나 이용자 신고 등에 의존하기보다 더 안전한 거래를 위한 장치를 적극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제도적 차원에서의 변화 필요성도 강조했다. 규제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당근이 내부 시스템 개정을 통해 적극적으로 조치를 취한다 하더라도, 플랫폼의 의지만으로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힘들 것이라는 의견이다. 박 교수는 당근이 건전한 거래 방법의 하나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현 규제에 편입시키거나 적절한 새로운 제도를 도입해 제도권 내 정착시킬 필요가 있다며, 부동산 거래로 인한 불안감이 커져가는 지금은 당근이 아닌 채찍이 필요한 시기라고 강조했다. /q00006@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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