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4人4色 | 김춘학] 디지털 시대, 손편지가 다시 지역을 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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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5-08-30 23:38:42
수정 2025-08-30 23:38:42
이경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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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학 로컬리스트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개의 메시지를 주고받는다. 스마트폰 알림은 끊임없이 울리고, 메일함은 늘 새 소식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그 많은 메시지 가운데 진짜 마음에 남는 것은 몇 개나 될까. 빠른 전달, 짧은 응답에 익숙한 세상에서 ‘느리게 전하는 글’은 오히려 잊혀져 가고 있다. 그렇기에 요즘 다시 주목받는 것이 손편지다. 몇 줄의 손글씨가 디지털 시대의 피로를 녹이고, 차갑던 관계의 온도를 되살린다.
군산은 이 손편지를 도시 재생과 연결해 특별한 축제로 만들어냈다. 바로 ‘군산우체통거리 손편지축제’다. 올해로 8회를 맞이한 이 축제는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다. 군산의 구도심, 특히 개복동과 신창동 일대(거석길과 중정길이 교차하는 곳)에서 전국에 방치된 폐우체통을 수거하고 닦은 뒤 지역 작가들이 그림을 그리고 설치해 만든 곳으로, 쇠퇴한 골목길에 숨을 불어넣고, 주민이 주체가 되어 문화와 경제를 잇는 살아있는 사례다. 이 자산을 바탕으로 ‘우체통거리’라는 테마가 형성되었고, 주민들은 매년 손편지축제를 기획하고 운영해왔다.
행사의 중심은 ‘느림의 체험’이다. 빠른 소통의 시대에 일부러 느림을 선택하는 경험이다. 직접 편지를 쓰고, 우체통 모형 저금통을 만들며, 아이와 부모가 함께 미니 레고를 조립한다. 젊은 세대에게는 낯선 추억을, 어른 세대에게는 잊었던 감성을 되살리는 프로그램이다. SNS 속 짧은 글이 아닌, 오롯이 글씨와 사연이 담긴 한 장의 편지는 세대와 세대를 잇는 매개가 된다.
손편지축제의 의미는 단순한 향수에 그치지 않는다. 디지털 속도가 지배하는 시대일수록 차별화된 문화가 경쟁력이 된다. 빠른 것보다 느린 것이, 편리함보다 진정성이 오히려 사람들을 끌어당긴다. 군산의 손편지축제가 보여주는 것은 ‘문화가 곧 경제’라는 사실이다. 문화가 일자리를 만들고, 축제가 도시재생의 마중물이 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
군산우체통거리 손편지축제는 오는 9월 본행사를 앞두고 이미 6월부터 다양한 무료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축제발대식, 손편지 쓰기 대회, 우체통 그리기 대회, 환경 정비 등으로 이어지는 일정은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라 마을 공동체의 삶을 다시 짜는 과정이다. 주민과 관광객이 한자리에 모여 ‘함께 쓰는 편지’는 결국 도시의 미래를 함께 그리는 시간이 된다.
디지털 시대에도 손편지가 여전히 힘을 가지는 이유는 단순하다. 글씨 한 자 한 자에 사람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서툰 글씨는 마음을 더 선명하게 드러내고, 기다림의 시간은 관계를 더 깊게 만든다. 손편지 한 장이 사람의 마음을 바꾸듯, 작은 축제 하나가 도시의 미래를 바꿀 수 있다. 군산이 보여주는 길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 김춘학 로컬리스트
·다이룸협동조합 이사장
·다이룸문화예술교육연구소 대표
·군산시 정책자문단 위원
·다문화사회전문가
·문화기획자
'문화 4人4色'은 전북 문화·예술 분야의 네 전문가가 도민에게 문화의 다양한 시각과 깊이 있는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매주 한 차례씩 기고, 생생한 리뷰, 기획기사 등의 형태로 진행됩니다. 본 기고는 본지의 취재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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