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플랫폼들 결국 ‘대규모 유통업자’ 되나…‘플랫폼법’은 무산
온라인 플랫폼도 대규모 유통업자에 포함…정산기한 의무화·판매대금 별도 관리
‘사전지정제’ 담겼던 '플랫폼법'은 무산…법 위반하면 사업자가 적극 입증해야
국회 정무위 소속 더불어민주당 "후퇴 입법"…국회 논의 과정 '험난'
[서울경제TV=이혜연기자] 당정이 티몬·위메프(티메프) 사태를 막기 위해 온라인 플랫폼들을 ‘대규모 유통업자’로 지정하고, 불공정행위를 저질렀을 경우 사후 추정 방식으로 규제하는 등 공정거래법·대규모유통업법 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플랫폼의 공정한 경쟁과 신생 플랫폼의 시장진입을 보장하기 위해서라지만, 업계에서는 시기상조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온라인도 대규모 유통업자에 포함”…정산기한 의무화·판매대금 별도 관리
국민의힘과 정부는 지난 9일 ‘플랫폼 공정경쟁 촉진 및 티몬·위메프 사태 재발 방지 입법 방향 당정협의회’를 열고 공정거래법·대규모유통업법 개정안을 논의했다. 주요 내용은 대규모 유통업자의 규모 기준 선정에 따른 정산 기한 의무화, 판매대금 별도 관리 등이다.
기존 오프라인 유통업체에만 적용됐던 ‘대규모 유통업자’의 기준이 온라인까지 포함될 전망이다. 제1안은 중개 거래수익 100억원 이상 또는 중개 거래금액 1,000억원 이상이고, 제2안은 중개 거래수익 1,000억원 이상 또는 중개 거래금액 1조원 이상이다. 이는 추후 논의를 거쳐 확정될 예정이다. 규제 대상에 쿠팡, G마켓 등 대형 온라인 플랫폼 업체들이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
개정안이 확정되면 일정 기한 내 정산을 의무화하고 판매 대금의 일정 비율을 별도로 관리해야 하는 등의 규제가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정산 기한의 경우 제1안은 구매 확정일로부터 10일 또는 20일, 제2안은 월 판매 마감일로부터 30일 이내로 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판매대금의 일정 비율을 별도 관리하도록 하는 방안은 각각 100%와 50%가 나왔다.
업계 일각에서는 ‘법제화’에 대한 우려를 보이고 있다. 이번 티메프 사태의 본질은 정산주기가 길든 짧든 약속한 정산일을 지키지 못해 벌어진 문제라는 시선이 지배적이다. 애초에 대형 온라인 커머스 플랫폼들은 정산주기를 짧게 가져가고 있다.
특히 G마켓, 11번가 등 대표적인 오픈 마켓들의 경우에는 구매확정 후 1~2일 안에 판매자 대금을 정산해주고 있다. 오픈 마켓은 판매자가 많아지고 판매자들의 경쟁을 통해 가격 경쟁력이 생기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윈-윈 구조로, 플랫폼과 판매자 간의 신뢰가 중요하다. 그러나 법이 개정되면 오히려 지금보다 더 늦게 정산해줘도 문제가 없는, 일종의 ‘면죄부’로서의 기능을 할 수 있게 된다.
더 우려되는 상황은 이커머스 산업군 자체의 발전을 오히려 저해할 수 있다는 점이다. 대형 플랫폼들의 경우 투자금 등 자본력이 갖춰져 있지만, 비교적 중소 업체들은 벌어들이는 돈으로 재투자를 하거나 유동성을 활용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C-커머스 등 우리나라 온라인 시장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오히려 국내 시장의 파이를 더 크게 만들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판매대금을 업체 자율에 맡기지 않고 일정 비율을 강제화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개별적인 온라인 플랫폼 업체의 여건이 다 다르기 때문에 시간을 두고 법 개정을 충분히 논의하고, 보다 느슨한 규제로 방향이 전환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사진=뉴스1]
◇‘사전지정제’ 플랫폼법은 무산…사업자, 자사우대·끼워팔기 등 법 위반 시 적극 입증해야
이외에도 빠르게 변화하는 플랫폼 시장에서 반경쟁적 행위를 차단해 질서를 확립하겠다는 취지의 공정거래법 개정안도 이날 논의됐다. 당초 논란이었던 ‘플랫폼 경쟁촉진법(플랫폼법)’ 제정은 무산된 모양새다. 별도의 독자 법안을 만들기보다는 개정안으로 신속하게 법안을 발의하고 결정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플랫폼법의 핵심은 독과점 지위에 있는 플랫폼 기업의 반칙행위를 막기 위한 ‘사전지정제 도입’이었지만, 과잉 규제 우려 등 업계 반발이 있어왔다. 이에 공정거래법 개정안에는 독점적 지위를 가진 플랫폼을 법으로 사전에 지정하는 방안이 아니라, 법을 위반했을 경우 사후에 추정하는 형태가 담겼다.
사후추정 대상으로는 시장 점유율 60% 및 이용자수 1,000만명 이상이거나, 3개 이하 회사의 점유율이 85% 이상이고 각 회사별 이용자 수가 2,000만명 이상일 경우가 해당된다. 다만, 국내 매출액 4조원 이하 플랫폼은 제외다. 중개, 검색, 동영상,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운영체제(OS), 광고 등 6개 서비스 분야가 이 법 적용을 받을 예정이다.
반칙 행위로는 알고리즘 조작 등으로 자사 상품을 경쟁 상품보다 유리하게 취급하는 ‘자사우대’, 자사 플랫폼 서비스와 다른 상품·서비스를 함께 구매하도록 강제하는 ‘끼워팔기’, 경쟁 플랫폼 입점을 제한하는 ‘멀티호밍’, 자사 플랫폼 이용자에게 타사 플랫폼보다 유리한 거래조건을 요구하는 ‘최혜대우’ 등 행위 4가지다.
법 위반이 확인되면 공정위는 업체에 과징금을 물고 거래를 즉시 중단하는 업무중지명령 등을 부과할 수 있다. 과징금은 관련 매출액에 따라 기존 6%에서 최대 8%로 올린다. 만약 법 위반이 아니라면 해당 입증 책임은 사업자가 적극적으로 져야 한다.
김상훈 정책위의장은 “금지 행위에 대한 형벌은 제외하되 과징금은 상향하고 임시중지명령을 도입해 후발 플랫폼이 시장에서 퇴출되지 않도록 할 예정”이라며 “시장 영향력이 압도적으로 큰 지배적 플랫폼을 사후 추정해 규율 대상을 정하되 스타트업 우려가 불식되도록 규율 대상은 최소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 개정안 역시 당초 취지에 부합하지 않다는 지적이 있다. 거대 온라인 플랫폼의 반칙행위를 예방하거나 처리하는 기간을 단축하기에는 법적인 견제가 충분하지 않고 너무 늦다는 것이다. 특히 해외 플랫폼들과의 역차별 우려도 나온다.
대규모유통업법은 9월 중 공청회에서 이해관계자로부터 의견 수렴한 후 확정안이 마련되고,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여당 안으로 발의될 예정이다. 다만, 국회 정무위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10일 발표한 성명서에서 “정부 여당의 개선안은 또 다른 유형의 티몬·위메프 사태를 재현하고 양산하겠다는 선언이라 봐도 무방하다”며 “후퇴 입법”이라고 반발하는 등 향후 국회 논의 과정에서 진통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hy2e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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