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에서 QR코드?" 디지털화 속도 내는 온누리에 속 타는 상인들

경제·산업 입력 2024-12-31 11:22:46 수정 2024-12-31 11:22:46 이수빈 기자 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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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화 속도 내는 온누리상품권...3월 통합앱 출시
주류 등 가맹 불가 매장서 업종 속여 '꼼수 영업' 성행
'온누리 성지' 공유 글 확산...소비자·시장 상인 의견 갈려
어르신 주고객인데 웬 'QR코드'...디지털 소외 계층 문제도
발행액 3배 불어난 온누리...규모 키우기 전 체계적 관리 필요

전통시장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사진=이수빈 인턴기자]

[서울경제TV=이수빈 인턴기자]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한 주류 전문 매장. 와인, 위스키 등의 상품이 빼곡히 채워진 매장 입구에 온누리 상품권 거래가 가능하다는 표지가 붙어있다. 이곳은 인터넷 상에서 이른바 ‘온누리 성지’로 인기를 끈 주류 판매점. 주류 판매점은 본래 온누리 상품권 사용 제한 업종이지만 이곳은 주류 매장이 아닌 마트로 업종 등록돼 있어 지류뿐 아니라 디지털 온누리상품권으로도 주류를 구매할 수 있다. 

이날 역시 이곳을 방문한 많은 사람들이 스마트폰 속 QR코드를 켜고 디지털 온누리상품권으로 주류 상품을 결제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점원에게 실제 디지털 온누리상품권으로 구매가 가능한지 묻는 질문에도 바로 ‘그렇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디지털 온누리요? 저희는 돼요. 여기 저 보여주시면 바로 결제 가능하시고…”


◇“전통시장서 QR코드 결제?” 디지털화 속도 내는 온누리상품권

앞으로 전통시장에서 스마트폰 QR코드로 결제하는 모습을 더 자주 보게 될 전망이다. 중소벤처기업부(중기부)는 내년부터 전통시장과 골목형 상점가 등에서 사용 가능한 온누리상품권의 디지털화 촉진에 적극 나선다. 온누리상품권은 이미 기존 충전식 카드형과 모바일형이 존재했지만, 두 개의 앱에 각각 나눠져 있어 불편하고 사용법이 어렵다는 점을 고려해 이 두 가지를 합친 통합형 앱을 개설한다. 통합형 앱은 내년 3월 중 출시될 계획이다. 또 디지털 상품권의 할인율은 대폭 늘리는 한편 지류 상품권의 발행은 단계적으로 축소해 점차 디지털 비율을 늘려나간다는 계획이다. 

중기부는 우선 지류 상품권의 인당 구매 한도부터 줄이기 시작했다. 오는 1월부터 지류 상품권의 구매한도는 현행 인당 월 150만 원에서 50만 원으로 대폭 축소된다. 발행규모 역시 조정에 들어간다. 본래 2025년 지류 상품권 발행 예정 규모였던 1조7,000억 원 중 4,000억 원은 디지털 상품권으로 전환함으로써 지류는 1조3,000억 원만 발행될 계획이다. 반면 디지털 상품권은 유입을 늘리기 위해 할인율을 높이고 있다. 이번 설 연휴 기간 디지털 상품권의 할인율은 15%로 지류보다 5% 높다.

중기부가 이같이 온누리상품권 디지털화를 가속화하기 시작한 것은 그간 상품권의 부정유통 문제가 지속적으로 대두됐기 때문이다. 특히 거래를 하지 않았음에도 온누리상품권을 취득하고 현금으로 환전해 할인율을 통한 부당이득을 취득하는 이른바 ‘온누리 깡’이나, 온누리상품권 취급이 불가한 주류, 담배, 성인용품 등의 매장에서 상품권을 받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이 같은 부정유통 문제가 국감에서 지적되는 등 문제가 잇따르자 추적이 어려운 지류 상품권 대신 디지털 상품권 사용을 늘려 부정유통을 줄이겠다는 목적이다.


◇“여기선 원래 다 이렇게 해요”…업종 속이는 꼼수 성행

온누리상품권 사용이 가능한 주류 판매점.[사진=이수빈 인턴기자]

그러나 디지털 상품권도 거래 불가 업종 매장에서의 불법유통은 막기 어려울 거라는 게 시장 상인들의 생각이다. 현재 온누리상품권을 받고 있는 주류, 담배 등의 매장은 이미 업종을 ‘마트’나 ‘잡화점’ 등으로 허위 등록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온누리상품권은 구매하는 상품 품목이 아닌 매장이 등록된 업종에 따라 가맹 가능 여부를 구분하기 때문에 상품권의 디지털 전환이 이뤄져도 ‘꼼수’ 불법유통을 잡아낼 수 없을 것이라는 의견이다. 

실제로 기자가 전통시장 근처나 골목형 상점가로 찾아간 와인, 위스키 등 주류 매장 세 곳 모두 이미 온누리상품권 가맹 등록이 완료된 상태였다. 이중에는 주류 외 다른 상품을 전혀 판매하지 않는 주류 전문 판매점도 있었지만 타 업종으로 등록해놓았기 때문에 지류뿐만 아니라 디지털 온누리상품권 역시 문제 없이 사용할 수 있었다.  

'온누리 성지' 관련 검색 결과 캡쳐.[사진=이수빈 인턴기자]

이 같은 판매가 공공연하게 이어지면서 온라인 커뮤니티나 SNS 등에서도 온누리상품권 사용이 가능한 주류 매장 등을 정리해 추천하는 게시글이나 콘텐츠를 쉽게 볼 수 있다. 이곳들은 이른바 ‘온누리 성지’로 불리는데, 매장들도 이를 적극 활용해 홍보에 나서고 있다. 온누리상품권 사용이 가능한 주류 매장 SNS에는 ‘온누리상품권 사용 가능’이라는 홍보문구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심지어 SNS 게시물 태그에 ‘#온누리성지’를 걸어두기도 한다. 

이에 소비자들과 시장 상인들의 의견은 갈리고 있다. 소비자들의 반응은 긍정적이다. 마포구에 위치한 주류 매장에서 디지털 온누리상품권으로 와인을 구매한 소비자 A씨는 “유명 유튜버가 온누리 성지로 추천한 것을 보고 찾아왔다”며 “할인폭이 10%나 되다보니 와인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디지털 온누리를 한도까지 충전해놓고 이런 성지를 찾아가 구매하는 게 익숙한 일”이라고 말했다.

반면 시장 상인들에게선 볼멘소리가 나온다. 전통시장에서 10년 넘게 장사를 하고 있다는 B씨는 “전통시장 구역 내 들어오기만 하면 온누리상품권 가맹 등록을 받을 수 있다는 게 소문이 나 하나둘씩 와인샵 같은 게 들어오기 시작했다“며 “나라에서 엄연히 정해준 업종이 있는데 저걸 그대로 놔두고 있으니 결국 세금으로 술 판매를 돕는 꼴”이라고 말했다. 


◇“전화기에 뭘 깔라고?”…디지털 소외계층 배려는?

또 전통시장의 주요 고객층이 노년층인 만큼 디지털 온누리상품권 정착 자체가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현재 디지털 온누리상품권을 사용하기 위한 과정은 다소 복잡하다. 우선 스마트폰에 관련 앱을 설치한 뒤 회원가입을 하고 본인인증, 비밀번호 설정, 개인정보 등록, 상품권 결제 등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스마트폰 활용이 어려운 어르신들의 경우 자율 사용이 정착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다. 

실제로 올해 1월 열린 소상공인 우문현답 정책협의회에서도 이러한 문제점이 제기됐다. 전국상인연합회(전상연) 회장은 이자리에서, “전통시장은 거의 연세 드신 분들이 오시고 그분들이 주로 사용하는 건 모바일이 아닌 지류형 상품권”이라며, 오영주 중기부 장관에게 지류형 온누리상품권 확대와 지류 및 디지털 상품권의 할인율 동결을 요구한 바 있다. 젊은 층을 위한 혜택만 늘리기보다는 전통시장에 실제로 자주 오는 주요 고객인 노년층을 위한 혜택을 확대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의미다.  

실제 시장 상인들의 의견도 현실적으로 디지털 상품권이 주요 고객층에게까지 전파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다. 상인 B씨는 “어르신이 지류 쓰시는 건 자주 있어도 직접 QR코드를 켜서 디지털 온누리로 결제하시는 건 장사하면서 거의 본적이 없을 정도”라며 “어쨌든 (디지털 온누리상품권이) 장기적으로 시장에 정착하려면 나이 먹은 사람들이 쓸 줄 알아야 하지 않겠나, 디지털은 젊은 사람이나 쓸 줄 아니까 디지털 발행 비율이 커지면 노년층이 주요 고객인 업종 입장에선 별로 좋을 게 없다”고 말했다. 


◇대책 마련 나섰지만…뾰족한 수 없는 중기부

이 같은 문제들이 제기되자 중기부도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입장이지만 근본적인 해결이 쉽지 않은 상태다. 먼저 중기부는 온누리상품권 사용 불가 업종의 꼼수 영업 문제에 대해, 문제를 인식하고 있지만 제재는 쉽지 않다는 입장이다. 각 매장이 실제로 어떤 품목을 판매하고 있는지 일일이 확인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해 허위 업종 신고를 원천적으로 근절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중기부는 해당 문제와 관련해 소비자 신고가 들어오면 이후 판매점을 확인하고 가맹 취소 등 조치를 취하는 방식으로 제재를 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디지털 소외계층 문제에 대해서는 디지털 안내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점차 해결하겠다는 입장이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과 금융기관 등이 협력해 ‘디지털 배움터’ 등 교육 행사로 스마트폰 이용이 어려운 노년층에게도 디지털 상품권 사용이 보편화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계획이다. 또 디지털 튜터 등을 활용해 시장 현장에서 디지털 소외계층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겠다고 밝혔지만 이에 대한 구체적인 안은 나오지 않은 상태다. 


◇신정 앞두고도 수심에 찬 시장…온누리 신년 희망 될까

전통시장에서 상인이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사진=이수빈 인턴기자]

한편 온누리상품권의 발행규모는 매년 늘고 있다. 2019년 2조에 불과했던 발행액은 내년 기준 5조5,000억원으로 3배 가까이 늘어난 상황이다. 이에 관리 체계가 부족한 상태에서 목표 발행액을 무리하게 늘려 이 같은 잡음이 발생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전 소상공인연합회 중앙회장 출신인 오세희 더불어민주당 의원 역시 이달 16일 온누리상품권 부정 유통 신고 센터 설치 관련 법안을 발의하면서 이 같은 의견을 밝혔다. 오 의원은 온누리상품권 수요처가 아직 한정돼 있고 철저한 관리가 부족한 상황에서 정부가 발행액을 늘리다보니 문제가 심화되는 것이라며 체계적인 관리가 일단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신정을 며칠 앞두고 시장에서 만난 상인들 역시 비슷한 우려를 표했다. 상인 B씨는 “디지털 온누리를 늘리니 마니 발행액 얼마를 늘리니 하며 정부에서도 고민이 많은 건 알겠지만 그게 만병통치약이라는 식의 결론을 내면 안 된다”며 “결국 답을 찾으려면 시장 바닥을 직접 들여다보고 상인들 얘기를 들어봐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q00006@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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