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눈] '임금 체불' 이스타항공, 문제는 '신뢰'다
한 달 중 직장인들이 가장 기다리는 날은 언제일까. 월급날이다. 그런데 월급 당일에 급여의 40% 밖에 줄 수 없다는 공지를 받아들면 어떨까. 월 300만원을 버는 직장인이라면 수중에 들어온 돈은 120만원에 불과하다. 최저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이스타 항공’ 얘기다.
월급날인 지난 25일 이스타항공 직원들은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 최종구 이스타항공 대표에게서 날아든 공지를 마주했다. 요지는 ‘회사 운영을 유지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2월 급여는 40%만 지급하고, 연말정산금액도 당장 줄 수 없다’는 것. 항공업계는 지난해부터 이어진 악재에 허덕이고 있다. ‘보이콧 일본’, ‘코로나19’ 악재까지. 항공사들의 실적은 속절없이 곤두박질쳤고, 임원 사표, 무급 휴직 등 고강도 자구책에 돌입했다. 생사기로에 선 노사는 고통을 십분 분담해야 한다. 다 함께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
문제는 신뢰다. 적어도 사전 공지는 필요했다. 가장이던 혼자 사는 직장인이던 집값, 통신비, 생활비, 보험료 등 매달 들어가는 고정비가 있다. 월급 당일 임금체불이란 소식은 ‘천청벽력’일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3일 전 노사가 체결한 합의서는 무엇이었나. 그 합의서에는 3월부터 6월까지 4개월 동안 임금 25%를 삭감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합의안은 조합원 찬반투표에서 70% 이상 찬성하며 가결됐다. 경영 위기 극복과 고통 분담을 위해 노조가 스스로 임금삭감에 나선 것이다.
이스타항공이 직원들에게 당장 급여를 줄 수 없을 정도로 회사 경영 상태가 위기라면 3일 전 합의서 사인을 위해 노조와 마주했던 최종구 대표는 설명해야 했다. 그때라도 말할 수 있었다. 노조가 회사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다고 말한 이유다.
근로자들이 땀 흘려 일한 정당한 대가인 임금은 지급돼야 마땅하다. 그러나 회사가 망한다는데, 내 급여만 내놓으라고 소리칠 직원은 소수일 것이다. 합의서를 뒤로 한 채, 어떠한 설명도 없이 내려온 일방적인 공지. 월급 당일 전해진 임금체불. 회사가 직원들과 신뢰를 먼저 쌓았다면 이해할 수 있지 않았을까. /김혜영기자 jjss123456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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