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4人4色 | 한윤정] 브랜드가 된 축제, 도시를 알리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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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5-06-21 16:31:40
수정 2025-06-21 16:31:40
이경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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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윤정 전주대학교 관광학 박사

“대일밴드 있어?” 손을 베인 채 남편에게 묻자, 집에 있던 반창고를 건네준다. “엄마, 포크레인이 앞에 있어서 차가 막혀.” 일상 속 흔한 대화지만, 이 두 문장에는 흥미로운 점이 숨겨져 있다. ‘대일밴드’와 ‘포크레인’은 모두 특정 기업의 브랜드명이라는 사실이다.
‘대일밴드’는 대일화학공업의 반창고 제품명이고, ‘포크레인’은 프랑스 굴삭기 제조사 브랜드다. 이제는 이 두 단어가 제품군 전체를 대신할 정도로 널리 쓰이면서 하나의 일반명사처럼 자리 잡았다. 특정 브랜드가 제품 전체를 대표하게 되는 이런 현상은 브랜드 포지셔닝(Brand Positioning)의 대표적인 사례다.
우리는 수많은 브랜드를 접하지만, 모두가 기억에 남는 것은 아니다. 믹스커피 하면 ‘맥심’, 탄산음료 하면 ‘콜라’를 떠올리듯, 선명한 이미지로 소비자 기억 속에 뿌리내린 브랜드만이 살아남는다.
이 개념은 지역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오늘날 많은 지방자치단체들이 지역 고유의 브랜드를 만들고 알리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펼친다. 그중 하나가 바로 축제다. ‘산천어’ 하면 화천, ‘반딧불’ 하면 무주, ‘지평선’ 하면 김제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이 연상은 단기간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20년 이상 축제를 꾸준히 이어오며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전달한 결과다.
무주는 반딧불축제를 통해 ‘청정 자연’이라는 이미지를 굳히고, 이를 바탕으로 ‘자연특별시 무주’라는 도시 브랜드를 완성했다. 김제는 지평선축제를 통해 국내 유일의 지평선을 부각하고, 농업 중심 도시 정체성을 살려 ‘지평선 생명도시 김제’를 만들어냈다. 진안도 주목할 만하다. 인삼으로 유명한 금산과 풍기 사이에서 ‘홍삼’을 전략적으로 선택해 진안홍삼축제를 열고, ‘홍삼의 고장’이라는 이미지를 확고히 했다. 진안은 국내 유일의 홍삼특구로, 축제를 통해 타 지역과 명확히 차별화된 도시 브랜드를 구축한 사례다.
이처럼 축제는 지역 고유 이미지를 대중에게 효과적으로 각인시키는 강력한 도구다. 그러나 최근에는 축제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고 있다. “이 많은 예산을 들여 축제를 하는 게 과연 실익이 있나?”, “축제 기간에 농산물 판매가 크게 늘지도 않는데, 주민에게 돌아가는 직접적 이익이 얼마나 되나?” 이런 의문은 단순한 푸념이 아니다.
눈앞의 수치나 직접적인 경제 효과만을 기준으로 본다면 축제의 필요성을 의심하는 목소리는 충분히 나올 수 있다. 일부에서는 축제 예산을 줄여 농자재 지원이나 복지 혜택에 쓰는 편이 낫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시각을 조금만 달리해보자. 축제가 없었다면 김제가 다른 농업 도시들 사이에서 주목받을 수 있었을까? 무주가 반딧불의 고장, 청정지역으로 기억될 수 있었을까? 진안이 홍삼의 도시로 자리 잡을 수 있었을까? 물론 축제 기간 중 농산물이나 특산품 판매가 눈에 띄게 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축제의 가치를 폄하하는 이유가 될 순 없다. 브랜드는 단기간의 성과로 완성되지 않는다.
축제는 지역 브랜드 전략의 핵심이자 도시 이미지 형성의 장기 프로젝트다. 경기로 치면 ‘장기전’에 가깝다. 단기적인 경제 효과도 중요하지만, 꾸준한 메시지와 상징을 통해 지역 고유의 이미지를 만들어 가는 데 더 큰 의미가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 이미지는 지역 경제와 문화, 관광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효과를 만든다. ‘지평선=김제’, ‘반딧불=무주’, ‘홍삼=진안’이라는 연상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지역 축제는 단순한 행사를 넘어, 지역의 미래를 여는 열쇠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국 곳곳에서 열리는 축제들은 각 지역의 브랜드를 새롭게 다지고 있다. 단기적 수익보다 장기적 관점으로 축제를 바라봐야 한다. 오랜 시간 쌓아 올린 지역의 브랜드 자산이 헛되지 않도록, 주민의 애정과 관심이 그 무엇보다 소중하다.
▲ 한윤정 관광학 박사
·전주대학교 관광학 박사
'문화 4人4色'은 전북 문화·예술 분야의 네 전문가가 도민에게 문화의 다양한 시각과 깊이 있는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매주 한 차례씩 기고, 생생한 리뷰, 기획기사 등의 형태로 진행됩니다. 본 기고는 본지의 취재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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