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편집자는 근로자 아니다?…화려한 영상 뒤 개인채널 노동자의 현실
임금체불, 부당해고까지...열악한 개인채널 종사자 현실
보수 기준 없어...열정페이, 무페이 구인글도 등장
유튜브 매니저 근로자성 최초 인정됐지만...이례적 사례에 불과
근로기준법 바뀔까...5인 미만 사업장 적용 두고 격론
[서울경제TV=이수빈 인턴기자] 한 유튜브 개인채널의 영상 편집자로 일하던 조씨는 최근 일자리를 잃었다. 채널 운영자가 다른 편집자와 함께 일하기로 했다며 조씨에게 해고를 통보했기 때문이다. 조씨는 이를 부당해고라고 보고 노동청에 신고를 하려 했지만 이내 마음을 접었다. 업계가 좁아 편집자가 유튜버를 노동청에 신고한 것이 알려지면, 다시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업계 지인의 말이 떠올라서다.
“황당했던 게, 편집자 공고를 보고 제가 잘린다는 걸 알았어요. 물어보니 채널 콘셉트가 바뀌어서 다른 느낌의 편집자가 필요하다고 하더라고요. 신고를 하려고 해도 저는 이게 본업이니까...업계에서 찍히면 안 된다는 생각에 못하겠더라고요”
◆‘최저시급 미달’, ‘임금체불’, ‘주 52시간 초과’까지...무법지대가 된 개인채널 종사자 근무환경
이런 사례는 조씨만의 일이 아니다. 지난해 한빛미디어인권노동센터에서 실시한 ‘유튜브 영상 편집자 노동실태 조사’에 따르면 유튜브 등 개인채널 종사자들의 노동환경은 매우 열악한 수준인 것으로 드러났다.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에서 발표한 유튜브 영상 편집자 실태조사[그래픽=이수빈 인턴기자]
약 28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해당 조사 결과에 따르면, 영상 편집자의 월 평균 소득은 143만 원 가량인 것으로 나타났으며 월 소득이 100만 원 미만인 경우도 41%에 달했다. 또 시간당 소득이 최저시급 이하인 경우도 50%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러한 수치는 편집자의 연령과 경력, 영상 장르나 길이에 따라 살펴봐도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 마저도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임금 체불이나 과소 지급 등 대금 지급과 관련된 부당 대우를 받은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27%였다. 이와 같은 임금 문제를 포함해 직장 내 괴롭힘, 부당해고 등 부당대우를 경험해본 비율은 전체의 45%를 차지했다.
조씨 역시 비슷한 경험을 털어놨다. 조씨는 “영상이 완성된 이후 대금을 지급받기로 했지만, 실제 입금된 금액은 약속한 금액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인 경우가 있었다”며 “’퀄리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자금이 부족하다’ 등 여러 이유를 대며 대금을 제대로 주지 않는 사례가 꽤 있다”고 말했다.
노동시간 역시 열악한 수준이었다. 같은 조사 결과에 따르면 법정 노동시간인 주 52시간보다 많이 일하고 있는 편집자들은 전체의 19%였다. 5명 중 1명 꼴로 법정 노동시간보다 많이 일하고 있는 셈이다.
노무사들 역시 유튜브 등 개인채널 종사자들이 열악한 노동 환경에 놓여있다고 있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노무법인 정평의 이선영 노무사는 “열악한 근로조건 하에서 개인채널 종사자들의 노동을 착취하거나 최저임금 미달 등 법망을 피해가려는 사례들이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YM 노무사사무소의 문유민 노무사 또한 “대금이 지급되지 않거나 과소지급되는 경우 등 부당한 대우를 받은 개인채널 종사자들이 상담을 의뢰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개인채널 종사자들은 장시간 근로가 관행화돼있고 시간당 보수가 적게 형성돼 있어 열악한 노동환경을 경험하고 있다”고 말했다.
◆ “이 업계 일하려면 이 정도는 감수해야지”…개인채널 노동 환경이 열악한 이유
이처럼 개인채널 종사자들의 노동 환경이 열악한 데에는 유튜브 등 개인채널 플랫폼의 특성과 보수 기준 부재 등 다양한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우선 유튜브 등 개인채널의 특성상 1인 기업 또는 소규모 사업장인 경우가 많아 노동관계법령에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는 점이 문제로 꼽힌다. 해당 종사자가 근로자인지 아닌지를 명확히 구분해 달리 대우할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 이선영 노무사는 “유튜브라는 플랫폼 특성상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임의적으로 판단해 프리랜서 계약, 도급계약을 체결할 가능성이 높다”며 “채널 운영자가 노동관계법령에 대한 인식이 충분하지 않은 경우 법적 기준에 미달하는 계약을 제안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일정한 보수 기준이 없다는 점도 문제다. 영상 편집 업무는 대개 시간당 급여가 아닌 건당 급여,혹은 영상 1분당 급여가 지급되는 만큼, 채널 운영자들은 최저시급으로 인한 제약 없이 급여를 책정하고 있다. 이에 매니저나 편집자를 구하는 구인구직 사이트에는 영상 1분당 급여 1만 원 이하 등 열정페이에 가까운 공고 글이 자주 올라온다. 10분 정도 길이의 유튜브 영상 편집 시간이 편집 난이도와 편집자 숙련도에 따라 최소 몇 시간에서 길게는 며칠까지 소요되는 것을 고려하면 최저임금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의 급여다. 또 포트폴리오를 쌓을 수 있다는 명목으로 급여를 받지 않는 재능기부 편집자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유튜브 편집자 중 7%는 재능기부 방식으로 일을 하고 있다. 개인채널 업계에서 편집자가 제대로 된 근로자로 인식되지 않고 있다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 영상 편집자 구인구직 사이트의 구인 글들. 분당 급여가 만 원 이하로 책정돼 있다.[사진=이수빈 인턴기자]
더 심각한 것은 이러한 관행이 종사자들 사이에서도 암묵적으로 용인되고 있다는 것이다. 개인채널 종사자들은 법적 기준에 미달하는 대우를 경험하더라도, 어느정도 규모 이상의 채널에서 일하는 것만으로 경력이 된다는 인식 하에 이를 수용하기도 한다. 또 부당대우에 신고 등의 방법으로 적극적으로 대응할 경우, 재취업이 어려울 것이라는 두려움에 대응을 포기하기도 한다. 조씨 역시 “유튜브판은 업계 사람들끼리의 소문이 빠르다”며 “부당한 일을 당하더라도 신고하는 편집자로 낙인 찍히면 일을 할 수 없을까봐 두려워 부당대우를 감내하는 경우도 많다”고 밝혔다.
◆노동청 최초로 유튜브 매니저 손 들어줬지만…닿을 듯 말 듯 ‘근로자성’ 기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개인채널 종사자들은 정당한 권리를 찾기 위해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노동자가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기 위한 방법은 ‘근로자성’을 인정받는 것이다. 최근 한 유튜브 채널 매니저의 근로자성이 최초로 인정된 노동청 판단이 나와 화제를 모았다.
4일 중부지방고용노동청 성남지청은 기획자 겸 매니저로 채용된 임모씨가 유튜버 A씨를 상대로 제기한 근로기준법 위반 진정 사건과 관련해 임씨의 손을 들어줬다. 지난해 12월부터 해당 유튜브 채널에서 일을 시작한 임씨는 A씨의 야외 방송에서 스키 시범을 보이다 허리를 다치는 부상을 입었다. A씨는 임씨와 프리랜서 계약을 체결했다며 부상에 대한 산재보험 처리를 거절했지만, 노동청은 이번 사례에 대해 임씨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봤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을 판단하는 기준은 당사자 간에 ‘종속적인 관계’가 형성됐는지 여부다. 이 종속성을 판단할 때는 근무시간, 장소 등이 지정돼 구속을 받는지, 계속적으로 근무하고 특정 사용자에게 전속 근무하는지, 사용자가 상당한 지휘, 감독을 하는 지 등 노동환경의 다양한 부분을 종합적으로 살핀다. 또 계약의 형식과는 무관하게 실질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근로를 제공했는지를 파악한다. 처음에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거나 도급 계약서를 작성했더라도, 실제로는 종속적인 관계로 노무를 제공했다면 근로자성이 인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임씨 역시 프리랜서 계약을 체결했지만 월 고정급여, 주 5일 근무로 구두 계약해 근로 자체의 대상성이 있다는 점, 업무지시 및 승인권이 유튜버 A씨에게 있다고 보이는 점, 고정 급여 외 이윤을 창출할 여지가 없어 보이는 점 등 여러 근거를 토대로 근로자성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이번 판단이 앞으로 개인채널 종사자들의 근로자성 인정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다. 이미 수년전부터 많은 개인채널 종사자들이 권리를 구제받기 위해 노동청에 진정서를 냈지만 근로자성을 인정받지 못했다. 문유민 노무사는 근로자성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근로자임을 주장하는 자가 입증책임을 부담하는데, 개인채널에서 계약서 자체를 쓰지 않는 경우가 많고 개인이 자료를 수집하기 어려워 현실적으로 입증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유튜브 채널 종사자의 근로자성과 관련한 국내 제1호 소송인 ‘자빱TV’ 사건은 2년 넘게 결론을 짓지 못하고 있으며, 지난해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는 한 유튜브 채널 종사자의 근로자성을 부정한 바 있다. 이번 노동청 판단이 최초로 개인채널 종사자의 근로자성을 인정했다는 점에서는 의의가 있지만, 이례적인 사례에 불과해 이번 판단으로 종사자들의 근로자성 인정 확률이 올라갈 것이라고 예단할 수는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 법 테두리 밖에 놓인 종사자들…근로기준법 바뀔까
[사진=게티이미지]
이와 같은 상황임에도 개인채널 종사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나 법적 울타리는 부족한 수준이다. 특히 개인채널은 5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인 경우가 많아 근로기준법 등 노동관계법령이 제한적으로 적용된다는 점이 문제로 꼽힌다. 먼저 근로기준법 제23조 제1항은 사용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근로자를 해고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는데 5인 미만 사업장에는 이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 즉 사용자가 정당한 사유를 입증하지 못해도 해고할 수 있기 때문에, 관할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등 구제 신청을 하기도 어렵다. 이 때문에 조씨와 같은 편집자들은 실제로 부당해고를 이유로 노동청에 진정서를 제출하더라도 구제를 받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밖에도 연차유급휴가제도나 연장근로, 야간, 휴일 근로에 대한 법 규정도 5인 미만 사업장은 예외다. 따라서 연장 근로를 하거나 야간, 휴일 근로를 하더라도 추가 수당이 발생하지 않는다. 올해 1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전파진흥협회가 발표한 ‘디지털크리에이터미디어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디지털 크리에이터 미디어 사업체 중 5인 미만 사업장 비중은 81.2%를 차지했다. 이처럼 개인채널 특성상 5인 미만의 소규모 사업장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은 만큼, 종사자들은 근로자의 기본 권리와 안전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을 5인 미만 사업장까지 확대해야 한다는 논의가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다. 최근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는 장관 취임 시 1순위로 추진할 과제로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근로기준법 확대 적용'을 꼽았다. 지난 4·10 총선 당시에도 근로기준법 확대 적용에 대해 여야간 공감대가 형성된 바 있다. 그러나 확대 적용의 범위와 단계별 시행 등 절차 면에서는 여전히 의견이 갈린다. 특히 5인 미만 사업장을 운영하는 사업주들의 반발이 거세다. 5인 미만 사업장의 경영 현실을 고려할 때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은 사실상 어려우며 사업주의 부담만 늘린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 개인채널 시장 커지는데…유튜버 후광에 감춰진 종사자 처우 개선될까
한편 개인채널 시장은 계속해서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올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국내 디지털 크리에이터 미디어 사업체 수는 1만 1,123개, 종사자는 3만 5,375명인 것으로 집계됐다. 연간 산업 전체 매출액은 4조 1,254억 원에 달했다. 이는 2021년 매출액 2조 5,056억 원과 비교하면 2년새 1.6배가량 성장한 수치다.
이처럼 크리에이터 시장 규모가 점점 커지고 전세계적으로 크리에이터를 포함한 프리랜서 노동자들의 노동 현실이 수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일부 국가들은 이미 제도에 손을 보기 시작했다. 지난달 영국 노동당은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뉴딜정책' 중 하나로 업종이나 임금 또는 계약 유형과 관계없이 모든 근로자에게 동일한 기본권리와 보호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올해 초 호주와 뉴욕에서도, 근로자성을 확대 보장하거나 프리랜서 노동자 권리를 보호하는 법안이 통과됐다.
우리나라 역시 관련 시장이 빠른 속도로 성장을 이어가고 있는 만큼 종사자 처우 개선에 대한 논의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잇따라 나온다. 조씨는 “많은 사람들이 유튜버들의 화려한 모습을 보고 업계에 들어오지만 뒤에 있는 종사자들의 현실은 버티기 힘든 수준”이라며 기본적인 부분이라도 보장받으며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노무법인 도래솔의 조애리 노무사 역시 “고용관계가 복잡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프리랜서라는 명칭에 갇혀 기존 노동관계법의 보호범위에 포섭되지 못하는 것이 개인채널 종사자들의 노동 환경이 열악한 근본적인 이유”라고 지적했다./q00006@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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