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 생명체가 해독하길 바라며”…시공을 초월하는 예술

경제·산업 입력 2025-02-08 08:00:04 수정 2025-02-08 08:00:04 유여온 기자 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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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에 도착한 한글 시·앤디워홀 드로잉
지구의 자소서, 보이저호 '골든 레코드'
2114년까지 비밀에 부쳐진 한강 소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서울경제TV=유여온 인턴기자] 우주로 날아간 한글 시, 외계인에게 보내는 한글 편지, 타임캡슐에 담긴 한강의 소설. 최근 미지의 수신자를 향하는 예술 행위가 활발히 이어지고 있다. 

예술에서 중요한 건 ‘동시대성’이다. 대개 ‘지금 이 순간을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작품이 만들어진다. 그런데 이러한 통념을 비튼 시도들이 있다. 메시지의 수신자를 ‘외계인’, ‘미래세대’, ‘100년 후 독자’로 설정한 것. 

물론 좋은 예술은 시대를 넘나든다. 16세기 르네상스 작품 모나리자를 보기 위해 여전히 전세계인들이 박물관으로 모여들고, ‘고전’이라 불리는 작품들이 지속적으로 소비되는 이유다. 반 고흐처럼 생전엔 주목받지 못했지만 사후에 그 가치를 인정받는 일도 있다. 

그러나 최근의 시도들은 아예 특정 범위로 수신인을 한정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우리가 발 딛고 서있는 지구가 아닌 저 멀리 우주로, 현재가 아닌 미래의 사람들에게, 인간이 아닌 또다른 ‘지적생명체’를 향해. 시공간을 초월해 미지의 세계에 가닿고자하는 예술은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져 어떤 의미를 형성하고 있을까.  

미국 우주 기업 파이어플라이의 무인 달 착륙선 '블루고스트'. [사진=뉴스1]


◇ '블루고스트'에 실려 우주로 날아간 한글 시

지난달 15일, 우리나라 시조가 달 착륙선 ‘블루 고스트(Blue Ghost)’에 실려 우주로 날아갔다. 블루고스트는 스페이스X의 로켓 ‘팰컨9’에 실린 파이어플라이 에어로스페이스의 무인 달 착륙선이다.

블루고스트에는 '타임캡슐'이 함께 실렸는데, 여기에 ▲구충회(달에게) ▲김달호(운석의 꿈) ▲김흥열(은하) 등 ‘천체’를 소재로 한 한글 시 8편이 포함됐다. 이 타임캡슐은 전 세계 4만여 명 이상 창작자의 예술을 달로 보내는 것을 목표로 하는 ‘루나 코덱스’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루나 코텍스’ 프로젝트는 총 7차례에 걸쳐 인류의 문화적 유산을 우주로 보낸다. 두 개의 전쟁과 코로나19, 지구 열탕화 등 많은 위기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늘 무언가를 꿈꾸고 창조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미래 세대에게 전하기 위해서다. 작품들은 니켈 필름과 같은 소재에 아날로그 방식으로 새겨지거나 디지털화돼 메모리카드에 보전된다. 

만약 이 작품들이 산화되지 않고 계속 남아준다면, 2020년대 작품이 영원에 가까운 시간동안 생명력을 얻는 것 된다. 그렇다면 인류가 미래와 미지의 대상 향해 예술활동을 펼친 건 언제부터였을까.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달에 간 앤디 워홀의 드로잉, 지구 소개서 '골든 레코드'

흔히 보이저호에 부착된 '골든 레코드'를 떠올리기 쉽지만, 그보다 앞선 사례가 있었다. 조각가 포레스트 마이어스의 ‘달 박물관(The Moon Museum)’이 그 주인공이다.

1969년, 마이어스는 달에 박물관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NASA에 허가를 요청했다. 그러나 곧 성사 가능성이 희박함을 깨닫고 공식적인 루트가 아닌 다른 수를 생각해냈다. 몰래 엔지니어를 섭외해 아폴로 12호에 작품을 부착한 것. 앤디 워홀, 로버트 라우셴버그, 데이비드 노브로스 등 당대 저명한 예술가 6명의 스케치가 들어간 이 작품은 가로 1.9cm, 세로 1.3cm 크기의 작은 세라믹판 웨이퍼에 새겨져 달에 도착했다. 그렇게 최초의 우주 예술 오브제 탄생했다. 

지구인의 자기소개서라 불리는 '골든 레코드'(Voyager Golden Record)는 그로부터 8년 후인 1977년, 보이저 1·2호에 부착돼 우주로 날아갔다. 이 LP 디스크는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아이디어로부터 출발했다. 세이건은 앞선 1972·1973년에도 파이어니어 금속판(Pioneer plaque)을 만들어 인류의 메시지를 우주로 발신한 바 있는데 그 작업을 한층 고도화한 것이다. 인간 해부도와 DNA 정보를 비롯해 55개국의 언어로 전한 환영 인사, 보들레르의 싯구 등 그야말로 인류의 A to Z가 압축돼 담겼다.

이처럼 외계 생명체에게 우리 언어와 문화를 알리는 시도는 지난해 한국에서도 최초로 이뤄졌다. 

[사진=국립중앙과학관]


◇ “지적 생명체가 있다면 해독하길 기대하며”

지난해 11월 16일 국립중앙과학관에서 ‘한글 메시지 우주 전송 행사’가 진행됐다. 지금으로부터 50년 전인 1974년 11월 16일, 인류가 지구 밖 지적 생명체에게 ‘아레시보 메시지’를 보낸 날을 기념한 것이다.

아레시보 메시지는 우주선에 싣는 것이 아닌, 지상에서 직접 전파를 쏘는 방식으로 진행됐는데, 이진법으로 표현한 숫자부터 원자 번호 등 인간 세계의 기초 법칙이 별들이 가장 많이 밀집돼 있던 구상 성단 M13로 보내졌다. 

이번 한국 최초의 우주메시지 “트랜스미션 한글”은 M13뿐만 외계 생명체가 존재할 것으로 추정되는 항성계 및 외계행성 백두, 한라 등의 천체에 전송됐다. 50년 전보다 과학이 비약적 진보를 이룬만큼 10비트의 '디지털 데이터'로 인코딩돼 1550 나노미터의 파장 레이저에 실려 전달됐다.  

이 프로젝트를 이끈 미디어 아티스트 원종국씨는 "외계인에 한국어와 한글을 알려주고자" 이미지와 오디오 데이터를 구성했고, 주파수 조정, 천체 선택 등 최적의 전달 채널을 찾기 위해 천문학자들과 협력했다.

이처럼 아티스트들은 다양한 방식을 채택해 수용자의 범위를 새롭게 정의해나가고 있다. 그 또다른 예가 개념미술가 케이티 패터슨이 주도한 '퓨처 라이브러리' 프로젝트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2114년까지 비밀에 부쳐진 한강의 소설  

2014년부터 진행된 '퓨처 라이브러리'는 해마다 '올해의 작가'를 선정하고, 해당 작가들의 '미발표 원고' 총 100권을 2114년에 발간하는 공공예술 프로젝트다. 작가들의 원고는 유리 타임 캡슐에 담겨 오슬로 도서관에 보관된다. 100년이 지날 때까지 원고는 누구도 읽을 수 없다. 철저히 미래를 향해 계획된 예술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 또한 지난 2019년, 퓨처 라이브러리의 5번째 작가로 선정돼 《사랑하는 아들에게(Dear Son, My Beloved)》원고를 전달한 바 있다. 이외에도 마거릿 애트우드, 엘리프 샤팍,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 등 세계적인 작가들의 작품이 철저히 비밀에 부쳐진 채 도서관에 잠들어 있다. 

한강은 이 프로젝트에 대해 "우리 모두 죽어 사라질 100년 후에 대한 불확실성 속에서 어떤 행위를 하는 것"이라며 "그런 점에서 미래에 대한 기도 같았고, 그런 마음을 가지고 글을 썼다"고 설명한 바 있다.

이처럼 '초월하는 예술' 행위는 다양한 주제의식과 방법론, 신기술과 결합해 매해 새로운 변주를 보여주고 있다. '영속성'에 대한 기대, 미래 세대에 대한 '희망', 미지의 세계를 향한 '호기심'. 이 모든 염원이 한데 담긴 문화적 현상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발전해나갈 것으로 보인다. /yeo-on0310@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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