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4人4色 | 전승훈] 안 하겠다는 게 아닙니다…하고 싶은 걸 하겠다는 겁니다
전승훈 원광대학교 글로벌 K-컬처 사업단 기획행정실장

올해 상반기, 청년정책 멘토링으로 찾은 자리에서 해당 지역 청년 축제를 기획 중인 청년들을 만났다. 그들은 축제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있었다. 고민의 지점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행정이 요구하는 형식이 너무 분명하다는 것. 다른 하나는 청년기획단으로 참여한 지역 대학생들이 지금껏 해오던 대학 축제의 연장선에서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싶어 한다는 점이었다.
청년 축제는 청년이 스스로 고민해 만들고, 그 결과가 청년을 위한 축제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의 고민, 그리고 현실의 축제 속에서 청년은 손발을 움직이는 인력이거나, 그저 관객에 머물러 있었다. 게다가 흥행을 위해서는 이미 ‘검증(?)’된 이벤트, 연예인 공연 등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고 믿는 시선도 강했다.
그 고민에 대해 필자는 이렇게 답했다. “평소에도 할 일이 너무 많아 힘들어 죽겠다는 청년들입니다. 여기에 또 무엇을 더 하라는 축제를 만들 필요가 있을까요? 차라리 청년 축제 하루만이라도 ‘청년들아, 오늘만은 아무것도 하지 말고 편히 쉬어라.’ 이런 축제를 만들면 안 됩니까?”
이어서 예시를 들었다. 광장에 빈백(bean bag)을 가득 깔자. 오는 청년마다 거기에 누워 아무 생각 없이 하늘을 바라보게 하자. 밤이 되면 별도 좀 올려다보게 하자. 공연팀이 필요하다면, 잘 쉬도록 돕는 공연을 하자. 쉬다가 마음 맞는 사람이 있으면 시원한 맥주 한 잔을 가져다 마시게 하자. 비라도 내리면, 비를 맞으며 춤을 추게 하자(aka. Singing in the Rain!).
“어차피 14개 시군 청년 축제들이 비슷비슷하게 ‘무엇을 하려’ 할 겁니다. 그러니 여기만큼은 ‘뭘 좀 하지 말자’고요. 그런데 사실 알고 보면, 그게 바로 ‘다른 걸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난 9월 셋째 주 토요일. 전북 14개 시군은(도(道)까지 합쳐) 저마다 2025년 청년 축제와 행사를 진행했다. 필자도 멘토링으로 찾았던 지역이 어떤 형식의 축제를 펼쳤는지 궁금해 홍보물을 찾아보았다. 결과는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일반적인 형식이 잘 갖춰진 축제였다.
물론 직접 보지 못했기에 세부 구성까지는 장담할 수 없다. 다만 행사 식순과 프로그램만 놓고 보면, 청년을 ‘관객’으로 단정히 앉혀놓은 듯한 인상이었다. 그리고 그 지역만의 일이었을까. 필자가 살펴본 몇몇 축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우리는 흔히 청년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청년이니까 할 수 있잖아.”, “청년이니까 해야지.” 그리고 그렇지 못한 청년에게는 이렇게 말한다. “청년답지 못하네.”, “내가 청년일 때는 말이야….” 물론 앞의 말 속에는 희망을 건네려는 마음이, 뒤의 말 속에는 독려의 의지가 담겨있음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럼에도 필자는 우리가 너무 쉽게 내뱉는 “할 수 있다”와 “청년답다”라는 말에 감히 질문을 던지고 싶다. 과연 “청년답게 한다”라는 표현은 청년이 무엇을 할 때 붙일 수 있는 말일까.
그 당시 축제를 고민하던 청년들은 필자의 제안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조심스레 물었다. “과연 행정에서 이런 축제를 허락해 줄까요?” 필자는 이렇게 답했다. “해보지 않은 것을 두려워하는 건 당연합니다. 어떤 행동이든 혼자 하면 미친 짓처럼 보이기도 하죠. 하지만 둘이나 셋이 함께하면 사람들은 궁금해합니다. 그리고 그 이상이 모이면 마침내 이슈가 됩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꼭 함께 행동했으면 좋겠습니다. ‘안 하겠다’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이 ‘하고 싶은 걸 하겠다’는 뜻이지요.”
필자가 생각하는 “청년답게 한다”는 바로 그것이다.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 기성세대가 시키는 대로 하거나, 기존대로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았던 것을 시도하는 것.”
계몽주의 철학자 칸트(Immanuel Kant, 1724~1804)는 “너 자신의 이성을 스스로 사용할 용기를 가져라.”(“Sapere aude!”)라고 말했다. 자기 책임을 인식하고, 주체적인 사고로 스스로 삶을 설계하라는 메시지다. 이는 청년, 더 나아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 지성(知性)의 축적에만 머무르지 않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길 ‘용기’임을 일깨운다.
혹시 우리는 청년의 미성숙과 경험 부족을 핑계 삼아, 우리가 가진 과거의 지성(知性)과 당연시된 관성(慣性)을 주입해 놓고, 정작 그들이 고민하고 머뭇거릴 때 “용기가 없다”고 비난해 온 것은 아니었을까.
영화 <배트맨 비긴즈>(2005)에서 레이첼 도스는 방탕한 척 살아가는 브루스 웨인이 “이건 내 진짜 모습이 아니야”라고 변명하자 이렇게 답한다. “브루스, 네 마음 깊은 곳엔 예전의 멋진 소년이 그대로 있겠지. 하지만 지금의 널 말해 주는 건 속마음이 아니라 현재의 행동이야.”
우리는 청년이 자기 본연의 모습으로 살 수 있도록, 그리고 그렇게 행동할 용기를 갖도록 돕는 어른이어야 하지 않을까. 청년은 결코 “안 하자”는 존재가 아니다. “하고 싶은 것을 하겠다”는 존재다. 그런 지역사회가 될 때, 청년 또한 지역의 ‘수호자’가 될 것이다. 행동하게 하고, 우리도 함께 행동하자. 그리고 꼭 기억하자. 누가 뭐래도, “사랑은 말보다 행동”이라는 것을.
▲ 전승훈 원광대학교 글로벌 K-컬처 사업단 기획행정실장
·문화통신사협동조합 전략기획실장
·익산시문화도시 지원센터 사무국장
·원광대학교 HK+지역인문학센터 행정실장
·전북특별자치도문화관광재단 심의위원
·익산시민역사기록관 운영위원
·부안군문화재단 전문위원
'문화 4人4色'은 전북 문화·예술 분야의 네 전문가가 도민에게 문화의 다양한 시각과 깊이 있는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매주 한 차례씩 기고, 생생한 리뷰, 기획기사 등의 형태로 진행됩니다. 본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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