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모두가 똑똑해져야 하는 비극
[서울경제TV=지혜진기자] “여기 조합장 보통이 아니래요.”
재정비 사업장을 취재하다 보면 종종 듣는 이야기다. 변호사 출신에
건설업 종사자까지 조합장으로 나선다. ‘스타 조합장’도 등장했다. 조합원들이 자발적으로 재개발·재건축 관련 공부를 하기도 한다. 조합도 전문화하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이다. 법리를 잘 알거나 건설사 내부 사정을 잘 알기 때문이다.
아직도 ‘조합원’ 하면
건설이나 재정비 사업을 잘 모르는 주택소유주의 모습을 떠올리는 게 일반적이다. 재정비 사업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일단 시공사를 선정하고 나면 갑을관계가 뒤바뀌기도 한다. 사업을 따내기 전에는 조합원들에게
넙죽 엎드리던 건설사들이 막상 사업을 수주하면 공사비 증액이나 마감재 선정 과정에서 사익만을 취해서 그렇다.
조합이 똑똑해지면서 과감히 시공사를 교체하는 사례도 늘었다. 시공사와의
소송도 감수하는 조합도 등장했다. 이 같은 행보는 적극적으로 소비자 주권을 추구한다는 점에선 긍정적이다.
하지만 씁쓸한 측면도 있다. 갈등을 대화로 풀지 못하고 법리적 판단에만
의존하게 되기 때문이다. 때로는 조합과 시공사 중 누가 잘못했는지 가치판단이 서지 않을 때도 있다.
‘보통’이 아니어야만 좋은 집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엘리베이터
속도, 대리석 두께, 마감재 등급까지 계약으로 정해두지 않으면
부실시공의 피해자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우려. 모두가
똑똑해진다는 말 속엔 서로를 불신한다는 말이 숨어있다.
기업의 지속가능성이 화두가 되듯 재정비 업계에선 ‘클린수주’가 떠오르고 있다. 클린수주만큼 클린한 제안서라면 조합과 시공사가
시비를 가리는 데 소모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heyj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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