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4人4色 | 유기준] 선이 머문 자리, 마음이 흐른 풍경

전국 입력 2025-09-04 16:26:43 수정 2025-09-04 16:31:53 이경선 기자 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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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상소록 線想小錄 – 톺아보기…전통회화의 현재
오는 7일까지 전주공예품전시관 1층

유기준 (재)전주문화재단 공예품전시관운영팀 차장

문장을 읽다 멈춘 자리, 마음에 남는 그 문장에 조용히 선을 긋는다. 오래된 책의 귀퉁이처럼, 그 선은 작은 기록이고, 소박한 응시이며, 다시 돌아오겠다는 다짐이다.

2일부터 7일까지 전주공예품전시관(전시 1관)에서 열리는 전시 <선상소록 線想小錄 – 톺아보기>는 그런 ‘선’의 전시에 가깝다. 다섯 명의 전통회화 전공자들이 어느 ‘선상’에서 기억하고, 바라보고, 지나온 흔적들을 담담히 채색한 회화 작품들을 통해 관람객과 조우한다.

‘소록(小錄)’은 작고 사적인 기록이라는 뜻이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은 각자의 시선으로 일상의 잔상, 아끼는 사물, 스쳐간 감정의 편린들을 화폭에 담아냈다.

그 선은 고요하지만 단호하고, 채색은 절제되어 있으나 풍부하다. 오랜 시간 전통회화를 수련해온 이들 작가들은 선으로 생각을 그리고, 색으로 감정을 덧입히며 한국화의 본령을 지키되, 자신만의 감성적 필체를 더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이 ‘책거리’라는 형식을 차용했다는 것이다. 조선시대 지식인들의 취향과 세계관을 엿볼 수 있는 책거리는 단순한 정물화의 범주를 넘어 삶의 태도를 담은 회화였다.

이번 전시에서도 책거리 형식을 기반으로 한 대표작들이 각 작가의 성향을 또렷하게 드러내며, 그 외의 작품들 역시 기획 의도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석하여 선보이고 있다. 이는 전통의 언어를 빌리되 현재의 감각으로 재해석하는 시도로, 전통회화가 여전히 살아 움직이는 예술임을 보여준다.

‘선상’이라는 개념은 단지 선을 그은 표면의 공간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내는 시간의 자리이기도 하다. 작가들은 각자의 선상에서 떠올린 기억과 감정, 사유들을 끌어와 그것을 한 점의 선으로 연결하고, 이 선들이 다시금 다른 사람의 선상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이는 ‘톺아보기’라는 전시의 부제와도 연결된다. 곱씹고, 되짚고, 천천히 들여다보며 서로의 삶과 감정을 조금 더 가까이 마주하려는 시도다.

이번 전시가 열리는 전주공예품전시관은 한옥마을 중심부에 자리한 전주의 대표 문화공간으로, 전통과 현대 공예가 공존하는 플랫폼이다. 전주의 깊은 역사와 예술성을 바탕으로 공예작가들의 창작 활동을 지원하고, 관람객들에게 품격 있는 전시와 체험을 제공하는 이 공간은 매해 국내외 관광객들에게 특별한 감동을 선사해왔다.

전주를 찾은 여행자라면 놓쳐서는 안 될 전시로, <선상소록 線想小錄>은 한옥마을의 풍광과 어우러져 전통미술의 감성을 더욱 깊이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기회를 제공한다.

<선상소록 線想小錄 – 톺아보기>는 전통회화가 지닌 고유한 선의 힘과 채색의 여백을 통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조용한 성찰을 건넨다. 바쁜 일상 속에서 무심히 지나쳤던 감정의 조각들을 다시 바라보고, 삶의 들목에서 마주한 풍경을 나만의 언어로 그려보는 기회를 이 전시는 조용히 제공한다.

이제, 그림 앞에 멈춰 서서 당신의 선을 그을 차례다. 전주의 예술적 선상에서, 당신만의 흔적을 남겨보길.

▲ 유기준 (재)전주문화재단 공예품전시관운영팀 차장

'문화 4人4色'은 전북 문화·예술 분야의 네 전문가가 도민에게 문화의 다양한 시각과 깊이 있는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매주 한 차례씩 기고, 생생한 리뷰, 기획기사 등의 형태로 진행됩니다. 본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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