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ELS 후폭풍…고위험 상품 위축 시대 오나
금감원, 투자자별 0~100% 차등 배상안 발표
금융권 "先배상 부담…대세 따르자는 분위기"
당국, 자율배상 압박…은행권 "배임 이슈 존재"
당국, 고위험 상품 제도 개선 예고…시장 위축 우려
[서울경제TV = 이연아 기자] 지난 11일 금융감독원이 홍콩H지수 ELS 관련 자율 배상 기준안을 발표한 후, 판매사 은행과 투자자가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은행들은 내부적으로 TF를 꾸려 기준안에 따른 배상 규모와 법적, 절차적 검토 작업에 들어갔다. 투자자는 금융 당국의 관리 감독 책임 문제도 함께 주장하며 100% 배상 요구에 나섰다. 이런 가운데 금융위원회는 홍콩 ELS 사태를 계기로 고위험 투자 상품에 대한 제도 개선까지 요구하면서 큰 폭의 시장 변화까지 예고했다.
■금감원, 투자자별 0~100% 차등 배상안 발표
홍콩 H지수 ELS의 불완전판매를 검사한 금융감독원이 투자자별로 0~100%까지 배상하는 차등 배상안을 발표했다. 금감원은 지난해부터 최근까지 홍콩 H지수 ELS의 주요 판매사인 은행 5곳(KB국민, 신한, 하나, NH농협, SC제일)과 증권사 6곳(한투·미래·삼성·KB·NH·신한)에 대한 현장 검사와 민원 조사를 벌였다. 금감원은 검사 결과 홍콩 ELS 판매 과정에서 금융소비자보호법 등 관련 규제를 위반하거나 소비자 보호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판단되는 사례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금감원이 발표한 분쟁조정기준에 따르면 판매사의 불완전판매 행위별로 기본적인 배상 비율을 정하고, 투자자 나이나 경험 등에 따라 비율을 가산 또는 차감해 최종 배상 비율이 결정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먼저 판매사의 기본배상비율은 20~40% 사이다. 판매사가 ①적합성(개별 소비자에게 맞는 상품 판매), ②설명의무, ③부당권유 등 3가지 항목을 위반한 정도에 따라 기본배상비율이 20~40% 사이로 달라지게 된다. 또, 내부 통제가 부실했을 경우 은행은 10%p(온라인 가입 5%p), 증권사는 5%p(3%p)를 공통적으로 가산한다.
여기에 투자 사례별로 최대 45%p까지 판매사 배상 비율이 가산되거나 차감된다. 배상 비율 가산 요소는 ①예·적금 등 원금보장상품에 가입하려고 판매사를 방문한 것이 인정되는 경우(10%p), ②고령자나 은퇴자, 주부 등의 경우(5~15%p), ③ELS에 처음으로 투자한 경우(5%p), ④은행이 서류상 서명을 누락 하거나 모니터링콜을 하지 않는 등 자료 유지나 관리가 부실한 경우(5~10%p), ⑤투자자가 비영리 공익법인인 경우(5%p)다.
차감 요소로는 ①ELS 투자 경험과 상품에 대한 이해도가 있는 경우(-2~-25%p), ②ELS 가입 금액이 비교적 크거나 과거 ELS 투자로 수익을 본 경우(-5~-15%p), ③금융회사 임직원 등 금융지식이 인정되는 등의 경우(-5~-10%p)에 해당한다. 구체적으로 보면, 차감 요소는 ELS 가입 횟수에 따라 달라진다. ELS 가입 횟수가 ①21회~30회이면 -2%p, ②31회~40회 -5%p, ③41회~50회 -7%p, ④51회 이상 -10%p 차감된다.
또 ELS 상품에 대한 투자자의 이해도를 반영하기 위해과거 투자 여부 등이 반영된다. 과거 투자에서 지연 상환이나 낙인, 손실 등을 경험 유무에 따라 -5%p~-15%p 추가 차감된다. ELS 가입금액에 따른 차감 기준은 ①5천만 원 초과~1억 원 이하는 -5%p, ②1억 원 초과~2억 원 이하 -7%p, ③2억 원 초과 -10%p이다.
과거 가입했던 ELS 상품에서 발생한 이익 전체가 이번 ELS 손실을 초과한 경우도 -10%p 차감하지만, 가입금액과 과거 누적이익에 따른 차감은 두 요소를 합산해 최대 -15%p까지로 제한됐다. 이 전체 기준에서 고려되지 않은 요인 등은 기타 조정을 통해 10%p 배상 비율을 더하거나 빼서 최종 배상 비율을 결정한다.
■기준안 발표 그 후…배상 규모·시기 둘러싼 난관
현재 은행들은 공식 입장 발표 없이, 내부 TF를 꾸리고 기준안에 따른 총 배상 규모 산정과 법적 검토 등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판매사들이 먼저 나서기보다 대세를 따라가자는 분위기라며 다른 판매사들의 동향을 보고 배상 비율 등을 정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선(先) 배상에 나설 경우 부담스러운 상황에 노출될 수 있다는 게 이유다.
현재 금융권에서는 홍콩ELS 총 판매 규모 중 절반을 차지하는 KB국민은행의 배상 방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국민은행의 배상 방향이 다른 판매사들의 기준점이 될 수 있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당국이 발표한 기준안을 따를 경우 국민은행 배상 규모는 최대 2조 원이 넘을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현장에서는 불완전판매에 대한 법적 결론이 나지 않은 상황에서 자율 배상 여부를 결정하면 배임 이슈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분쟁조정위원회 결과를 확인하고 배상을 진행한다는 전망이 나온다. 현재 금감원에 홍콩ELS 관련 접수된 민원은 4,000건이 넘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당국은 대표 사례를 선별하고 다음 달 분쟁조정위원회를 개최한다는 계획이다.
자율 배상에 은행 내부적 가장 큰 난관은 배임 이슈다. 불완전판매에 따른 판매사 제재와 과징금을 피하기 위해서 자율 배상에 나서야 하지만, 자율 배상이 이사회 책임 문제로 번지며 배임 이슈에 노출될 수 있어 이사회 승인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당국은 자율 배상과 배임은 무관 하다며 연일 은행을 압박하고 나섰지만, 은행은 배임 이슈라는 난관을 피할 수 없다는 의견이 다수다.
금융권에 따르면 홍콩ELS 판매사인 KB국민, 신한, 우리, 하나, SC제일은행 등 5대 은행은 다음 주부터 이사회가 연이어 예정됐다. 오는 20일 하나은행, 21일 신한은행과 KB국민은행, 29일 외국계 은행 SC제일은행의 정기주총과 이사회가 예정됐다. 다음 주에는 이사회 내부적 자율 배상에 대한 구체적 논의가 시작될 것으로 예상된다.
■당국 "고위험 상품 판매 제도 개선할 것"…고위험 상품 판매 위축 시대 오나
금융당국은 홍콩 ELS 관련 해결과 동시에, ELS를 포함한 고위험 상품 판매 제도 손질도 진행 중이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지난 12일 금감원에서 ELS 사태 관련 원인을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제도 개선을 준비 중이라고 밝히며, 조만간 결과를 발표할 것을 예고했다.
이미 연구 기관 검토 의견을 반영한 초안 마련 단계 진입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금융위는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최종안을 내놓는다는 방침이다. 현재 금융위는 이번 ELS 사태 원인 분석을 바탕으로 고위험 상품 판매 관련 내부 통제 강화, 현 금융소비자보호법에 미비한 점 보완, 기존 프로세스 개선을 통한 불완전 판매를 근절하는 방향으로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번 금감원의 현장 검사에서 드러난 은행 내부적 고위험 상품 판매를 부추기는 성과, 인사 평가 체계와 고객의 손실 발생과 직원 성과급을 제한하는 부분에 대한 손질이 강하게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현행 징벌적 과징금 제도를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로 강화하고, 분쟁조정위원회 결정에 강제성을 부여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한발 더 나아가 은행권의 고위험 상품 판매를 제한하는 부문에 대한 검토도 진행 중이다. 다만, 금융권에서는 판매를 제한하는 규제는 신중해야 한다고 경고와 함께 완전 판매 제한으로 제도를 개선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은행권의 지나친 영업 규제와 시장 위축에 대한 우려, 비판과 소비자의 선택권 침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은행 내 자산 관리 특화 지점(WM) 등 판매 채널 제한하고, 상품 판매자의 자격 요건을 지금보다 상향 조정하는 쪽으로 개선 방향이 언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는 18일 예정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과 주요 은행장들의 간담회에서 홍콩ELS 자율 배상 뿐 아니라 고위험 상품 판매 제도 손질 등에 대한 구체적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고위험 상품 판매 제도 개선을 예고한 당국의 움직임이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업계 반발도 예상돼 제도 개선의 결과물이 나오고 현장에 적용되기까지는 상당 기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 yale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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