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4人4色 | 김춘학] 청년이 머무는 사회, 관계가 살아 있는 대한민국

전국 입력 2025-11-09 06:54:59 수정 2025-11-09 06:59:56 이경선 기자 0개

페이스북 공유하기 X 공유하기 카카오톡 공유하기 네이버 블로그 공유하기

김춘학 다이룸협동조합 이사장

김춘학 다이룸협동조합 이사장

최근 여러 워크숍과 포럼에서 ‘인구소멸’을 주제로 토론했다. 그런데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늘 질문이 생긴다. 정말 사라지는 건 ‘사람’일까, 아니면 사람 사이의 ‘관계’일까. 지금 우리 사회의 인구 문제는 단순히 ‘숫자의 감소’가 아니다. “사람이 왜 떠나는가?”보다 “사람이 왜 머물고 싶은가?”를 물어야 한다.

청년이 떠나는 이유는 단지 일자리의 부족이 아니라, 함께할 동료, 도전할 무대, 실패 후 다시 일어설 관계망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결국, 인구 문제는 경제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구조의 문제다.

수년간 지자체마다 청년정책과 인구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정작 청년들은 “지원은 있는데 방향이 없다”고 말한다. 이는 정책의 부재가 아니라 정책 철학의 부재에서 비롯된다. 이제는 ‘인구소멸’이 아니라 ‘인구 대응’, ‘인구 관리’라는 적극적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그 출발점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상상력이다. 나는 그 답을 제주 세화마을에서 보았다. 제주시 구좌읍의 작은 어촌 마을 세화는 한때 관광객보다 빈집이 더 많던 곳이었다.

그러나 관광두레 청년 PD를 중심으로 지역의 젊은이들과 마을회 어른들이 머리를 맞댄 결과 버려진 여관을 북카페로, 창고를 작가들의 작업실로 바꾸며 ‘관광객이 머무는 곳’이 아니라 ‘사람이 살아가는 마을’을 만들어냈다. 

청년의 창의력과 실행 역량이 마을 어른들의 지지를 만나 꽃을 피웠고, 그 결과 세화마을은 2023년 UN세계관광기구(UNWTO) 가 선정한 ‘세계 최우수 관광마을(Best Tourism Village)’에 이름을 올렸다. 세화의 변화는 단순한 관광 성공 사례가 아니다. 관계가 끊기지 않으면, 인구는 줄어도 마을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정책보다 신뢰, 행정보다 관계가 한 마을의 지속가능성을 지탱하는 것이다. 청년이 떠나는 사회에는 일자리가 없지만, 청년이 머무는 사회에는 반드시 어른이 있다. 그 어른은 나이를 뜻하지 않는다. 청년의 시행착오를 지켜보고, 경험을 나누며, 함께 살아가는 관계의 어른, 공동체의 어른이다.

지금의 지역에는 이런 어른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청년은 많지만, 함께 성장할 어른이 없는 사회. 이것이 인구 감소보다 더 근본적인 위기다. 청년은 우리 사회의 가장 큰 혁신 인자다. 그들은 지역 문제를 새롭게 해석하고, 기존 질서에 갇히지 않은 방식으로 실험하며, 빠르게 실행할 수 있는 창의성과 실행력을 지녔다. 이 가능성을 지역과 연결하는 일이 앞으로의 인구 대응 정책의 성패를 가를 것이다.

우리가 인구 문제를 논할 때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경제적 접근에만 머물러선 안 된다. 일자리는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이제는 ‘어떻게 살 것인가’, 삶의 방식과 관계의 구조를 새롭게 짜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지속가능한 사회는 단순히 사람을 붙잡는 곳이 아니라, 사람이 함께 살아갈 이유를 만들어가는 곳이다. 청년이 머무는 사회, 관계가 살아 있는 대한민국. 그곳에는 언제나 어른이 있고, 미래가 있다.

▲ 김춘학 로컬리스트
·다이룸협동조합 이사장
·다이룸문화예술교육연구소 대표
·군산시 정책자문단 위원
·다문화사회전문가 
·문화기획자

'문화 4人4色'은 전북 문화·예술 분야의 네 전문가가 도민에게 문화의 다양한 시각과 깊이 있는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매주 한 차례씩 기고, 생생한 리뷰, 기획기사 등의 형태로 진행됩니다. 본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서울경제TV(www.sentv.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자 전체보기

기자 프로필 사진

이경선 기자

doksa@sedaily.com 02) 3153-2610

이 기자의 기사를 구독하시려면 구독 신청 버튼을 눌러주세요.

페이스북 공유하기 X 공유하기 카카오톡 공유하기 네이버 블로그 공유하기

댓글

(0)
※ 댓글 작성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책임을 담아 깨끗한 댓글 환경에 동참에 주세요. 0 / 300

주요뉴스

공지사항

더보기 +

이 시각 이후 방송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