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입 속도 내는 원화 스테이블코인...'기대 반 우려 반' 왜?
경제·산업
입력 2025-07-12 08:00:04
수정 2025-07-12 08:00:04
오동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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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블코인 입법 본격화…통화주권 보완 시도
제도 본격화한 미국…국내는 아직 초입
불안정한 구조와 통화정책 무력화 우려 제기
정책 추진 시기와 제도 설계가 실효성 좌우

“비은행 기관에 허락해주면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10일 비은행권의 스테이블코인 발행에 우려를 나타냈다. 다수의 민간 기관이 각기 다른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할 경우, 사실상 민간 화폐가 난립하며 금융시장의 불안정성과 통화정책의 효율성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다.
이와 함께 한국은행은 디지털 화폐 실험인 한강 프로젝트가 무산된 것이 아닌 '일시 정지 상태'라고 밝혔다. 제도적 불확실성과 책임 소재 문제 속에서, 발행 주체와 제도 설계 방향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는 판단이다.
자체 프로젝트를 멈춰가며 민간과 발을 맞추려는 배경엔, 단순한 통화 기술을 넘어서는 통화 주권과 금융 질서 전반에 대한 위기감이 자리하고 있다.
▲ 통화주권 위협, 제도 공백 메우려는 입법 움직임
스테이블코인이 결제 수단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국내에서도 제도 정비 움직임이 본격화되면서 기대와 우려가 동시에 불거지는 상황이 연일 벌어지고 있다.
우선 더불어민주당 민병덕 의원 등 20인은 최근 ‘스테이블코인 사전 인가제 도입’과 ‘대통령 직속 디지털자산위원회 신설’을 골자로 하는 디지털자산기본법을 발의했다. 민간이 발행하는 디지털 자산에 대해 일정한 통제 장치를 마련함으로써, 금융시장 전반의 불확실성을 줄이려는 의중이다.
입법 추진의 배경은 대통령의 선거 공약 외에도 국제적 분위기가 자리한다. 이미 글로벌 가상자산 시장에서는 테더(USDT), USD코인(USDC) 등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이 기준 통화처럼 자리잡고 있으며, 거래소는 물론 일부 해외 온라인 결제망에서도 달러 기반 코인 사용이 일상화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이 국내 소매 결제 영역으로까지 확산될 경우, 원화 대신 달러가 결제 기준 통화로 기능하는 상황이 현실화될 수 있다. 달러 패권 확산에 따른 국가별 통화 주권을 수호하겠다는 움직임이다. 이 같은 문제의식은 비단 한국에 국한되지 않는다. 자국 통화를 운용 중인 홍콩, 싱가포르 등 주요 금융 허브에서도 관련 입법이 한창이다.
▲ 국경 넘는 결제 혁신…확산되는 스테이블코인 사용

스테이블코인의 활용성은 명확하다. 특히 국제송금과 결제 부문에서 그 편의성이 두드러진다. 전통적인 방식은 국제금융결제망(SWIFT)을 통해 평균 2~5일의 시간이 소요되며, 중개은행 수수료와 환전 비용 등을 포함해 총 6%가량의 수수료가 붙는다. 무엇보다 SWIFT를 이용하려면 수취인과 송금인 모두가 은행 계좌를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반면,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한 송금은 블록체인 기반의 디지털 지갑 간 거래로 이뤄지며, 대부분 실시간에 가까운 속도로 자금 이체가 가능하다. 수수료는 통상 0.5% 이하로 대폭 줄어들며, 별도의 금융 인프라 없이도 스마트폰 하나로 국경을 넘는 자금 이전이 가능하다.
이러한 장점 덕분에 미국, 홍콩, 일본 등 주요국들도 스테이블코인 제도화를 서두르고 있다. 미국에서는 지난 5월, 스테이블코인 관련 첫 연방법인 ‘지니어스(GENIUS) 액트’가 상원을 통과했고 하원 통과를 앞두고 있다. 지니어스 액트는 발행 기업의 자산 규모, 담보 요건, 자금세탁방지 규정 등 기준을 엄격히 설정했다. 그러나 발행된 코인을 정식 금융수단으로 인정한다는 점에서 규제와 진흥을 병행하는 법으로 평가받는다.
홍콩 역시 지난 5월 관련 법안을 통과시켰으며, 디지털화 속도가 느리다는 평가를 받아온 일본도 3월에 관련 법 개정을 완료했다. 글로벌 금융 허브들은 스테이블코인을 위험 보단 기회로 바라보며 제도권 편입을 서두른다.
동대문 의류 상인 등은 테더를 통해 중국 상인들과 수십억 원대 거래에 나선지 오래다. 가상자산업계 관계자는 “환차손을 줄이려는 외국인 상인들과 매출 축소를 통해 세금을 줄이려는 동대문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것”이라고 전했다. 이처럼 국경 간 거래의 편리함 때문에 스테이블코인의 사용이 빠르게 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제도화 논의가 이제 막 본격화되고 있다.
▲ 가격 고정 뒤에 숨은 구조 불안…스테이블 코인의 우려점

가치가 안정적인 것처럼 보이는 스테이블코인. 그러나 한국은행은 가격 고정 이면의 구조적 리스크에 주목하고 있다.
지난달 25일 발표한 금융안정보고서에따르면, 가장 큰 우려는 ‘코인런(Coin Run)’이다. 예금자를 보호하는 장치가 갖춰진 은행과 달리,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는 민간 기업은 위기 상황에서 대규모 상환 요구가 한순간에 몰릴 수 있다. 실제로 담보로 보유한 국채를 한꺼번에 매도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면, 금융시장 전반에 충격이 전이될 수 있다는 게 한국은행의 판단이다.
법정화폐 기반 스테이블코인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준비자산의 가치 하락, 기술적 오류, 범죄 악용 사례 등으로 인해 가치 연동이 깨지는 ‘디페깅(de-pegging)’ 현상이 발생하면, 신뢰 붕괴는 가속화되고 ‘코인런’으로 번질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리스크가 가상자산 시장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스테이블코인을 직접 보유하거나 이를 담보로 금융 거래에 활용하는 금융기관들도 손실, 유동성 위기, 평판 리스크에 노출될 수 있다.
한국은행은 기술적인 측면에서도 경고를 보냈다. 아직 제도적 기반이나 인프라가 충분히 정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민간 업체들이 자체적으로 발행한 스테이블코인은 기술적 결함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으며, 이로 인한 신뢰 하락이 또다시 코인런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통화정책의 무력화다. 스테이블코인이 화폐 대용 수단으로 널리 쓰이면, 본통화의 신뢰성과 정책 효과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민간 주도의 통화 공급이 늘어나게 되면 본통화에 대한 신뢰가 약화되고, 한국은행이 펼치는 금리 조정이나 유동성 조절 정책의 실효성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게 한국은행의 설명이다.
또한,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들이 자금 운용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코인을 과도하게 발행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준비자산이 은행 예금으로 구성될 경우, 가계의 소액 예금이 민간 발행사의 대규모 예금으로 이전되면서 은행의 자금조달 구조가 흔들릴 수 있다. 한국은행은 과도한 코인 발행은 은행의 자금 조달 비용을 높이고, 나아가 신용 창출 기능 자체를 약화시킬 수 있다고 전한다.
▲ 원화 스테이블코인, 정책 결정의 기로에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다수 비은행 기관이 원화 스테이블 코인을 만들면 다수의 민간화폐가 만들어지는데 이 화폐의 가치가 다 다를 수 있어 19세기 민간화폐 발행에 따른 혼선이 다시 벌어질 수 있다”라고 말했다.
1830년대 중반부터 남북전쟁 당시까지 미국에선 은행별로 민간화폐를 발행했다. 당시 은행의 신뢰도 등에 따라 민간화폐 가치가 달라지는 문제가 발생했다.
한국은행은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무분별한 확산이 ‘화폐 단일성(singleness of money)’을 훼손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통화의 기본 질서를 흔들 수 있는 변화인 만큼, 제도화에 앞서 충분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oh19982001@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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