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매자가 수수료 내라고?”…번개장터 ‘안전결제 의무화’ 속내는
중고거래 플랫폼 번개장터가 이달 1일부터 플랫폼 내에서 이뤄지는 모든 중고거래에 ‘안전결제’만 사용할 수 있도록 정책을 개정했다. 번개장터는 거래의 투명성을 보장해 이용자들이 안심하고 거래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기 위해 안전결제를 의무화했다고 설명했다. 중고거래 플랫폼이 판매자에 유료 서비스를 의무화한 건 이례적인 상황. 번개장터가 안전결제 의무화를 도입하게 된 속내는 뭘까.
◇번개장터, ‘안전결제’ 의무화…판매자, 수수료 3.5% 부담
번개장터는 이달부터 사기 방지를 위한 결제 대금 예치 기반 시스템 ‘안전결제’를 의무화했다. 구매자가 결제한 상품 대금을 번개장터가 보관하다가 상품 수령 확인 후 판매자에게 입금해주는 방식이다. 이번 정책 변경 이전에는 구매자가 안전결제 여부를 선택할 수 있었고, 안전결제 선택 시 수수료로 거래액의 3.5%를 구매자가 부담해야 했다. 그러나 이번 개정으로 모든 거래가 안전결제 시스템으로 이뤄진다. 또 수수료 부담의 주체도 구매자에서 판매자로 바뀐다.
이를 두고 이용자들의 반응은 엇갈리고 있다. 중고거래의 고질적 문제인 사기 걱정 없이 거래를 할 수 있어 다행이란 반응이 나오는 반면, 일각에서는 자유로운 거래 선택을 제한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특히 판매자들의 원성이 크다. 안전결제로 인해 이득을 보는 주체는 구매자인데, 판매자에게만 수수료가 부과되는 점이 부당하다는 것이다.
또 그간 선택할 수 있었던 안전결제를 의무화함으로써 번개장터가 수수료 수익을 높이려는 의도가 아니냐고 지적하고 있다. 주로 판매자 입장으로 번개장터를 이용해 온 최씨는 “5만 원짜리 물건을 판매하려다가 예상 정산 금액란에 4만8,250원이 떠 놀랐다”며 “수수료를 내면서까지 이용하고 싶지 않아 다른 플랫폼에만 물건을 올렸다”고 밝혔다.
◇번개장터 “수수료 장사 아냐…안전한 중고거래 생태계 이끌 것”
이러한 지적에 번개장터 측은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번개장터는 이용자들의 반발이 이어지자 지난 7일, 안전 결제 전면화 이전인 지난달 이용자 4,91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판매자의 86.9%, 구매자의 96.2%가 안전결제가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이용자들 역시 이미 안전결제의 필요성을 인식해 왔음을 통계를 통해 제시한 것이다.
번개장터가 공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판매자의 86.9%, 구매자의 96.2%가 '안전결제'가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번개장터 관계자는 “안전결제 전면화는 중고 거래 시장의 지속성을 위한 것”이라며 “번개장터가 앞장서서 안전결제로 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꿈으로써 시장에 신뢰를 구축하는 초석을 쌓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용자들의 반발이 가장 심한 수수료 부담 주체 변화에 대해서도 “중고거래도 수익자가 수수료를 부담해야 한다는 원칙에 따라 거래로 수익을 본 판매자가 수수료를 지불하는 구조가 맞다고 본다”고 정책 변경의 이유를 밝혔다.
◇ “5년째 적자”…재무제표에 드러난 번개장터의 현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번개장터의 실적과 재정 상황을 근거로 안전결제 의무화가 수익성 개선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지난 2011년 스타트업으로 출발해 2019년 사모펀드에 인수된 번개장터는 인수 이후 5년째 적자를 피하지 못하고 있다. 2019년 25억이었던 영업손실은 2021년 393억 원, 2022년 348억 원으로 불어났다. 지난해 매출은 전년 대비 10% 올라 341억 원을 기록했지만 영업손실은 216억 원을 기록해 여전히 적자를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다.
번개장터의 최근 5년간 매출과 영업이익을 나타낸 그래프. 지난해 매출은 341억 원, 영업손실은 216억 원을 기록했다.
번개장터가 보유한 자산 상황은 어떨까. 현재 번개장터가 보유한 유동 자산 규모는 약 500억~600억 원 정도로 추산된다. 지난 4월 번개장터 감사보고서에 공개된 번개장터의 지난해 유동 자산은 약 316억 원가량. 이에 올해 6월 시리즈E 신규 투자를 유치해 400억 원을 더 확보했다. 이중 150억 원은 초기 투자자들이 신규 투자자에게 지분을 판매한 구주 매출이므로 약 250억원 가량이 신규 유입된 것이다.
이에 따라 현재 번개장터가 보유하고 있는 유동 자산이 500억~600억 원가량일 것으로 추산해볼 수 있다. 앞서 살펴본 번개장터의 한 해 영업손실이 200억~300억 원임을 고려하면 번개장터는 수년 안에 운영위기를 맞을 상황에 놓여있는 것이다. 이러한 번개장터의 상황이 당장의 수익성 개선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을 것이란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 왜 다른 방법 아닌 ‘안전결제 의무화’ 택했나
그렇다면 번개장터는 왜 수익성 개선을 위해 안전결제 의무화라는 방법을 택했을까. 안전결제 의무화가 이용자 반발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은 쉽게 예측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번개장터가 이러한 결단을 내린 데에는 세부 매출 비율과 이용자 특성 등 여러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관측된다.
번개장터의 지난해 세부 매출 비율. 매출의 44.8%가 결제수수료 매출에 해당한다.
번개장터의 매출은 ‘상품(오프라인 스토어 매출 및 번개장터가 인수한 기업의 판매 매출)’·‘광고’·‘결제수수료’·‘기타’ 매출로 나눠진다. 이중 단연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결제수수료다. 지난해의 경우 매출의 절반에 가까운 약 152억 원이 결제수수료에서 나오면서 매출의 절반가량이 결제수수료에 의존하고 있는 모습이다.
다른 매출의 경우 결제수수료 매출에 비해 비중이 작을 뿐 아니라 단기간 내 큰 성장을 이루기 힘들다는 점에서 매출 성장의 핵심 요인으로 끌고 가기 어려운 면을 지닌다. 해마다 변동성이 크다는 점도 문제다. 즉 확실한 매출 성장을 위해서는 결제수수료 매출 증가를 선택하는 것이 유리한 상황이다.
수수료를 부과해도 판매자들이 대거 이탈하기는 어렵다는 점 역시 안전결제 의무화를 선택할 수 있었던 이유로 작용했을 것이란 분석이다. 번개장터는 경쟁사인 ‘당근’에 비해 사용자 규모 면에서는 뒤떨어지지만 10대와 20대 사용자 비율이 70%에 가깝다는 특징을 지닌다.
올 상반기 기준 번개장터의 10대, 20대 사용자 비율은 전체의 68%를 차지했다. 번개장터가 젊은 연령대에서 강한 시장 지배력을 지녔다는 뜻이다. 또 패션 중고거래 비중이 전체 거래의 절반 가량을 차지할 정도로 패션 분야에 특화돼 있다는 점도 특징이다.
이처럼 번개장터는 연령대와 앱을 사용하는 목적에 있어서 타 플랫폼과 구별된다. 이 때문에 번개장터 사용자들은 당근이나 중고나라같은 경쟁 플랫폼의 사용자들과 크게 겹치지 않아, 수수료를 부과해도 남아있을 수 밖에 없는 사용자가 많다는 분석이 나온다.
◇ “이것저것 다 해봤지만”…적자 탈출 위한 번개장터의 행보
번개장터는 수익성 개선을 위해 이미 여러 방법을 시도해왔다. 번개장터는 2022년부터 이미 일반 판매자와 전문 판매업자를 구분해, 전문 판매업자들로부터 판매 수수료를 걷고 있다. ‘프로상점’이라 불리는 전문 판매업자들은 거래마다 5%의 판매 수수료를 내야 한다. 당시 업계에서는 이러한 행보를 추가 수익 창출을 위한 조치로 분석했다.
지출 또한 줄여나가고 있다. 2021년 번개장터의 판매비와 관리비 지출은 547억 원이었으나 이를 점차 줄여나가 지난해에는 479억 원을 지출했다. 또 지난 6월 ‘번개케어 판매자 무료 택배 서비스’ 역시 중단했다. 번개케어 판매자 무료 택배 서비스는 정품 검수 서비스인 ‘번개케어’ 이용 시 번개장터 측이 편의점 택배비를 지원해주는 서비스다. 사용자 반응이 좋았던 서비스였던 만큼 이러한 서비스 종료는 수익성 개선을 위한 조치로 분석된다.
번개장터는 전문 판매업자 수수료 부과와 지출 감소, 서비스 혜택 종료까지 수익성 개선을 위한 다양한 시도를 했지만 적자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안전거래 의무화 외에 남은 카드가 마땅치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수수료 수익 업고 흑자 전환” VS “이용자 등 돌려"
번개장터가 안전결제를 의무화하면 얻게 되는 수익은 어느 정도일까. 지난해 번개장터의 총 거래액은 약 2조 5,000억원. 여기에 수수료 3.5%을 모두 부여한다고 가정하면 약 875억 원의 매출을 번개장터가 가져가게 된다. 현재 결제수수료를 통한 매출이 150억 원대인 것을 고려하면 6배 가까운 성장이 추정되는 것이다.
번개장터 측은 올해 실적 개선을 이룰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번개장터 관계자는 “안전 결제 전면화는 많은 이용자들의 호응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올해 실적이 전년 대비 2배 이상 성장할 것으로 예측한다”고 밝혔다. 또 번개장터는 ‘이용자의 스트레스를 줄이는 거래 플랫폼’으로 브랜드 이미지 제고도 기대하고 있다.
박석재 우석대 경영학부 교수 겸 한국무역학회 명예회장은 “안전결제 의무화로 판매자와 구매자의 상호 신뢰 환경을 구축해 거래가 활성화된다면, 신규 이용자들이 확대돼 번개장터의 실적과 인식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측된다”고 밝혔다.
반면 안전결제 의무화 도입으로 이용자들이 등을 돌릴 것이라는 전망도 적지 않다. 이번 정책 변경으로 이미 많은 판매자들은 등을 돌린 상태다. 구매자들은 수수료를 내고 이용해야 했던 안전결제 서비스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돼 반기는 분위기지만, 판매자들이 이탈해 번개장터에 양질의 상품이 줄어들게 된다면 구매자들은 자연스럽게 줄어들 것이라는 분석이다.
판매자 최모 씨는 “이미 많은 판매자들이 당근 등 다른 플랫폼으로 주 판매처를 바꾸거나 번개장터를 떠나고 있다”며 “판매자를 보호하지 않는 플랫폼은 생존하기 힘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번개장터 지난 6월 시리즈E 투자를 유치하며 매출액 2배를 목표로 잡았다. 올해를 흑자전환의 원년으로 삼겠다는 포부다. 번개장터가 중고거래 플랫폼 시장의 고질적인 문제인 수익모델 부재를 해결하고 포부를 현실로 이뤄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q00006@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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