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4人4色 | 유기준] 종이로 엮어 만든 예술, 지승 공예의 세계

전국 입력 2025-07-12 10:00:03 수정 2025-07-12 10:00:03 이경선 기자 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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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준 (재)전주문화재단 공예품전시관운영팀 차장

유기준 (재)전주문화재단 공예품전시관운영팀 차장


한 장의 종이가 꼬이고 엮이며 단단한 공예품이 되는 과정, 바로 이것이 ‘지승(紙繩)’이다. 지승 공예는 종이를 가늘게 꼬아 끈을 만든 후 이를 엮어 생활용품이나 장식품을 만드는 전통 기술이다. 예전에는 바구니, 그릇, 박다위* , 주루막* 같은 실용적인 물건을 만드는 데 주로 쓰였지만, 지금은 예술적인 가치를 인정받으며 공예품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종이로 만들어졌지만 놀라울 정도로 견고하며,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단단해지는 특징이 있다.

*박다위 - 종이나 삼노를 꼬아서 길게 엮어 만든 멜빵. 짐짝을 걸어서 메는 데에 쓴다.
*주루막 - 가는 새끼 등으로 촘촘하게 엮어 주둥이를 죌 수 있도록 고리를 만들고 고리와 아래의 양 끝에 멜끈을 달아 물건을 나르는 데 쓰는 연장

지승 공예의 매력은 손끝에서 만들어지는 ‘손맛’에 있다. 얇은 종이를 정성껏 꼬아 하나의 끈을 만들고, 이를 엮어 작품을 완성하는 과정은 상당한 인내와 집중력을 요구한다. 단순히 물건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한 올 한 올 엮어가며 자연의 흐름과 삶의 지혜를 담아내는 작업이기도 하다. 그래서 지승 공예는 단순한 전통 기술을 넘어 예술로 평가받는다.

전북무형유산 보유자인 김선애 지승장은 이 전통을 현대적으로 계승하며, 지승 공예의 가치를 널리 알리고 있다. 한지와 늘 함께하는 그는 오랜 연구 끝에 전통 방식을 유지하면서도 현대적 감각을 더한 작품을 만들어왔다. 김선애 장인은 “지승은 손끝에서 태어나지만, 그 안에는 시간과 자연의 흐름이 담겨 있다”고 말하며, 지승이 단순한 공예가 아니라 깊이 있는 예술임을 강조한다.

그가 지승 공예를 이어가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 중 하나는 해외 전시에서였다. 유럽 전시에 참여해 지승 작품을 선보였을 때, 관람객들이 ‘이게 정말 종이로 만든 것이냐’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가볍지만 단단하고, 쓰면 쓸수록 더욱 강해지는 지승 공예의 특성에 감탄한 것이다. 이는 지승 공예가 전통 기술이면서도 현대적 감각으로 충분히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였다.

김선애 장인은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몇 년 전 전주공예품전시관의 제안으로 지승 찻잔을 제작했는데, 옻칠을 두껍게 입혀 실제로 따뜻한 차를 따라 마실 수 있도록 만들었다. 파손 위험이 없고 매우 가벼워 실용성과 독창성을 모두 갖춘 작품이 탄생했다. 다만, 제작 과정이 까다롭고 공력이 많이 들어가다 보니 가격이 높아 대량 생산이 어려운 점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또한, 평면 작품과 지승 공예를 융합한 회화작품을 선보였던 적도 있는데, 전시 당시 뜨거운 반응을 얻으며 지승 공예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처럼 지승 공예는 단순한 생활 용품을 넘어 예술로 확장되고 있다. 전통 방식의 돈궤나 바구니뿐만 아니라, 조명, 액세서리, 인테리어 소품 등 현대적 디자인이 가미된 작품들도 등장하고 있다. 김선애 장인은 이러한 변화를 기꺼이 받아들이며 젊은 세대와의 소통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그의 작품은 전통의 틀을 지키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을 담아내어, 지승 공예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가고 있다.

지승 공예는 한지라는 친환경 재료를 활용한 지속 가능한 예술이다. 전통과 현대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하며, 자연과 인간이 함께 만들어낸 소중한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김선애 지승장이 걸어가는 길이, 단순한 기술 전수가 아니라 전통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미래를 여는 과정이 되길 기대해본다.

▲ 유기준 (재)전주문화재단 공예품전시관운영팀 차장

'문화 4人4色'은 전북 문화·예술 분야의 네 전문가가 도민에게 문화의 다양한 시각과 깊이 있는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매주 한 차례씩 기고, 생생한 리뷰, 기획기사 등의 형태로 진행됩니다. 본 기고는 본지의 취재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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