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댕댕이가 그 댕댕인지도 모르는데"…펫보험이 비싼 3가지 이유
[서울경제TV=이수빈 인턴기자] “왜 이렇게 비싸요?”, “우리 애는 그러면 노견이라고 지금 가입도 못 한다는 거에요?”, “날로 먹네” 한 보험 설계사는 최근 펫 보험 상담을 하며 스트레스가 많아졌다. 펫 보험에 가입하기 위해 상담을 신청한 고객들이 볼멘소리를 하며 전화를 끊기 일쑤기 때문이다. 비싼 가격과 좁은 보장 범위, 그리고 잔병치레가 잦아지는 나이대의 반려동물은 가입조차 어려운 펫 보험. 아직 반려동물 주인들에게 펫 보험이란 벽은 너무 높다.
◇낮은 펫 보험 가입률은 ‘소극적 태도’ 보이는 보험사 때문?
농림축산식품부 국민 의식조사에 따르면 국내 반려동물 개체 수가 799만 마리에 육박했지만 반려동물의 펫 보험 가입률은 1.4%에 그친다. 국내 반려동물 가구는 전체 가구의 25.4%로 전 국민의 4가구 중 1곳 수준까지 늘었지만 펫 보험 시장의 성장 속도는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모습이다.
낮은 펫 보험 가입률의 주원인이 동물 병원과 보험사가 펫 보험이 개시되고 적용되는 데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펫 보험에 가입한 반려견주 김씨(24)는 “일단 펫보험은 비싸다. 보장 수준도 낮고 보장 범위는 협소한 ‘도둑 심보 상품’으로 느껴진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보험사는 “어쩔 수 없다”라고 이야기한다. 수의학 관련 법 체계가 부실하고 제도 악용의 여지가 있어 타 보험에 비해 적극적인 사업 확장이 어렵다는 것이 그들의 입장. 무엇이 왜 펫 보험이 도둑 심보가 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나. 보험사는 왜 펫 보험 사업 확장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일 수밖에 없었을까.
◇“보험사도 먹고살아야죠”…펫 보험, 손해율 관리가 관건
“사람인 제 보험료보다 고양이 보험료가 더 많이 나가니까… 해지해야 되나 고민이에요” 고양이를 두 마리 키우는 박씨(25)는 펫 보험료에만 매달 10만 원에 가까운 돈을 지불한다.
실제로 올해 기준 손해보험업계 기준 4세대 실손보험료 최상단은 40대 남성 기준 2만원대에서 그친 데 비해 펫 보험의 보험료는 2~3배인 수준인 4~6만 원을 기록했다.
펫보험 상품에 높은 가격이 책정되는 것은 보험사의 손해율 관리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손해보험 업계 관계자는 “반려동물보험이 활성화되면 실손보험만큼 손해율 관리가 어려워져 보험사 입장에서 손실이 확대될 가능성이 큰 상품이다”라고 전했다. 보험도 결국은 매출과 영업익을 산출하는 회사이기 때문에 손실이 확대될 가능성이 큰 펫 보험 영역을 적극적으로 확장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펫 보험의 손해율 관리가 어려운 이유는 아직 제대로 수의 체계가 확립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우선 진료 체계가 표준화되어 있지 않아 병원별로 진료비가 다 다르기 때문에 합리적인 보험 설계가 어렵다.
반려동물 진료비는 동네마다, 병원마다 전부 다르다. 의료 수가가 정해져 있는 국민건강보험과 달리 표준화된 가격이 없다. 농식품부의 지방자치단체별 조사에서 개 초진 진료비가 가장 높은 전북은 1만1,387원, 가장 낮은 세종시는 7,280원으로 1.5배 차이가 났다. 전북 내에선 최고가가 4만원, 최저가가 5,000원으로 격차가 여덟 배에 달했다.
모두의 진료비가 일정하지 않으니, 보험사가 손해 보지 않기 위해서는 수익률에 영향이 없는 진료·수술비를 기준으로 보험금을 산정한다. 그러다 보니 보험금이 높아지고 보장 범위가 확대될 수 없다는 것이 업계의 입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똑같은 병인데 누구는 3만 원 주고 진료 보고 누구는 5만 원 주고 진료를 봐요. 여기에 얼마만큼의 보험금을 받고 얼마만큼의 보장을 해 줄 건지 합리적인 기준을 세울 수가 없어요. 원래 보험에서 손해율을 관리하려면 그런 가격 데이터들이 모여서 통계를 내는 게 필수적인데.. 펫 보험은 이게 어려워요”라며 “겨우 기준을 세워서 보험을 판매해도 우리 입장에서는 손해율의 오차 범위가 어느 정도가 되는지 가늠이 안되니까 문제죠”라고 전했다.
[사진=게티이미지]
◇“이 강아지 맞아요?”… 자리 못 잡은 제도 탓에 악용 가능성 有
반려동물 등록제가 제대로 활성화되어있지 않은 것도 보험사에겐 큰 문제다. 업계에서는 “현재 체계에서는 정확한 보상 심사가 어려워 지원 범위를 넓힐 수 없어요. 지금은 반려동물이 실제 보험에 가입된 동물인지 아닌지 구별하기가 어렵거든요”라고 전했다.
사람의 경우에는 보험사에서 가입자에게 보험금을 지급할 때 주민등록증을 비롯한 여러 단계의 본인 인증 수단이 동원되지만 동물의 경우에는 보험에 가입된 동물과 실제로 진료를 받은 동물이 동일한 동물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경기 구리에 위치한 동물 병원 간호사 허씨(27)에 따르면 동물 병원에서는 진료나 수술을 할 때 애완 동물의 품종, 몸무게, 나이, 견주의 주소와 번호만 확인한다. 반려동물을 등록하면 부여되는 동물 번호나 마이크로칩은 동물의 신원을 확인하는 데에 전혀 활용되지 않고 있다.
이러한 동물 병원의 시스템은 결국 보험 악용에 취약하다. 예를 들어 한 마리의 강아지를 보험에 가입해 두고 같은 종, 비슷한 나이대의 강아지들이 돌아가며 병원에서 진료를 받아 해당 내역을 보험사에 제출하면, 보험사에서는 해당 강아지가 맞는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가입자 입장에서는 이를 증명할 방법이 없어 악용될 소지가 충분하다. 결국 악용에 따른 불이익과 손해는 고스란히 동물 병원과 보험사가 떠안아야 한다.
◇펫 보험, 바람직하게 성장하려면…”제도 개선 필요해”
앞으로 펫 보험 시장이 확대되려면 정부의 제도 개선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견해지만, 보험사들도 이대로 손 놓고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보험 상품 관리를 위한 정책 제정이 계속해서 미뤄진다면 민간 업체들끼리 손을 잡아 보험의 내실을 다지겠다는 것이다.
펫 보험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메리츠화재는 동물 병원협회·서울시수의사협회 등 수의사업계와 연달아 업무협약을 맺고 반려동물 보험 활성화를 위한 협업 체계 구축에 나서고 있다. 또 삼성화재는 동물등록증을 등록하면 월 보험료에서 5%를 할인해 가입자 정보의 정확성을 높이고 있다.
보험사 관계자는 “양질의 데이터가 손해율 관리, 펫 보험의 실적을 좌우할 것으로 예상 중이다.”라며 “하지만 근본적으로 펫 보험 시장이 커지고 동물들에게 제대로 된 보장이 주어지려면 이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 그러려면 국가 차원에서의 제도 개선은 필요하다”라고 전했다. /sb4139@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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