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4人4色 | 한윤정] 관광, 빛을 보는 여행에서 역사를 마주하는 여행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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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5-08-16 12:07:25
수정 2025-08-16 12:07:25
이경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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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윤정 전주대학교 관광학 박사

‘관광(觀光)’이라는 단어는 ‘볼 관(觀)’, ‘빛 광(光)’을 써서, 문자 그대로 ‘빛나는 것을 본다’는 뜻을 담고 있다. 단순히 경치를 본다는 의미를 넘어, 다른 지역이나 다른 나라의 아름답고 훌륭한 것을 감상하고 배우는 행위를 뜻한다.
관광의 어원은 중국 주나라 시대, 『역경』에 나오는 “관국지광(觀國之光) 이용빈우왕(利用賓于王)”이라는 구절에서 비롯됐다. 이는 “나라의 빛남을 보고 귀한 손님을 맞아 임금에게 이롭게 하라”는 의미로, 국가의 위엄과 문화를 드러내고 외교를 원활히 하여 나라에 이익을 주라는 가르침이 담겨 있다.
당시 ‘관광’은 단순한 유람이 아니라 나라의 아름다움과 문화적 성취를 보여주고 배우는 고귀한 행위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 개념은 넓어져, 오늘날처럼 다양한 지역을 찾아가 문화·역사·자연을 경험하는 활동을 뜻하게 됐다.
일반적으로 관광은 ‘아름답고 빛나는 것’, 즉 긍정적이고 즐거운 경험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현대의 관광은 훨씬 더 폭넓고 다양한 모습을 띤다. 세상에 빛이 있으면 반드시 그림자도 존재하듯, 관광도 늘 찬란한 풍경만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바로 이러한 흐름 속에서 등장한 것이 ‘다크투어리즘(Dark Tourism)’이다.
다크투어리즘은 죽음, 재난, 전쟁, 학살,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난 장소를 찾아가 그 의미를 되새기는 관광 형태를 말한다. ‘블랙투어리즘(Black Tourism)’ 혹은 ‘그리프투어리즘(Grief Tourism)’이라고도 불리며, 단순히 충격적인 현장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인류가 겪은 아픔과 교훈을 기억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성찰하는 데 목적이 있다. 세계적으로는 아우슈비츠 수용소,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체르노빌 원전 사고지가 대표적이다.
우리나라에도 의미 있는 다크투어리즘 장소들이 있다. 제주 4·3평화공원은 제주 4·3사건의 진실과 희생자를 기리는 공간이다. 올해 3월부터 10월 31일까지 제주특별자치도와 제주관광협회는 ‘제주 다크투어리즘 모바일 스탬프투어’를 운영하고 있다. 참여자는 4·3사건의 현장과 일제강점기 항일운동의 흔적이 남은 장소를 둘러보며, 제주의 숨겨진 역사와 이야기를 직접 마주할 수 있다.
서울 서대문형무소역사관도 빼놓을 수 없다. 이곳은 일제강점기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수감되어 고문과 옥고를 겪었던 아픈 역사의 현장이다. 현재 역사관에서는 가족과 개인을 대상으로 ‘독립의 길을 따라 걷다’라는 역사탐방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하반기에는 9월 21일부터 10월 12일까지 진행되며, 참가자는 독립운동가들이 걸었던 길을 따라 걸으며 당시의 수감생활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다.
군산은 일제강점기 수탈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는 도시로, 구 군산세관과 뜬다리부두, 조선은행 군산지점 등이 대표적이다. 비옥한 곡창지대이자 군사적 요충지였던 군산은 당시 일본의 수탈이 집중된 주요 거점이었다. 오늘날에는 그 시기에 지어진 일본식 건물과 문화유산을 찾는 방문객이 늘어나면서, 다크투어리즘 관광지로 주목받고 있다.
지난 8월 15일은 광복 80주년이었다. 올해는 주말과 이어진 황금연휴 덕분에 여행 계획을 세운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즐거운 여행 속에서도 잠시 멈춰 광복의 의미를 되새기는 시간은 필요하다. 지금 자유롭게 여행하며 아름다운 것만 보고 누릴 수 있는 것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과 청춘을 바친 선조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다.
관광은 단순한 ‘보기’가 아니라 ‘기억하고 느끼는 것’이기도 하다. 화려한 경관과 즐거운 축제만큼이나, 아픈 역사를 기억하는 여행도 시야를 넓히고 마음을 깊게 만든다. 다음 여행 계획을 세울 때, 빛나는 명소뿐 아니라 역사의 그늘 속에서 피어난 교훈의 장소로 발걸음을 옮겨보는 건 어떨까. 그것이야말로 과거와 현재를 잇고, 미래를 더 나은 길로 이끄는 진정한 관광일 것이다.
▲ 한윤정 관광학 박사
·전주대학교 관광학 박사
'문화 4人4色'은 전북 문화·예술 분야의 네 전문가가 도민에게 문화의 다양한 시각과 깊이 있는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매주 한 차례씩 기고, 생생한 리뷰, 기획기사 등의 형태로 진행됩니다. 본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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