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불의 민족?” 직접 주문 취소 한다는 배민...쿠팡이츠 의식했나

경제·산업 입력 2024-11-18 10:51:33 수정 2024-11-18 10:51:33 이수빈 기자 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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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달부터 배민이 직접 주문 취소 가능하도록 약관 변경
전문가 “점유율 쫓아오는 쿠팡이츠 의식한 동형사상 전략”
외식업주·배달기사 블랙컨슈머 악용 우려…소비자는 환영
과도한 개입VS객관적 기준 정립…갈리는 전망 속 ‘상생’ 지킬까

[사진=우아한형제들]
"배달의민족 주문!"

경기도 평택에서 7년째 분식집을 운영하는 김지영씨는 매장에서 들려오는 배달의민족(배민) 콜 소리가 달갑지만은 않다. 배달 주문에서 남는 이윤이 적을 뿐만 아니라 배달 음식 특성상 컴플레인이 잦아 스트레스가 크기 때문이다. 김씨는 특히 이미 배달이 완료된 음식에 환불 요청이 들어올 때 가장 난감하다고 말했다.

"그저께는 김밥이 맛없고 칼국수가 덜 익었다면서 주문 취소를 당했어요. 음식 확인이라도 하고 싶어서 회수하겠다하니까 이미 버렸다는거에요. 결국 환불은 해줬는데 이럴 때마다 배달 접어야 하나 싶죠."

김씨에게 다가오는 12월은 더 막막하다. 다음달부터 배민이 업주 동의 없이 직접 주문 취소를 할 수 있게 된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현 시스템에서도 이미 주문 취소로 보는 손실이 큰데, 배민이 직접 취소에 나서면 앞으로 감당이 안될 것 같다"고 말했다.

◇업주 동의 없이 '직접 주문 취소' 시작하는 배민

우아한형제들이 운영하는 배달앱 '배달의민족'이 '직접 주문 취소'에 나선다. 지난 4일 공개된 약관변경 사항에 따르면, 다음달 1일부터 고객이 받는 상품이나 서비스에 객관적인 문제가 제기될 경우 배민이 직접 주문을 취소할 수 있도록 약관이 변경된다. 

배민이 객관적인 문제 사유로 제시한 기준은 총 여섯 가지다. ▲주문 내역과 제공된 상품이 다른 경우 ▲주문 내역이 누락된 경우 ▲조리 및 포장 과정에서 훼손돼 하자가 발생한 경우 ▲포장이 부실하거나 조리 지연이 발생한 경우 ▲음식물이 부패하거나 이물질이 포함돼 위생상 문제가 있는 경우 ▲고객과 합의되지 않은 상태에서 배달 지연이 일어난 경우다.

이와 같은 사유가 객관적으로 확인된 경우 배민은 외식업주의 동의 없이 직접 고객의 요청에 따라 주문을 취소할 수 있으며 외식업주가 환불액을 부담해야 한다. 단, 외식업주가 이의를 제기해 배민 혹은 배민1 소속 배달기사의 귀책사유로 상품이 훼손, 분실되거나 오배달된 것으로 판명난 경우에는 배민이 환불액 책임을 부담한다. 이번 약관 변경은 배민이 배달을 책임지는 배민1 뿐만 아니라 배민 앱에서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주문에 적용된다. 주문 취소 요청 과정은 앱 내 고객센터 기능을 이용하게 된다. 

기존 취소 정책과 달라진 점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주문 취소 가능 여부를 판단하는 주체가 외식업주에서 배민으로 확대됐다. 이로써 고객들은 이제 매장에 직접 연락하지 않고 플랫폼과의 소통만으로도 환불을 받을 수 있게 됐다. 또 그간 외식업주들과 고객의 개인적인 조율에 의존했던 환불 사유의 기준도 직접 제시했다. 

배민은 약관 변경의 이유로 고객 서비스 경험 개선을 들었다. 배민 측은 “그간 고객의 정당한 환불 요청에 대해 업주들의 일방적인 거부나 연락 두절 등으로 환불 처리 진행이 불가한 케이스가 발생해왔다”며 이같은 소비자 문의가 지속되자 “상품에 객관적인 문제가 있는 경우 회사가 즉시 취소 및 환불이 가능하도록 약관을 개선한 것”이라고 밝혔다. 

◇ 전문가 “약관 변경 이유 따로 있다”...2인자 닮아가는 1인자 배민

국내 배달플랫폼 월간 사용자수 점유율 추이.[그래픽=이수빈 인턴기자]


배민의 이번 약관 변경 이유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은 다르다. 전문가들은 배민이 빠른 속도로 치고 올라오는 쿠팡이츠와 유사한 고객 친화 정책으로 고객 점유율을 되찾으려는 목적이라고 보고 있다. 

현재 배달플랫 업계 2위인 쿠팡이츠는 빠른 성장세로 배민을 따라잡고 있다.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조사 업체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배민 사용자수는 2,207만명으로 1위, 쿠팡이츠 이용자는 883만명으로 2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배민 사용자가 전월 대비 2.5% 감소한 반면 쿠팡이츠는 같은 기간 5.6% 증가해 추세가 갈렸다. 

결제금액 추이에서도 주춤한 배민과 달리 쿠팡이츠의 성장세는 가파르다. 배민의 결제금액은 지난 1월 1조400억원을 기록한 뒤 주춤하기 시작해 지난달 기준 9,131억까지 내려앉았다. 쿠팡이츠는 올 1월 기준 2,700억원이었던 결제금액이 지난달 4,979억원으로 2배 가까이 늘었다. 이에 배민이 그간 지켜온 배달플랫폼 월간 이용자수 점유율 60%의 벽도 허물어졌다. 배민의 점유율은 지난 6월 이래로 60%대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지만, 지난해 6월 11%에 그쳤던 쿠팡이츠 점유율은 24%까지 올랐다. 

배민도 그간 쿠팡이츠의 맹추격에 대응해왔다. 쿠팡이츠가 출시부터 무료배달을 앞세워 고객들을 빠르게 확보하자 배민도 지난해 3월 묶음 배달로 배달비 부담을 줄인 서비스 알뜰배달을 출시하며 이에 대응했다. 그럼에도 쿠팡이츠의 추격을 막지 못하자 배민이 쿠팡이츠의 또다른 주요 혜택 중 하나인 환불 정책을 의식하기 시작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실제로 배민이 이번에 선보이는 주문 취소 정책은 배달플랫폼 업계 2위인 쿠팡이츠의 일명 '아묻따'(아무것도 묻고 따지지 않는) 환불 정책과 유사하다. 쿠팡이츠는 출시 이래로 현재까지 업주 동의 없이도 플랫폼 차원에서 주문 취소가 가능하도록 약관을 유지해왔다. 고객 서비스를 최우선하는 쿠팡 특성상 환불 사유가 다소 주관적이더라도 대부분의 환불 요청이 받아들여진다. 단 쿠팡이츠의 경우 자금력을 바탕으로 환불액을 업주가 아닌 쿠팡이츠 측에서 부담하기 때문에 업주들의 불만이 크지 않았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배민이 무서운 속도로 점유율을 따라잡고 있는 쿠팡이츠에 과민하게 반응해 쿠팡이츠의 소비자 지향적 혜택을 비슷하게 닮아가고 있는 모양새"라며 "타 기업이 시행한 정책이나 서비스를 비슷하게 시행해 두 기업이 점점 닮아가게 되는 일종의 '동형사상' 경영 전략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블랙컨슈머 등장에 덤터기 쓰면 어쩌나"…곤란한 업주와 기사들
[사진=게티이미지]


배민의 이번 약관 변경으로 외식업주들와 배달기사, 소비자 등 여러 주체들의 입장은 엇갈리고 있다. 

가장 반발이 큰 건 외식업주들이다. 업주들이 가장 크게 우려하는 점은 소비자들의 악용 가능성이다. 업주들은 그간 업주와 고객 간 직접 조율을 통해서만 이뤄졌던 환불 절차를 배민 플랫폼을 통해서도 이용할 수 있게 되면서 환불 요청이 앞으로 더 많아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또 업주 동의 없이도 취소가 이뤄질 수 있다는 점을 악용해 음식에 큰 문제가 없음에도 환불을 요구하는 '블랙컨슈머'가 성행하면 업주 매출에 타격이 클 것이라는 입장이다. 

부산 광안리에서 해산물 음식점을 운영 중인 김희중씨도 약관 변경 후 가장 우려되는 점으로 소비자 악용을 꼽았다. 

"소비자 악용이 제일 걱정되죠. 음식을 만든 업주랑 통화하는 식도 아니고 배민에만 얘기하면 환불을 받을 수 있다고 하는데 악용하는 사람들이 없을 수가 없어요. 외식업은 한 건만 환불해줘도 열 건을 더 팔아야 메꿀 수 있는 구조거든요. (약관이) 시행되면 웬만한 가맹점들은 매출 타격을 피할 수가 없을 거라고 봐요."

또 업주들은 배민이 제시한 기준이 모호하다는 점도 지적했다. 배민이 제시한 객관적인 문제 사유 중 '하자가 발생한 경우', '포장이 부실한 경우', '위생상 문제가 있는 경우' 등의 표현이 주관적인 판단을 포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씨는 "횟집에서 ‘회가 비리다’, ‘포장이 별로다’ 같은 이유로 환불을 요청하는 경우도 많은데 이런 경우도 배민이 말하는 '문제'나 '하자'에 해당하는 것이냐"며 "배민은 객관적인 기준이라고 제시했지만 결국 입맛에 따라 판단하겠다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약관 변경이 난감한 건 배달기사들도 마찬가지다. 배민이 '배달 지연이 발생한 경우', '포장이 훼손된 경우' 등 배달기사 귀책사유들을 객관적인 주문 취소 사유로 제시함으로써 배달기사들은 이러한 사유에 대한 고객들의 환불 요청을 피할 길이 없어졌다. 또 배달기사들은 고객이 주문 취소를 요청했을 때 매장 CCTV 등 책임 소명 방안이 있는 업주와 달리 별다른 소명 방안이 없어 많은 환불 책임이 기사들에게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서울 마포구 일대에서 배민 배달기사로 3년째 근무하고 있는 김경훈씨는 "약관이 시행되면 업주들은 어떻게든 환불 책임을 안 지려고 갖은 애를 쓸 텐데 배달 기사들은 소명할 방법조차 없지 않느냐"며 "앞으로 약관대로 '포장이 흐트러졌다'는 식의 환불 요청을 배민이 직접 받아주기 시작하면 배달 기사들이 다 환불 덤터기를 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당연한 소비자 권리"...환영하는 소비자들

반면 약관 변경 소식에 소비자들의 반응은 긍정적이다. 소비자들은 정당한 환불 요청에 대해 업주가 일방적으로 환불을 거절하거나 연락이 닿지 않는 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돼 약관 변경을 반기는 분위기다. 또 가게에 직접 연락을 취해 업주에게 환불을 요구해야 하는 불편한 상황 없이 배민과의 접촉을 통해 환불을 처리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도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배민 이용자인 이현석씨는 "음식에 문제가 있어도 업주와 직접 연락하며 얼굴 붉히는 일이 싫어 참을 때도 있는데 배민이 직접 나서 편리해질 것 같다"며 "소비자가 직접 해결해야 하는 민망하고 불편한 상황이 줄어들 것 같아 좋다"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이번 약관 도입이 배민에 대한 소비자 선호도에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황용식 교수는 "소비자 입장에서는 환영할 수밖에 없는 약관"이라며 "소비자 불만을 플랫폼 기업이 대신 해소하겠다고 나섰으니 서비스가 잘 정착되면 배민에 대한 소비자의 선호를 올리는 데는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상생의 민족’ 될 수 있을까

약관 변경에 대한 다양한 주체들의 입장이 분열된 가운데 약관 시행 효과에 대한 전문가들의 전망은 갈리고 있다. 

황용식 교수는 이번 약관 변경이 플랫폼의 역할을 넘어선 과도한 개입으로 업주들의 경영에 어려움을 줄 수 있다는 입장이다. 또 이 때문에 업주들이 실제 매출에 타격을 입기 시작하면 반발이 거세져 배민과 외식업주 간 갈등이 이어질 수 있다고 봤다. 

반면 이번 약관 변경이 객관적 환불 기준을 정립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희찬 세종대 호텔관광외식경영학부 교수는 이번 약관 변경으로 배민과 업주, 소비자 모두가 객관적 환불 사유 기준을 확보해 혼란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배민과 배송기사 귀책 뿐 아니라 업주 귀책에 대해서도 주문을 취소할 수 있도록 약관을 변경한 것은 장기적으로 업주와 소비자간 분쟁의 소지를 경감시킬 수 있는 조처가 될 것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배민은 이번 약관 변경으로 인해 업주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이다. 배민 측은 당사와의 인터뷰에서 약관 개정 시행일인 다음달 1일 전까지 업주가 책임을 입증할 수 있는 추가적인 방안을 발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부당한 환불 요청 사례가 일어나지 않도록 업주들을 보호하기 위한 정책도 염두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배달플랫폼과 외식업주간 수개월에 걸쳐 이어진 수수료율과 배달비 문제를 둘러싼 상생협의체는 지난 14일 어렵게 합의점을 찾은 상황. 115일간의 진통 끝에 가까스로 찾은 상생 합의점이 수포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서 지금은 미세한 균열도 주의깊게 들여다봐야할 시기다.
/q00006@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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