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환의 정치워치] 공격적 현실주의로 본 한일관계
국제정치(国際政治)는 비극(悲劇)
국제정치이론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공격적
현실주의라는 개념을 접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공격적 현실주의는 국가 행동에 대한 다섯 가지 가정, 세 가지 패턴, 두 가지 목표로 구성되어 있다. 우선 (1) 국제체제는 무정부 상태이며 (2) 국가는 어느 정도의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고 (3) 다른 국가의
의도를 알 수 없으며 (4) 생존하기 위해 (5) 합리적으로
행동한다는 가정을 한다.
이 다섯 가지 가정 위에, 국가는
세 가지 행동패턴을 보이게 된다. (1) 국가는 서로 두려움을 갖게 되며 (2) 국가는 스스로 생존해야 함을 깨닫고 (3) 생존을 위한 최대한의
힘을 추구하게 된다.
이러한 행동패턴의 목표는 (1) 자신이
속한 지역의 패권국이 되고 (2) 타 지역 패권국의 등장을 적극적으로 방해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국가가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상급기관이 존재하지 않는 국제정치판에서 스스로 강해지는 것이 생존을 위한 합리적
전략인 것이다.
공격적 현실주의가 예측한대로 행동한 대표적인 국가는 미국이다. 미국은 서반구의 지역 패권국이다. 지역의 절대강자이면서 타 지역의
경쟁자를 용인하지 않는다. 미국은 20세기 라이벌로 성장한
빌헬름 독일 제국, 나치 독일, 일본제국, 소련을 역사의 뒤안길로 성실하게 안내했다. 서반구를 지배하면서 유럽이나
아시아를 지배하는 국가의 등장을 철저히 짓밟은 것이다. 20세기 유일한 패권국으로 성장한 미국에게 다시 경쟁국이 등장하게 된다. 2010년 중국이 세계2위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하면서 아시아의 세력전이(power transition) 일어난 것이다. 세계는 미국과 중국이
충돌할 것이라는 예측을 하기 시작했다.이때 일본은 세 가지 외교방침을 세우게 된다. (1) 미일동맹을 강화해 중국을 견제하고 (2) 민주주의/시장경제 질서를 공유하는 국가
들과의 유대를 공고히 하며 (3) 주장하는
외교를 통해 자긍사관에 근거한 역사 재인식을 시도했다.
미국은 아시아를 지배하는 국가의 등장을 꺼리고, 일본은 부상하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일동맹강화와 주장하는 외교를 펼치고 있다. 중국견제는 미국과 일본의 전략적 이해가 일치한 것이다.
이 상황에서 애초에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질서에 편입될 것이라 예상했던 한국은
친중노선을 보이면서 미국과 일본의 두려움을 증폭시켰다.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던 TPP에는 가입하지 않으면서 중국이 주도하는 RCEP에는 참여했으며, 2015년 중국
전승기념일에는 미국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한국 대통령은 중국을 방문했다. 사드 배치 이후 중국의 거센 압박 속에 3불요구(사드를 추가배치 하지 않고, 미국의
MD시스템에 합류하지 않으며, 한미일 군사동맹을 맺지 말라는 중국의 요구)를 한국이
그대로 수용하기도 했다.
미국은 중국과 무역전쟁을 벌이고, 일본은
미국과 함께 중국을 견제하고자 하는데, 중국에 경사하는 것처럼 보이는 한국이 달가울 리 없었을 것이다. 현재의 한일갈등을 공격적 현실주의라는 렌즈로 들여다 보면 미국과 미 국무성 아시아 지부 역할을
하는 일본이, 중국에 접근하는 한국을 견제하려는 의도로 진행된 무역마찰로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한일갈등을 어떻게 풀어야 할까?
공격적 현실주의는 원교근공(遠交近攻) 외교를
한국이 강한 이웃나라인 중국에 편승하는 경우, 결국 한국의 생존가능성은 줄어들게 된다. 중국의 이웃나라들이 중국에
편승해 줄 경우, 중국은 더욱 강해지고 결국 주변국에 더 큰 안보위협으로 성장하게 된다. 멀리 떨어져 있는 미국보다 가까이 있는 중국이 한반도에 대한 영토적 야심이 더 크지 않겠는가?
가로 다섯 줄, 세로
다섯 줄의 빙고 게임에서 승리하고자 하면, 가운데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승부의 열쇠이다. 중국이 어느 정도의 영토적 야심을 갖고 있는지 알 길이 없지만, 중국에게
한반도는 빙고게임의 가운데 자리인 셈이다.
현대 역사에서 한국과 폴란드는 가장 위험한 상태에 노출된 경험이
있는 국가들이다. 한국은 중국, 일본, 러시아와 이웃하고 있으며, 폴란드는 독일, 러시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었다. 한국과 폴란드가 주변 강대국들에
의해 상당기간 지도 위에서 존재
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이제 놀랍지도 않다.
중국에 편승해 스스로의 생존가능성을 줄이는 순진한(naive) 전략이 아닌, 멀리 떨어져 있는 미국을 이용해, 한반도에 대해 영토적 야심을 가질지 모르는 중국을 견제해야 한다. 한국이
미국과 안보이익을 공유하고 전략적 이해를 함께 할 때, 일본은 한국에게 다가올 수 밖에 없다.
평화롭게 사는 것에 만족하면서도 권력 추구를 위한 끊임없는 투쟁에
빠져들 수 밖에 없는 것이 국가의 숙명이다. 국제정치는 비극(悲劇)이다.
김동환 박사 / kdhwan8070@naver.com
일본 리츠메이칸대학 정책과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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