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몇 명이서 하는 거야?”…현행법 빈틈 노린 ‘변칙 1인 시위’ 난무
[서울경제TV=성낙윤기자] 다수가 참여하는 집회로 신고를 하고 사실상 1인 시위를 벌이거나, 실제 다수가 참여하는 집회를 1인 시위로 가장하는 등 법 규정의 허점을 노려 규제 사각지대를 넘나드는 ‘변칙 1인 시위’가 난무하고 있다.
현행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상 ‘집회’ 또는 ‘시위’를 위해서는 두 명 이상이 공동의 목적을 가지고 모여야 한다. 현수막을 지자체 신고 후 지정 게시대에만 내걸 수 있는 1인 시위와 달리 다수 집회 시에는 옥외집회(시위·행진) 신고서에 준비물로 기재만 하면 숫자 제한 없이 신고 기간 동안 현수막을 게시할 수 있다.
반면 1인 시위는 집시법 규제 대상이 아니어서 별도 사전 신고의무가 없고, 집시법 규제 대상인 다수 집회나 시위와 달리 국회나 헌법재판소 인근 등 시위가 금지된 지역에서도 가능하다. 또한 집시법에 정해진 소음 제한 규정에서도 자유롭다.
이러한 법 규정의 허점을 악용, 자신의 주장 관철에 유리한 방식을 선택하는 ‘변칙 1인 시위’가 늘어나면서 기업과 일반 시민 등의 불편을 초래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국민 기본권 보장과 상식적 시위 문화 조성을 위해 변칙 1인 시위를 차단할 방안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 사실상 1인 시위를 다수 참여 집회로 신고…현수막 등 게시물 편법 부착 차원
양재동 모 기업 앞 현수막. [사진=독자제공]
사실상 1인 시위임에도 다수가 참여하는 집회로 신고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국내 대기업 사옥 인근에서 벌어지는 시위 상당수가 이러한 방식으로 진행된다.
동반자가 아예 없거나 동반자가 있어도 정기적인 참석이 어려워 집회나 시위 요건을 갖추지 못했음에도 현수막과 입간판, 천막 등 시위 도구를 장기간 설치하기 위한 목적이다.
옥외광고물법 상 현수막은 관할 지자체에 게시를 신고한 뒤 지정된 게시대에 걸지 않으면 모두 불법으로 철거 대상이 된다.
반면, 집시법상 집회 준비물로 신고되면 게시할 수 있는 현수막 숫자에 사실상 제한이 없다. 시위 장소를 뒤덮은 현수막이 시민 통행에 불편을 주고 주위 경관을 훼손시켜도 불명확한 단속 규정 탓에 집회 기간 설치된 현수막은 실제 개최 여부에 상관없이 철거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서울 서초구 현대자동차그룹 사옥 인근에서 사실상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는 A씨 사례가 대표적이다.
자신이 일하던 판매 대리점 대표와의 불화 등으로 계약이 해지된 후, 이와 무관한 기아를 향해 근거 없는 ‘원직 복직’을 주장하고 있는 A씨는 당초 1인 시위를 벌였다. 하지만 게시된 현수막이 1인 시위의 범위를 넘어선다는 이유로 경찰에 의해 제지를 당하자 다수 집회 신고를 시작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현재도 A씨는 사실상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음에도 공동대책위 명의로 관할 경찰서에 매일 20여 명이 참여하는 집회를 개최한다고 신고하고 있다.
A씨 외에 K사 사옥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는 B씨, S병원 정문 앞에서 역시 1인 시위를 진행중인 C씨 등도 다수가 참여하는 집회로 신고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집회 신고가 된 변칙 1인 시위 현장 주변에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거나 명예를 훼손할 소지가 있는 내용으로 채워진 현수막과 천막들이 다수 설치돼 있다. 일부 현수막과 천막은 도로를 이용하는 운전자들의 시야를 가려 교통사고 유발 위험성을 높이고 있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 다수 참여 집회를 1인 시위로 가장…사전 신고 및 소음 제한 등 회피 목적
광화문 모 기업 앞 시위에 동원된 스피커. [사진=독자제공]
다수가 참여하는 집회를 참여자 간 거리를 두는 등의 변칙적인 방식을 동원해 1인 시위로 가장하는 사례도 있다.
지난 2012년 삼성일반노조는 다른 집회가 신고되어 원하는 장소에서 집회를 열 수 없게 되자, 최대 30미터 간격을 두고 각자 피켓을 들고 서 있는 방식으로 시위를 강행했다.
1인 시위는 장소 제한이 없어 다른 집회 신고가 되어있는 곳에서도 자유롭게 시위를 벌일 수 있다는 점을 파고든 것이다.
노조 측은 자발적 1인 시위를 주장했으나 당시 사용된 피켓은 모두 노조가 제작했고, 참가자들은 사전 연락을 통해 목적과 방식을 공유한 것으로 전해졌다.
집시법 상 소음 규제를 피하기 위해 1인 시위를 가장하는 사례도 있다. 소음을 통해 시위 대상에게 고통과 불편을 끼치려는 경우에 주로 활용되는 수법이다.
지난해 전∙현직 대통령 사저 앞에서 벌어진 시위가 대표적이다. 경찰이 인근 주민들의 사생활 평온이 저해될 우려가 있다며 집회를 제한했음에도 불구하고, 시위 참여자들은 1인 시위임을 주장하며 강행했다.
1인 시위는 주간 평균 75데시벨(dB), 야간 평균 65데시벨로 규정된 집시법 상 소음 규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밤낮으로 최고 90데시벨을 넘는 고성과 욕설에 시달린 인근 주민들은 불면증과 스트레스로 병원 치료를 받는 등 피해를 호소하기도 했다.
◇ “변칙 1인 시위 차단해야…현장 감독 강화 및 1인 시위 최소한 규제 필요
을지로 모 기업 건물 입주사들의 소음 피해 관련 현수막. [사진=독자제공]
이처럼 법 규정의 허점을 노려 규제 사각지대를 넘나드는 변칙적인 1인 시위가 기승을 부림에 따라 현장 감독을 강화하고 실효성 있는 법 개정을 통해 변칙 1인 시위로 이어지는 통로를 차단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현행 집시법은 신고된 다수 집회를 정당한 사유 없이 개최하지 않는 경우에 한해 100만원 이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다수가 참여하는 집회로 신고하고, 사실상 1인 시위를 벌이는 ‘변칙’에 대해서는 벌칙 규정이 없다. 무늬만 집회인 1인 시위로 공공의 이익이 침해되고 막대한 사회적 비용과 피해가 초래되더라도 아무런 제재가 가해지지 않는 것이다.
법조계 전문가는 “관할 지자체 등이 실제 집회 참여 인원 확인 등 현장 감독을 강화하고, 신고 내용과 다른 집회가 일정 기간 이어질 경우 집회 개최를 취소할 수 있게 하는 등 실효성 있는 법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규제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1인 시위에 대해서도 최소한의 규제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영국은 지난해 무분별한 1인 시위에 대한 규제와 처벌이 가능하도록 법을 개정했다. 영국은 집회 및 시위에 대해 규제를 최소화해 온 대표적인 국가로 꼽혔으나, 2010년대 후반부터 집회 과정에서 경찰관들이 폭행을 당하는 등 사회적 혼란이 심각해지면서 실효성 있게 법을 개정했다.
영국 ‘경찰, 범죄, 양형 및 법원에 관한 법률(PCSCA∙Police, Crime, Sentencing and Courts Act 2022)’에 의하면 1인 시위자가 발생시키는 소음이 주변 기관 또는 단체의 활동에 심각한 혼란을 야기하거나, 주변 사람들에게 중대한 피해를 끼치는 경우 경찰은 해당 시위를 제한하는 조건을 부과할 수 있다. 부과된 1인 시위 조건을 위반할 경우 당사자는 형사 처벌에 처해질 수 있다.
국내에서도 지난해 6월 위법적인 1인 시위를 규제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집시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됐지만 아직 소관 상임위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또 다른 전문가는 “다양화하는 변칙 1인 시위에 대응할 수 있도록 사회적 논의와 법 개정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며 “집회 결사의 자유도 중요하지만 ‘다중 1인 시위’ 또는 ‘편법 집회 신고’ 등 법 규정의 허점을 악용한 변칙 1인 시위로 고통받는 시민의 기본적 권리 또한 보호받아야 할 중요한 가치”라고 강조했다. /nyseo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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