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4人4色 | 전승훈] 사과는 사람을 먹을 수 있을까

전국 입력 2025-06-28 10:00:03 수정 2025-06-28 11:05:16 이경선 기자 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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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승훈 원광대학교 글로벌 K-컬처 사업단 기획행정실장

전승훈 원광대학교 글로벌 K-컬처 사업단 기획행정실장


누가 뭐래도 인간은 지구상 가장 강력한 포식자다. 사자와 같은 날카로운 발톱과 이빨을 지니지 않았고, 치타처럼 번개 같은 속도를 자랑하지 못하며, 거북이처럼 긴 세월을 살아남지도 못한다.

그럼에도 인간은 어떤 생명체보다도 강력한 존재가 되었다. 끝없이 도구를 만들고, 세대를 뛰어넘어 지식과 지혜를 축적하며, 마침내 자신만의 방식으로 지구 위에 군림했다. 과거 지구상에는 여러 차례의 대멸종이 있었지만, 그 어떤 종도 그것을 주도하지 않았다. 그러나 인간은 지금 당장이라도 하나의 버튼만 누르면 지구 역사상 가장 처참한 대멸종을 초래할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사람을 뛰어넘는 존재는 정말 없는 걸까? 감히 필자는 “있다”고 말하고 싶다. 그것은 바로 ‘사과(Apple)’다. 황당하고 낯선 비유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극단 작은 소리와 동작(이하 작은소동)의 연극 <사과가 사람을 먹는다>를 본다면, 이 기이한 은유가 절대 허무맹랑하지 않음을 공감할 것이다.

작은소동은 익산시, 나아가 전북특별자치도를 대표하는 연극 단체 중 하나다. 1995년 창단한 이후 <할머니의 레시피>, <경로당 폰팅 사건> 등 다채로운 대표작을 무대에 올리며 600여 회 이상의 공연으로 지역 문화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또한 ‘익산서동축제’, ‘익산국가유산야행’ 등 지역 고유의 역사와 문화를 담아내는 다양한 축제에서 빛나는 역할을 해왔다.

특히, 2024년과 올해 2025년에는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역대표예술단체 육성 지원사업’에 최초이자 연속 선정되었고, 필자 또한 총괄기획자로서 작은소동과 함께 의미 있는 성과를 이뤄냈다.

작은소동이 2025년 지역대표예술단체 육성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올리는 연극 <사과가 사람을 먹는다>는 전북특별자치도를 대표하는 극작가 이강백의 희곡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이 작품은 어느 사과 과수원에서 벌어지는 기괴한 사건을 배경으로 인간의 실존과 욕망에 관한 깊은 질문을 던진다.

영원히 변치 않는 절대적 권력과 이데올로기를 믿으며 돈과 권력을 움켜쥔 채 살아가는 과수원의 수전노 아버지, 그리고 그에 매달리거나 저항하며 살아가는 인간 군상을 우화적으로 그려내며, 현실의 부조리와 어둠을 웃음과 풍자 속에 감각적으로 펼쳐 보이는 작품이다.

연극의 제목이자 강력한 상징인 <사과가 사람을 먹는다>는 우리를 섬뜩하게 하는 구절이다. 흔히 사과는 유혹의 열매이자 욕망의 상징으로 그려져 왔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사과는 더 이상 단순한 욕망의 대상이 아니다. 어느 순간, 사람은 스스로를 사과에 바치고, 결국 서로를 소비하고 말 것이다. 인간이 사과를 먹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과 탐욕이 사과로 형상화되어 오히려 인간을 집어삼킨다는 섬뜩한 역설이 펼쳐지는 것이다.

결국, 사람을 먹을 수 있는 존재는 사람이 아닌 모든 것이다. 가치가 전도되고 목적이 수단 아래 종속되는 순간, 인간은 서로를 탐하고 착취하며 스스로를 파괴하는 비극적 존재가 된다. 돈과 권력, 욕망이 지배하는 순간, 가장 순수하고 평범했던 과실조차 무서운 포식자가 되어 사람을 집어삼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연극을 통해 묻고 싶었다. 과연 지금 우리가 추구하고 있는 가치는 진정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인가, 아니면 우리를 스스로 소모하고 파괴하는 덫인가. 그날 극장 밖으로 나선 모두의 손에 쥐어질 사과가, 더는 욕망과 탐욕의 상징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회복하는 새로운 과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 전승훈 원광대학교 글로벌 K-컬처 사업단 기획행정실장
·문화통신사협동조합 전략기획실장
·익산시문화도시 지원센터 사무국장
·원광대학교 HK+지역인문학센터 행정실장
·전북특별자치도문화관광재단 심의위원
·익산시민역사기록관 운영위원
·부안군문화재단 전문위원

'문화 4人4色'은 전북 문화·예술 분야의 네 전문가가 도민에게 문화의 다양한 시각과 깊이 있는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매주 한 차례씩 기고, 생생한 리뷰, 기획기사 등의 형태로 진행됩니다. 본 기고는 본지의 취재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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