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4人4色 | 전승훈] 정치, 민주주의 그리고 문화다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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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5-04-12 10:00:03
수정 2025-04-12 10:00:03
이경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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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승훈 원광대학교 글로벌 K-컬처 사업단 기획행정실장

지난 2025년 4월 4일 오전 11시 22분. 대한민국의 대통령이었던 윤석열은 헌법재판소의 주문에 따라 대통령직에서 파면되었다. 탄핵소추 사유로 지적된 핵심 쟁점 다섯 가지 모두가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일치된 결론이었다. 이번 결정은 대통령 파면이라는 극적인 결과를 가져왔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대한민국 대통령의 권한과 책임이 어디에서 비롯되고 어디까지 미치는가를 다시금 분명히 각인시킨 사건이기도 했다.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은 결정 요지에서 “국민 모두의 대통령으로서 자신을 지지하는 국민을 초월해 사회 공동체를 통합해야 할 책무를 위반하였습니다. 군경을 동원해 국회 등 헌법기관의 권한을 훼손하고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침해함으로써 헌법 수호의 책무를 저버리고 민주공화국의 주권자인 대한국민의 신임을 중대하게 배반하였습니다.”라며, 대통령의 지위가 그 자체로 ‘민주주의의 상징’임을 다시금 강조했다.
이 결정이 갖는 의미는 비단 한 사람의 파면에 국한되지 않는다. 국가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 그리고 나아가 지방자치단체장까지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은 모든 이들’이 반드시 새겨두어야 할 경종이 아닐 수 없다.
한편, 헌법재판소의 이번 결정을 실시간으로 듣는 동안 필자의 가슴속에 오래 머문 문장들이 있다. 바로 민주주의와 정치가 지닌 본질에 대한 언급이다. “민주주의는, 개인의 자율적 이성을 신뢰하고 모든 정치적 견해들이 각각 상대적 진리성과 합리성을 지닌다고 전제하는 다원적 세계관에 입각한 것으로서, 대등한 동료시민들 간의 존중과 박애에 기초한 자율적이고 협력적인 공적 의사결정을 본질로 한다.”는 말.
또한 “정부와 국회 사이의 대립이 어느 한쪽의 책임만은 아니다. 이는 민주주의 원리에 따라 조율되어야 할 정치의 문제이며, 그 의사결정 역시 헌법에 보장된 민주주의의 본질과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대목도 매우 인상적이었다. 더불어 “민주국가의 국민 각자는 서로를 공동체의 대등한 동료로 존중하고, 자신의 의견이 옳다고 믿는 만큼 타인의 의견에도 동등한 가치를 부여해야 한다.”라는 문장은 탄핵 과정을 넘어 우리 사회 전반에 울림을 주는 주문처럼 느껴졌다.
곰곰이 헤아려보면, 헌법재판소는 위헌 여부를 가리는 곳이다. 그러나 정작 그들이 심판문 한가운데 놓아둔 내용은 법을 초월해 ‘정치’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우리는 흔히 정치라 하면 당리당략이나 권모술수를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본래의 정치는 ‘존중’과 ‘박애’ 위에서 이루어지는 협력적 의사결정이며, 서로 다른 목소리를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는 행위다.
결국, 법치주의가 곧 민주주의는 아니라는 것이다. 법은 어디까지나 최후의 수단일 뿐, 대화와 토론 그리고 합의의 장을 열어 사회의 수많은 견해와 가치를 조정해 가는 것은 바로 정치의 몫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문득 필자는 문화다양성을 떠올린다. 다소 의외의 연결 고리로 보이겠지만, 사실 소외된 소수를 포용한다는 점에서 정치와 문화다양성은 같은 뿌리를 공유한다고 생각한다. 문화다양성은 예술이나 전통뿐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생활양식과 가치관, 서로를 바라보는 태도까지 폭넓게 아우르는 개념이다.
이에 전북특별자치도와 익산시, 완주군, 군산시 등 일부 지자체에서는 「문화다양성 보호와 증진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지만, 실제로 이를 구현하는 사업이나 실천은 아직은 더디게만 느껴진다.
그러나 필자는 문화다양성이야말로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를 ‘대등한 동료’로 인정하고, 서로 다른 색깔을 가진 의견들이 대화하고 포용하며, 결국은 더 풍요로운 결론에 이르게 만드는 원동력이라는 사실을 믿는다.
문화다양성을 말할 때 필자는 곧잘 “너답게, 나답게, 우리가 되는 것”이라는 말을 하곤 하는데, 민주주의도, 정치도, 그리고 문화다양성도 결국은 다르지만 함께하는 세계를 지향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런 점에서 이번 대통령 탄핵 결정은 한 시대의 사건을 넘어서 각자의 머릿속에 ‘정치와 민주주의, 그리고 문화다양성’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사건이 될지도 모르겠다.
한 걸음 물러나 바라보면, 모두는 이름도 얼굴도 다른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일 따름이다. 그 다름 속에서 서로를 배척하기보다, 존재 그 자체를 존중하고 연대하려는 자세가 있다면 얼마든지 새로운 정치와 법, 그리고 다채로운 문화 속에서 ‘서로 다른 삶이 공존할 수 있는 세상’을 꿈꿀 수 있지 않을까?
가장 낮은 곳에 있는 목소리를 듣고, 그 목소리와 함께 걷는 정치. 낯선 문화를 보듬고, 그와 더불어 새로운 미래를 그려보는 문화다양성. 이 두 가치가 실현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오늘을 넘어서는 길을 찾게 될 것이고, 온전한 민주주의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 길이 ‘빛의 혁명’이라 불렸던 우리의 자발적인 연대와 대화로 시작되었음을, 그 가능성을 조심스레 믿어본다.
▲ 전승훈 원광대학교 글로벌 K-컬처 사업단 기획행정실장
·문화통신사협동조합 전략기획실장
·익산시문화도시 지원센터 사무국장
·원광대학교 HK+지역인문학센터 행정실장
·전북특별자치도문화관광재단 심의위원
·익산시민역사기록관 운영위원
·부안군문화재단 전문위원
'문화 4人4色'은 전북 문화·예술 분야의 네 전문가가 도민에게 문화의 다양한 시각과 깊이 있는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매주 한 차례씩 기고, 생생한 리뷰, 기획기사 등의 형태로 진행됩니다. 본 기고는 본지의 취재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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