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4人4色 | 김춘학] 잊히지 않게, 지워지지 않게: AI 시대의 문화다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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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5-05-10 21:55:36
수정 2025-05-10 21:55:36
이경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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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학 다이룸협동조합 이사장
요즘 SNS를 달군 ‘지브리풍 사진’ 한 장은, 그 자체로 환상적이면서도 향수를 자극하는 풍경이었다. 그러나 그 이미지는 실재하지 않는다. AI가 만들어낸 조합의 산물일 뿐이다. 많은 이들이 감탄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조용히 물었다. “우리가 감동한 것은 진짜일까.”
기술의 발전은 언제나 감탄과 경계를 동시에 불러온다. 특히 AI 기술은 누구나 손쉽게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시대를 열었지만, 기존 창작자의 생존을 위협하고 소수의 목소리를 배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문화다양성의 관점으로 깊이 들여다봐야 할 문제다.
AI는 데이터에 기반한다. 다시 말해, 지금까지 많이 만들어지고 소비된 콘텐츠가 기준이 된다는 뜻이다. 다수의 선호가 곧 기준이 되고, 소수의 감각이나 주변인의 언어는 ‘비효율적’이거나 ‘비주류’라는 이유로 쉽게 삭제된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점점 더 비슷한 이미지, 비슷한 문장, 비슷한 음악을 마주하게 된다.
일본의 애니메이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AI는 생명을 모른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생명이란 단지 호흡하거나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관계 속에서 깃드는 감정, 무의식 속에서 흘러나오는 기억, 살아온 흔적이 스민 한 장면 같은 것들이다. 미야자키는 그런 것을 그려온 작가였다. 우리가 지금 감탄하는 ‘지브리풍’은, 사실 그의 오랜 손의 노동과 정서가 빚어낸 문화다양성의 결정체였다.
그렇다고 기술을 멀리하거나 완전히 배제하자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질문이다. “이 기술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이 시스템은 어떤 목소리를 담고 있고, 무엇을 배제하고 있는가?” 우리가 기술을 활용할 때, 사람의 감각과 감정이 중심에 서야 한다. 문화다양성이란 바로 그 중심을 잃지 않기 위한 태도다.
최근 지역에서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낭독봉사단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지역의 뉴스, 문학, 정책 자료를 직접 낭독해 음성으로 제공한다. AI 낭독 기술도 널리 보급됐지만, 사용자들은 말한다. “기계 목소리는 감정이 없고, 문맥을 놓친다”고. 낭독봉사단의 활동은 단지 정보를 전달하는 일을 넘어, 기술이 놓치고 있는 사람의 감정과 맥락, 그리고 지역 고유의 정서를 지켜내는 문화다양성 실천의 현장이다.
기술의 발전은 우리에게 편리함을 가져다준다. 하지만 편리한 기술이 우리 삶의 모든 것을 담아낼 수는 없다. 마을의 소리, 낡은 사진 한 장에 담긴 이야기, 골목을 걷다 마주치는 낯선 이의 말투까지. 이런 작은 것들이 지역을 지역답게, 사람을 사람답게 만든다. 문화다양성이란 결국 이 ‘작은 차이’를 존중하고 지켜내는 일이다. 기술이 확장해주는 가능성 위에 사람의 감각이 더해질 때, 비로소 우리는 더 풍요로운 사람다운 삶의 미래를 상상할 수 있다.
이 때문에 AI 시대에도 우리는 여전히 ‘사람’을 중심에 두어야 한다.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기술은 모두를 위한 것이어야 하며, 그 안에는 낯선 존재, 작은 목소리, 익숙하지 않은 방식도 함께 자리해야 한다. 문화다양성은 거창한 개념이 아니다. 기술과 사회, 정책과 일상의 경계 위에서 ‘누구의 이야기가 지워지고 있는가’를 끊임없이 되묻는 태도다. 다가오는 5월 21일 ‘세계 문화다양성의 날’을 맞아, 우리 주변의 목소리들을 다시금 돌아보자.
▲ 김춘학 다이룸협동조합 이사장
·다이룸협동조합 이사장
·다이룸문화예술교육연구소 대표
·군산시 정책자문단 위원
·다문화사회전문가
·문화기획자
'문화 4人4色'은 전북 문화·예술 분야의 네 전문가가 도민에게 문화의 다양한 시각과 깊이 있는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매주 한 차례씩 기고, 생생한 리뷰, 기획기사 등의 형태로 진행됩니다. 본 기고는 본지의 취재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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