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4人4色 | 유기준] 비가 오면 펼쳐지는 꽃, 비꽃 지우산

전국 입력 2025-10-18 12:47:02 수정 2025-10-18 12:47:02 이경선 기자 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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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무형유산 제45호 우산장 윤규상 장인

유기준 (재)전주문화재단 공예품전시관운영팀 차장

사람들은 흔히 우산을 ‘비를 막는 도구’로만 여긴다. 하지만 전주에서는 우산이 하나의 예술이자 문화, 전통의 맥으로 이어진다. 우리가 흔히 ‘지우산’이라고 부르는 한국식 종이 우산이 그것이다.

지우산은 얇고 단단한 대나무 골에 닥종이(한지)를 바르고 칠과 그림으로 마무리한 후 마지막으로 기름칠을 하여 물에 젖지 않게 만든 전통 우산이다. 비를 막을 뿐 아니라 햇빛을 가리며 고운 색채와 문양으로 품격 있는 멋까지 담아냈다. 그 안에는 오랜 시간 쌓인 장인의 기술과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미학이 깃들어 있다.

이 전통을 지켜내고 있는 인물이 바로 전북무형유산 제45호 우산장 윤규상 장인이다. 수십 년 동안 우산 한 자루에 혼과 시간을 깃들여온 그는, 더는 시장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지우산을 오롯이 지켜온 인물이다. 한지와 대나무의 숨결을 이어붙이고, 결을 따라 붓을 움직이며 한 자루 한 자루 정성을 들여 우산을 완성해 낸다.

하지만 장인의 작업은 단순한 보존을 넘어서고 있다. 그의 아들 윤성호 작가가 함께하며 지우산은 또 다른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전통 기법은 계승하되, 현대적 감각과 조형적 실험을 더해 새로운 지우산의 미학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윤성호 작가가 선보이는 지우산은 단지 생활용품이 아니라, 전시 공간을 밝히는 오브제이자 빛과 그림자를 설계하는 하나의 예술 조형물이다.

그렇다면 지우산이 단지 전통 공예품으로만 머물고 있을까? 아니다. 지우산은 이제 화면 속 예술이자 시대를 표현하는 감성 도구로 주목받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2020년 12월, tvN에서 방영된 인기 사극 드라마 <철인왕후>다. 조선 철종 역의 김정현 배우와 중전 김소용 역의 신혜선 배우가 등장할 때 들고 있던 아름다운 양산과 우산이 바로 윤규상 우산장이 제작하고 회화 작가와 협업해 완성한 콜라보 지우산이었다.

우산의 섬세한 살 구조 위에 얹힌 곱고 단단한 한지, 그리고 그 위에 펼쳐진 회화적 문양과 그림은 그 자체로 장면의 품격을 한껏 끌어올렸다. 단순한 배경 소품이 아닌 인물의 감정과 시대의 미학을 담아내는 장치로서 지우산이 기능한 것이다.

장인은 그동안 여러 사극, 영화, 뮤직비디오 등에서 요청을 받아 지우산 협찬 및 제작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작품마다 색감, 크기, 문양 등을 작품 콘셉트에 맞춰 직접 조정하며 단순한 ‘우산 제작자’가 아닌 무대 뒤의 장인 예술가로서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셈이다.
관객은 모르고 지나쳤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우산 하나가 ‘한국적인 미’를 시청자에게 자연스럽게 각인시켰고, 때로는 주인공의 감정선을 더욱 선명하게 부각시키는 도구로 작용했다.

이렇듯 윤규상 장인과 윤성호 작가가 만들어가는 지우산은 전통 공예의 영역을 넘어 대중문화와의 감각 있는 접점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가고 있다.
고전과 현재, 실용과 예술, 공예와 콘텐츠의 경계를 자유롭게 오가는 지우산은 이제 우리 곁에 아주 특별한 방식으로 스며들고 있다. 

지우산의 살과 한지, 그리고 색은 단순한 요소가 아니다. 각각의 조각이 하나로 모여야만 우산이 펼쳐지고, 그 위에 깃든 전통의 이야기가 살아난다. 손의 감각, 시간의 인내, 그리고 자연 소재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이는 이 우산은 만들어질 수 없다.

오늘날 산업화와 빠른 소비 문화 속에서 수많은 전통 기술이 사라지고 있다. 그런 시대의 한복판에서 윤규상 장인과 윤성호 작가 부자의 지우산은 한 장의 빛나는 선언과도 같다. ‘우리는 전통을 이어가되, 머무르지 않는다.’는 예술가의 태도. 지우산은 과거를 품고 현재를 살아가며 미래를 준비하는 손끝에서 다시 피어난다.

▲ 유기준 (재)전주문화재단 공예품전시관운영팀 차장

'문화 4人4色'은 전북 문화·예술 분야의 네 전문가가 도민에게 문화의 다양한 시각과 깊이 있는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매주 한 차례씩 기고, 생생한 리뷰, 기획기사 등의 형태로 진행됩니다. 본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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