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4人4色 | 김춘학] 서로에게 너무 당연한 태도가 불러오는 갈등

전국 입력 2025-08-02 17:21:58 수정 2025-08-02 17:21:58 이경선 기자 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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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학 로컬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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찜통더위를 피해 시원한 냉면집으로 향했다. 하지만 식당 안은 생각만큼 시원하지 않았다. 에어컨은 켜있지만, 눅눅해진 공기는 쉽게 가시지 않았고, 먼저 온 손님들의 표정도 하나같이 지쳐 있었다. 필자가 주문을 마칠 즈음, 50대 중반의 부부가 식당 문을 열고 들어섰고, 20대 초반쯤 돼 보이는 직원이 다가가 말했다.

“지금 자리가 조금 어수선해서요, 저쪽 창가 자리로 안내해 드릴게요.” 땀을 닦던 남성 손님은 미간을 찌푸리며, “예전 같으면 손님 오면 어서 오시라고 인사부터 했을 텐데, 요즘엔 ...” 직원은 순간 멈칫하더니, “죄송합니다. 안내를 먼저 드린 건데요…”라며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 장면에서 직원은 ‘배려’했다고 생각했고, 손님은 ‘예의가 없다’고 느낀 듯했다. 손님은 ‘기본적인 인사’를 기대했고, 직원은 그것이 ‘불필요한 격식’이라 여겼다. 무더위 속에서 예민해진 감정은 서로의 말투와 시선에 더 크게 반응했고, 작은 어긋남은 금세 불편함으로 번졌다.

이처럼 갈등은 큰 사건보다 사소한 말 한마디, 표정 하나, 말투와 눈빛에서 시작된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서로가 ‘어떻게 행동해야 한다’고 기대하는 태도가 다를 때 갈등이 생긴다.

기성세대는 ‘예의’를 중요하게 여긴다. ‘인사’, ‘존댓말’, ‘기본 예절’을 통해 상대를 존중한다고 믿는다. 반면 청년세대는 ‘존중’을 다르게 정의한다. ‘억압하지 않기’, ‘경계를 지켜주기’, ‘들으려는 태도’를 중시한다. 

우리는 자주 “내가 너라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텐데”라는 말을 한다. 하지만 그 말 속에는 나의 경험을 기준 삼아 타인을 판단하는 태도가 숨어 있다. 각자가 살아온 시대와 환경, 관계 속에서 익힌 언어와 몸짓은 결코 같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너무 쉽게 상대방에게 “왜 그렇게 말해?”, “왜 그렇게 행동해?”라고 묻는다. 그 물음은 진짜 질문이기보다는, 내가 기대한 방식에 맞지 않는다는 실망의 표현이 된다.

청년들은 “왜 나를 믿지 않느냐”고 말하고, 기성세대는 “왜 나를 무시하느냐”고 말한다. 서로를 향한 기대는 어쩌면 애정의 다른 표현이지만, 그 기대가 일방적일 때, 그것은 서운함이 되고, 오해가 되고, 때로는 분노로 바뀐다. 세대 갈등은 단지 나이 차이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다양한 삶의 배경이 존중되지 않을 때 발생한다.

기성세대는 절약과 인내, 책임의 미덕 속에서 살아왔다. 청년세대는 불확실한 미래와 불평등한 현실 속에서 자신만의 생존 방식을 찾아야 한다. 누군가는 회사에 충성하며 버티는 것이 미덕이라 배웠고, 또 다른 누군가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일정한 거리를 두고 표현하는 법을 익혔다.

이처럼 서로 다른 생존의 방식은 각자의 ‘당연한 태도’를 만든다. 그리고 그 당연함은 종종 타인을 오해하게 만든다. 이 글을 통해 단순히 세대 갈등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우리 안의 세대, 계층, 경험, 말투, 기대, 감정의 다름을 존중하는 일상의 태도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우리는 종종 ‘다양성’을 정책이나 선언에서 찾지만, 사실 가장 중요한 다양성은 식당, 버스, 가정, 회의실 같은 일상 속 장면들에 숨어 있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게 기대되는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그 기대가 ‘이래야만 한다’는 틀에 갇히는 순간, 관계는 멈춰버린다.

‘다르게 반응할 수도 있다’는 여지를 남기는 것. 그것이 존중이고, 그것이 곧 다양성이다. 다양한 삶의 주체를 잇는 다리는 거창한 이해나 완벽한 공감이 아니라, 단지 멈추어 들어주는 아주 작은 여백에서 시작된다. 또한, “그땐 어땠나요?”, “왜 그렇게 느끼셨어요?” 이 한마디가 다름을 틀림이 아닌 이야기로 만들고, 기대를 이해로 바꾸는 문이 될 수 있다.

▲ 김춘학 로컬리스트
·다이룸협동조합 이사장
·다이룸문화예술교육연구소 대표
·군산시 정책자문단 위원
·다문화사회전문가 
·문화기획자

'문화 4人4色'은 전북 문화·예술 분야의 네 전문가가 도민에게 문화의 다양한 시각과 깊이 있는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매주 한 차례씩 기고, 생생한 리뷰, 기획기사 등의 형태로 진행됩니다. 본 기고는 본지의 취재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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