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4人4色 | 유기준] 숨 쉬는 그릇, 살아있는 공예 – 옹기와 생활 속의 자연미학

전국 입력 2025-06-14 01:42:43 수정 2025-06-14 01:42:43 이경선 기자 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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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준 (재)전주문화재단 공예품전시관운영팀 차장

유기준 (재)전주문화재단 공예품전시관운영팀 차장

우리의 일상에서 가장 가까운 공예는 ‘그릇’이다. 음식을 담고, 발효를 돕고, 삶의 시간을 간직하는 그릇. 그중에서도 옹기는 유난히 자연과 가까운 도자기다. 숨 쉬는 그릇, 살아있는 용기. 옹기는 단순한 전통 유물이 아니다. 오늘날 지속가능한 생활문화의 대안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는, 살아있는 공예품이다.

옹기는 흙과 물, 불이라는 자연의 요소로 만들어진다. 그러나 그것이 도자기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숨을 쉰다’는 것이다. 표면의 작은 기공들이 공기를 순환시키고, 내부와 외부의 습도와 온도를 조절한다. 이 특성은 발효식품을 숙성시키는 데 탁월한 기능을 발휘하며, 예부터 김치독, 된장독으로 활용되어왔다. 오늘날, 건강한 식문화와 천연 발효에 대한 관심이 커지며 옹기의 가치가 다시 조명되고 있다.

이러한 옹기의 생명력을 가장 잘 보여주는 현장이 전북특별자치도 김제 부거리 마을에 있다. 이곳에서 전통 장작가마를 지키며 옹기를 만드는 이는 전북특별자치도 무형유산 부거리옹기장, 안시성 장인이다. 그는 전국에서도 몇 남지 않은 전통 옹기 제작 기술자 중 한 사람으로, 전라도 고유의 ‘쳇바퀴 태렴’ 방식과 장작가마 소성을 고수하고 있다. 이 방식은 단순한 생산이 아닌, 흙과 불, 시간과 정성이 어우러져야만 가능한 예술적 노동이다.

안시성 장인의 장작가마는 단순히 옹기를 굽는 공간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우주다. 새벽마다 장작을 나르고, 흙을 다듬어 그릇을 빚은 뒤, 며칠 밤낮 불을 지피며 가마를 지키는 일은 체력만이 아니라 깊은 정신적 집중을 요한다. 그렇게 구워낸 옹기는 숨을 품는다. 장인의 말처럼 “불은 단순한 열이 아니라, 흙을 그릇으로, 생명을 담는 용기로 되살리는 시간의 불꽃”이다.

그렇다면 전통 옹기가 오늘날의 삶에 어떻게 쓰일 수 있을까? 최근엔 커피 저장 용기, 허브 발효병, 천연 조미료 보관용기, 반려식물 화분 등으로 옹기를 응용하려는 시도도 활발하다. 산업용 플라스틱 대신 자연 소재를 선택하려는 이들의 요구에 부합하면서도, 손의 온기와 자연의 감성을 더하는 디자인 오브제로서의 가능성도 크다. 특히 미니 옹기나 모던 감각의 옹기 오브제는 현대 주거공간에도 잘 어우러진다. 개인적으로 즐기는 것은 옹기로 만들어진 잔에 뽀얀 막걸리를 따르면 색감 대비를 비롯해 그 맛이 기가 막히다.

이처럼 옹기는 단지 과거의 물건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위한 공예로 거듭나고 있다. 손으로 빚어진 그릇 하나가 자연을 닮은 삶의 방식을 제안하고, 오래된 장작가마 한 기가 지역과 세계를 잇는 문화의 매개체가 된다. 안시성 장인과 부거리 옹기의 작업은 그 상징적인 예다.

우리의 삶 속에 옹기를 다시 들인다는 것은 단순히 전통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선택하고, 삶을 공예로 바꾸는 일이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부거리에서는 뜨거운 불 속에서 숨 쉬는 그릇이 태어나고 있다.

옹기는 여전히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자연과 함께 숨 쉬기를 바라는 모든 삶 앞에.

▲ 유기준 (재)전주문화재단 공예품전시관운영팀 차장

'문화 4人4色'은 전북 문화·예술 분야의 네 전문가가 도민에게 문화의 다양한 시각과 깊이 있는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매주 한 차례씩 기고, 생생한 리뷰, 기획기사 등의 형태로 진행됩니다. 본 기고는 본지의 취재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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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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