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조 시장 10조 시대...고객자금 '쌈짓돈' 우려는 여전
증권·금융
입력 2024-10-16 15:59:29
수정 2024-10-16 15:59:29
김도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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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제TV=김도하 기자] 상조회사와 같은 선불식 할부거래업체들이 법정 선수금 보전비율 50%조차 지키지 않는 사례가 이어지면서 현행 규제의 한계가 드러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재 상조 등 선불식 할부거래업체들은 할부거래법에 따라 가입자가 매월 내는 선수금의 50%를 은행과 공제조합 등에 의무 예치하도록 돼 있다.
그런데 의무 예치금 50%에 대한 자산 운용 규제가 없는데다 나머지 절반의 선수금도 '깜깜이 쌈짓돈'처럼 쓰이고 있어 대규모 소비자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상조회사와 가입자의 거래가 사실상 금융사와 같은데 금융사에 준하는 감독은 전혀 이뤄지지 않아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수신 기능이 있는 상조계약을 유사 금융상품으로 보고 선수금 보호를 위한 별도관리 규제 강화와 함께 예금보험공사 등 공적 기구가 보상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선수금 50% 은행 예치 위반 상조회사 여전
16일 더불어민주당 민병덕 의원실이 공정위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들어 9월말까지 선수금 보전 의무를 위반해 공정위 제재 조치를 받은 상조회사는 4곳인 것으로 확인됐다.
1개 업체가 고발 조치 됐고 1곳은 시정명령을 받았다. 나머지 2개사는 경고 조치됐다. 지난 해에는 3개 업체가 제재를 받았다. 2022년 22건에 달하던 상조회사에 대한 제재가 선불식 할부거래업자 등록 요건이 강화되면서 2020년 7건으로 대폭 줄었으나 이후에도 별도관리 의무를 위반하는 사례가 지속해서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상조회사가 경영위기를 맞게 되면 티메프 사태와 같이 고객 자금을 유용할 가능성이 더욱 높아진다. 중견 상조업체였던 한강라이프는 지난 2021년 경영위기를 맞자 가입자들의 선수금을 돌려주지 못하면서 피해규모가 54억원에 달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선불식 상조계약이 법제화된 2010년부터 최근까지 등록된 상조업체를 전수 조사한 결과, 등록이 취소된 업체 중에서 취소 직전 별도관리를 위반한 업체의 비중이 46%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KDI는 "위기를 맞은 업체의 절반이 별도관리 의무를 위반했다"며 "이들 업체의 별도관리 비율은 평균 37%에 불과했는데, 이는 어떤 업체가 실패해 등록이 취소되면 고객자금의 3분의 2가 상실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설명했다.
◇상조 가입자 900만·선수금 규모 10조 육박
문제는 상조업체들의 규정 위반이 끊이지 않고 이에 대한 감독도 미비한 상황에서도 상조 시장 규모는 꾸준히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3월 말 기준 등록된 선불식 할부거래업체 수는 78개다. 상조 업체는 71개, 여행 업체는 7개로 파악됐다.
이들 업계가 가입자들로부터 받은 선수금 규모는 1년만에 1조원 넘게 늘어 지난 3월 기준 9조4,486억원을 기록했다. 가입자 수는 892만명으로, 올해 기준 전 국민의 17%가량에 해당한다. 국민 6명 중 1명이 상조업체를 이용하고 있는 셈이다. 국내 상조회사 중 선수금 '1조 클럽'만 3개사에 달하는 등 규모를 키우고 있다.
상조회사들이 받는 선수금은 사실상 수신으로 유사 금융업으로 볼 수 있지만, 은행이나 보험사 등과 달리 금융 규제를 받지 않는다. 공정위 소관에 해당하기 때문에 10조 규모에 달하는 선수금을 쥐고 있어도 금융당국의 건전성 규제 등에서 자유롭다. 선수금의 절반만 은행이나 공제조합 등에 예치하면 나머지는 사업 자금처럼 사용할 수 있다. 예치금도 운용 방식에 대한 규제가 없기 때문에 사실상 관리·감독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공정위 역시 10조원에 달하는 상조 선수금이 상조회사들의 쌈짓돈으로 유용될 가능성을 우려하는 모양새다.
공정위 관계자는 “티메프 사태 이후 '그림자 금융' 문제가 될 수 있는 것들을 미리 파악하기 위해 상조 등 선불식 할부거래업자들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진행 중"이라며 "선불식 할부거래업자들이 자산운용과 관련해 내부 통제를 어떻게 하고 있는지, 보유 자산을 어떻게 투자하고 있는지 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선수금 별도관리 비율 높이고 상조 예보 대상에 포함해야"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10조원에 달하는 선수금 보호를 위한 규제 강화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황순주 KDI 연구위원은 선수금 별도관리 의무 비율을 높이고 예금보험공사 등 공적 기구가 보상하는 '사후 보호책'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황 연구위원은 별도관리 의무 비율을 현행 50%에서 70%까지 높이는 방안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의 여러 주와 영국에서는 선수금의 100%를 별도 관리하도록 규제하고 있다"며 "인구 고령화로 인해 상조 산업이 커지고 있고, 대규모는 아니더라도 상조업체가 고객자금에 손 대는 피해 사례가 계속 발생하면서 금융산업처럼 규제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아울러 예금보험공사를 활용하는 방안도 내놨다. 황 연구위원은 "예금보험공사가 은행 예금이나 증권사 예탁금을 보호하는 것처럼 선수금을 보호하게 되면 업체가 파산하더라도 공사가 고객 1인당 일정 한도까지 보상할 수 있다"고 제언했다.
황 연구위원은 또 현행 의무 보전되는 선수금 50%에 대한 보호도 강화해야 한다고 짚어냈다. 그는 "보전을 의무화한 선수금 50%에 대해서도 안전자산으로만 운용해야한다는 규제가 없어 고객자금이 사각지대에 있다"며 "의무 보전금에 대해선 자산운용 규제가 보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치권에서도 유사 금융업을 하는 상조업계에 대해 금융사에 준하는 규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민병덕 의원은 "가입자가 900만명, 선수금 규모가 10조원에 달하는 상조는 일반적으로 보험 유사 상품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할부거래법 적용 상품으로 금융당국의 규제 사각지대"라며 "금융당국의 전문성 있는 관리·감독이 없는 상태에서 선수금 중 절반은 쌈짓돈으로 쓰이고 있어 머지포인트, 티메프 등과 같은 사태가 반복되지 말란 법이 없지않냐"고 꼬집었다. /itsdoha.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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