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조 69개사 특수관계인과 자금 거래..."선수금 80% 별도 예치해야"

금융·증권 입력 2025-01-18 08:00:07 수정 2025-01-18 08:00:07 김도하 기자 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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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조 선수금 '깜깜이 쌈짓돈' 전락 우려…소비자 보호 방안 논의
美·英, 상조 선수금 사후 보상제도 시행…선수금 100% 수준 보호
"우리나라도 예금보험공사 활용해 상조 선수금 직·간접 보호해야"
업계 "상조 서비스 특성상 선수금 운용 불가피"
공정위 "상조업계 도덕적 해이 방지 필요…조만간 입법 추진"

1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900만 상조 가입자 보호를 위한 국회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서울경제TV]
[서울경제TV=김도하 기자]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면서 급성장한 국내 상조 시장이 법 위반과 규제 사각지대를 활용한 도덕적 해이가 만연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상조회사가 미리 돈을 받고 나중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거래 특성을 이용해 고객 돈인 선수금을 '깜깜이 쌈짓돈'처럼 쓰는 사례가 이어지면서, 소비자 보호가 허술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더불어민주당 민병덕 의원실과 서울경제TV는 지난 15일 국회에서 '900만 상조 가입자 보호를 위한 국회 토론회'를 열고 상조 선수금 유용 방지와 사후 고객 보호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를 가졌다.

민 의원은 "10조에 달하는 상조 시장이 더욱 활성화되려면 이용자가 불안하지 않아야 한다"며 "시장이 더욱 투명해질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논의하고 궁극적으로 제도화하는 방안을 협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신동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1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900만 상조 가입자 보호를 위한 국회 토론회'에서 기조발제를 하고 있다. [사진=서울경제TV]

◇ '초고령화'에 상조 시장 급성장…선수금 '사금고화' 심화

정신동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날 첫 번째 발제를 통해 상조 선수금 유용 실태를 짚은 뒤 의무 예치금에 대한 자산 운용 규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상조회사 등 선불식 할부거래업체는 지난 2018년 3월말 기준 154개에서 지난해 78개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이는 지난 2019년부터 시행된 개정 할부거래법에 따라 자본금 의무기준을 상향했기 때문이다. 

가입자와 선수금 규모는 같은 기간 두 배 수준으로 증가했다. 

지난해 3월말 기준 상조 서비스 가입자는 892만명으로 2018년(516만명) 대비 376만명 늘었다. 선수금도 같은 기간 무려 4조6,758억원이 증가해, 지난해 3월말 기준으로 9조4,486억원이 쌓였다. 

올해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는 등 고령화가 가속화하며 향후 사망자 수는 2022년 37만명에서 2065년 75만명으로 102% 증가할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하지만 상조업계에서 선수금 미반환에 따른 피해가 최근까지 거의 매년 발생하고, 선수금 절반을 별도관리하는 의무를 위반하는 사례가 이어지면서 소비자 피해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 교수는 최근 3년간 폐업한 상조회사가 8곳에 달하는 가운데 소비자가 이들 회사로부터 돌려받지 못한 돈이 300억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할부거래법에 따르면 상조회사 등 선불식 할부거래업자는 선수금 50%를 공제조합이나 은행 등에 예치하고, 폐업 등으로 영업을 하지 못할 경우 보전금을 소비자에게 돌려줘야 한다. 

또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2010년부터 지난해 4월까지 법 위반이 확인돼 등록이 취소된 상조업체 52곳 중 절반에 해당하는 24곳이 선수금 예치 기준을 지키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일부 상조 회사는 가입자의 선수금을 빼돌려 개인 사업 자금으로 유용하거나 사채 자금을 갚는데 사용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티메프' 미정산 사태와 유사한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확산하고 있다.

정 교수는 "실제 외부감사법에 따라 회계 감사 보고서 공시를 해야하는 업체 74개사를 살펴보면 69개 회사가 특수관계인과 거래 관계가 있는 것으로 파악된 건 객관적 팩트"라고 지적했다. 상조 업체에 유의미한 영향력이나 공동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는 개인이나 회사가 특수관계인으로 엮여있다는 설명이다.

정 교수는 상조회사의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기 위해 각종 금지행위 규정을 마련해 사업자의 불건전한 자산운용을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수관계인 간 대여나 투자로 인한 자금 은닉과 재정 악화를 막기 위해 특수관계인에 대한 경제적 이익이나 기회 제공 등을 제한하는 규정을 도입하자는 제안이다. 이와 함께 임직원에 대한 자금 대여 등 자산운용의 건전성을 크게 해칠 우려가 있는 행위들도 금지행위로 규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책임 경영을 유도하기 위해 내부통제 장치를 마련하는 것도 하나의 사전 예방책이 될 수 있다고 제언했다. 자산 관리에 문제가 생기면 임원이 연대 책임을 지도록 하는 특별 규정과 피해 보상을 해태하는 행위에 대해선 벌칙 규정을 제정하는 방안을 내놨다.


황순주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이 1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900만 상조 가입자 보호를 위한 국회 토론회'에서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서울경제TV]

◇ 英, 소비자 피해 급증에 금융규제 적용…美, 선수금 80~100% 보전

황순주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은 해외 상조 소비자 보호제도와 우리의 제도화 방안에 대해 발제에 나섰다.

영국은 고객이 맡긴 상조 선수금 중 필요자금의 100%를 신탁과 지급보증보험 방식으로 별도관리하도록 하고 있다. 여기에 선수금의 0.5%를 자기 자본으로 대출해서 사전 건전성을 유지하도록 하는 건전성 규제와 영국의 예금보험기구를 이용한 사후 보상제도까지 3중 보호체계가 작동하고 있다.

영국은 2022년부터 상조산업이 급성장하면서 선수금 미반환 등 소비자 피해가 늘자 상조계약을 금융서비스로 인정하고 금융당국이 공식적으로 규제하기 시작했다. 영국 금융당국인 금융행위감독청(FCA)은 상조업체에 대해 인허가·건전성·금융소비자 보호 등 여러 금융규제를 하고 있다.

미국은 각 주(州) 정부가 상조산업에 대한 규제 권한을 갖고 있어 주별로 소비자 보호 제도가 다르지만, 대부분 선수금의 80~100%를 별도관리하고 있다.

황 선임연구위원은 "별도관리 비율이 파악된 30개 주 중에서 27개 주는 상조서비스에 대한 별도관리 의무비율이 80~100%이며, 이 중 17개 주는 선수금 100%를 보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은 사후 보상 제도도 시행하고 있다. 10개 주 이상은 선수금을 직접보호, 모든 주는 연방예금보험공사(FDIC)가 1인당 25만달러까지 보호하는 간접보호가 적용되고 있다.

일본은 선수금의 50%만 별도 관리하고 공적 보상제도도 없지만, 순자산과 수익성, 유동성 등 건전성을 사전에 유지하도록 하는 규제가 있어 우리나라보다는 비교적 소비자 보호 수준이 높다. 건전성 규제와 50% 별도 관리 규제를 위반할 경우에는 신규 상조계약 판매를 금지하는 조치도 있지만, 일본의 상조 관리 체계 역시 우리나라와 같이 소비자 피해 방지에는 한계가 있는 실정이다.

황 선임연구위원은 영국 제도를 고려한 방안을 1안으로 제안했다. 예금보험공사가 직접보호하고 별도예치 의무 비율은 80% 수준으로 상향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상조업체는 예보에 '부보회사'로 등록해 예보료를 납부하고, 업체가 실패할 경우 예보는 일정 한도로 소비자 선수금을 직접 보상해주는 방안이다. 예보가 직접 사후 보호를 하게 되면 사전 별도 예치의무 비율을 80% 정도만 상향해도 보호 효과가 상당히 클 것이란 분석이다. 다만 예금자보호법을 개정해 비금융회사인 상조업체에 대한 보호 체계를 새롭게 마련해야 하는 등 근본적인 제도 변화가 필요하다.

황 선임연구위원은 미국 제도를 고려해 선수금 100%를 상조업체를 거치지 않고 즉시 고객 명의의 은행계좌에 별도예치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그는 "네이버페이 하나은행 통장과 유사한 방식"이라며 "네이버페이가 고객으로부터 받은 선불 충전금을 네이버페이 법인 계좌에 넣지 않고 바로 고객 명의의 하나은행 통장으로 넣는 방식으로 단기적으로는 혁신 금융 서비스 지정으로 가능하지만, 장기적으로 제도화하려면 금융실명법 개정이 필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별도관리 의무 비율을 100%로 높이게 되면 상조업체의 부담이 커질 수 있고, 현재 비유동자산에 투자된 자금을 일시에 현금화하는 데 어려움이 있어 충분한 유예기간이 필요하다고 부연했다.

황 선임연구위원은 예보가 별도예치 선수금은 간접보호하고, 나머지 선수금은 직접보호 하는 '하이브리드형' 방안도 제시했다. 

황 선임연구위원은 "업체가 은행 별도예치 여부나 금액과 상관 없이 예보가 선수금 전액을 보호한다는 높은 보호 효과가 있다"면서도 "예보법 개정이 필요하고 사실상 별도관리 의무를 100%로 높이는 셈이기 때문에 업체 입장에선 부담이 있다"고 말했다.


1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900만 상조 가입자 보호를 위한 국회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기조발제를 듣고 있다. [사진=서울경제TV]

◇ "자산운용 규제 필요" VS "선수금 운용해 상조 메리트 제공"

이어진 토론에서는 상조산업의 진흥과 규제를 함께 이끌어낼 수 있는 '연착륙 방안'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토론에 참여한 업계와 학계, 정부 관계들은 모두 소비자 보호 취지에는 공감했지만, 규제 수준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렸다. 

전문가들은 상조 소비자 보호의 핵심은 선수금 보전이라고 강조하는 한편 규제는 추가 논의 등을 통해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현행 체계에서는 선수금 의무예치 비율 조정이나 예치 외 선수금에 대한 자산운용 규제가 현실적이라는 주장이다.

권세훈 상명대 교수는 선수금 의무 보전 비율 상향과 회계정보 유용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방안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정민 한국금융소비자보호재단 연구위원은 소비자 보호 취지를 살리기 위해선 근본적으로 상조업과 관련한 당국의 업무 기능 조정이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이 연구위원은 "상조 서비스는 공정위 소관일 수 있지만, 상조금과 상조보험, 선수금과 관련해서는 금융상품의 특성이 있으므로 금융당국의 관리 감독이 필요해보인다"고 말했다.

업계는 상조 선수금에 대한 규제 논의가 소비자 보호라는 명분에 치우쳐 업계 현실에 적용하기 어렵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상조 계약은 서비스 이용 시기와 인플레이션 등에 관계없이 약정한 가격과 서비스를 그대로 제공받을 수 있는 구조인데, 이를 위해 투자활동에 기반한 상조회사의 선수금 운용은 불가피하다는 게 업계 측 입장이다.

김재탁 대한상조산업협회 전문위원은 "만일 선수금의 100%를 예치한다면 선불식 할부거래에 기반한 상조상품과 상조회사는 존재하기 어렵다"며 "추가 보증을 위한 수수료 부담은 결국 상조상품 가격상승으로 이어져 소비자에게 전가되거나 상조회사의 유동 자금 부족으로 이어져 도산사태까지 우려된다"고 주장했다.

일부 상조회사의 일탈을 업계 전반의 문제로 치부해 '제2의 티메프'로 위험성을 부각해선 안된다고도 반발했다. 그러면서 상조산업에 대한 규제 논의에 앞서 정부와 국회가 상조산업에 대해 방향성을 제시해야 한다고 의견을 피력했다.

김현용 한국상조산업협회 사무총장은 "상조 소비자 보호를 위한 실질적인 규제도 필요하지만 상조산업의 진흥과 발전을 위한 정책도 필요하다"면서 "먼저 기본법과 진흥법을 만들고 곁가지인 규제 논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1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900만 상조 가입자 보호를 위한 국회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서울경제TV]

◇ 정부, 상조업계 '도덕적 해이' 방지 필요성 공감

선불식 할부거래업자에 대한 관리당국인 공정위는 상조업계의 불건전한 자산운용이나 도덕적 해이를 방지할 필요가 있다는 데에 전반적으로 공감하고 있다고 밝혔다.

나윤경 공정위 특수거래정책과 사무관은 "2010년 전후보다는 상황이 나아졌지만 선불식 할부거래라는 특성과 거대해진 시장규모에 따른 리스크는 여전히 존재한다고 보고 있다"며 "전문가 자문단 회의 등을 통해서 내부적으로 제도 개선안을 검토하고 있으며 조만간 입법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공정위는 상조업체들의 회계정보 공시 기능도 대폭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금융위원회는 유사 수신 행위를 하는 상조업계에 대해 금융 규제 수준의 관리감독 강화가 필요하다는 데 동의했지만, 금융당국으로의 업무 기능 조정에는 반대했다.

김수호 금융위원회 금융소비자정책과장은 "금융당국은 금융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해서 안전하게 자산을 운용할 수 있도록 관리감독하고 있다"며 "금융당국 입장에서는 상조 선수금을 50%만 보전하도록 한 규정은 너무나 관대한 기준이고, 100%도 부족하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김 과장은 "선불 충전금과 같은 경우에는 100% 외부 예치를 하고, 외부 예치를 한 금액에 대해서도 부동산 투자 등은 할 수 없고 국공채나 은행, MMF 등 안전자산에만 투자하도록 하고 있으며, 보험사에 대해선 이보다 더 강력한 자산운용 규제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상조 선수금 관리감독 업무를 금융당국으로 이관하는 방안에 대해선 상조회사가 예금보험료를 낸다고 해도 충당이 안될 경우를 우려했다. 김  과장은 "감독에는 인력 등 비용이 따르고 상조에서 사고가 날 경우 재정 적자가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며 "금융당국이 관여하기에는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itsdoha.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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